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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10

제22편. 스모키 마운틴의 사계 제3부: 여름, 네버엔딩스토리 (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 2010/09)


Sep 2010 | 사람이란 정말 어디서건 다 적응하면서 살게 마련인가 보다. 따뜻한 조지아에서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7년을 살다가 웨스트 라파예트로로 이사를 오면서 악명높은 인디애나의 겨울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30년을 살다 온 서울 날씨와 비슷해서 그런지 그런대로 살만하다. 추운 겨울에는 김장 비닐 사다가 창문에 둘러서 바람을 막고, 더운 여름에는 대나무 돗자리 깔고 베란다에 물을 뿌려가며 열을 식히고, 숲이 우거진 산이 그리우면 여덟 시간 걸려서 산 보러 가고.




매년 9월 초에 있는 노동절 (Labor Day) 휴일. 학위 과정 중일 때는 모르겠더니 수형이 포닥을 시작하고 나서는 일 년에 몇 안 되는 공휴일이 꽤나 기다려진다. 집에서 하릴없이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황금 같은 2박 3일의 휴가. 모처럼 산에 올라가 나무 냄새가 맡고 싶어서 수형을 졸라 스모키 마운틴으로 향했다.




집에서 남쪽으로 한동안은 옥수수밭과 평지 일색. 대 여섯 시간은 달려야 겨우 도로변에 나무가 우거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지아에 살 때는 이렇게 길 따라 나무 담장과 활엽수림이 있는 모습은 미국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단조롭고 심심한 풍경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이번 여름에 인디애나에서 워싱턴주까지 대륙횡단을 하면서는 이런 식생을 보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다시 더듬어봐도 중부 지역은 광활한 황무지 대평원, 서부 지역은 민둥산, 서부 고산 지역으로나 가야 침엽수림이 나타나지, 활엽수가 우점하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지겹도록 보아온 이 울창한 숲들이 미대륙에서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7년을 보고 살았으면서도 사진 한 장 멋지게 남겨놓은 게 없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조지아에 살 때 US441을 타고 남쪽 노스캐롤라이나 쪽에서 스모키로 가는 길은 한가하고 유쾌한 길이었는데 북쪽에서 테네시 피죤 폴지 (Pigeon Forge)와 게틀린버그 (Gatrlinburg)를 거쳐 가려니 길이 너무 막혀서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져 버렸다. 피난 행렬 마냥 꼼짝도 않고 늘어서 있는 차들 때문에 설레던 마음이 짜증으로 변했다. 생전 차 막히는 일 없는 곳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이렇게 길에서 기다리는 게 익숙지 않다. 성격 급한 내가 더는 못 참고 피죤 폴지를 거치지 않고 우회해서 스모키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냈다.




계곡을 따라 달리다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요즘엔 음식 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점심은 그냥 간단하게 빵이랑 샐러드로 해결한다. 먹으러 가는 게 아니고 구경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니 굳이 다른 거 챙기기에도 바쁜 아침 시간에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시간 버리고 진 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난다. 혹시나 곰이 음식 냄새를 맡고 내려오지나 않을까 계곡에 머무는 내내 주위를 살폈다.




스모키 여름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난 예전에 느티나무를 참 좋아했었다. 채집 다닐 때야 꽃이 식물을 동정하는데 제일 쉬운 캐릭터라 꽃 찾아다니기 바빴지만, 진짜 좋아하는 건 나뭇잎 많이 달린 키 큰 나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는 언제나 내 페이보릿이었다. 작은 이파리가 많이 달린 굵고 오래된 느티나무를 보면 참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얀 꽃 매달고 있는 벚나무보다도, 겨울에도 푸른 잎 떨구지 않는 전나무보다도, 짙은 향내 풍기는 소나무보다도 느티나무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근데 미국에 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느티나무를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자두에게 꾀많은 농부가 돈을 주고 사서 욕심쟁이 영감을 골려 주었다는 느티나무 그늘 이야기를 읽어주면서도 느티나무에 대한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었다. 지금 이 사진을 보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이야기를 쓸 때까지 내가 느티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빌려줘서 정말 재밌게 읽었던 '네버엔딩스토리'라는 미카엘 엔데의 소설이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소년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력을 잃어가는 바람에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 환상의 세계를 구하게 된다. 소년으로 인해 위기를 모면한 환상의 세계는 백지상태가 되어 주인공이 상상하고 원하는 대로 새로 탄생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환상세계의 황제로 군림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게 된 주인공은 대신에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환상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사는 댓가로 현실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자신을 지워 버려야 하는 것이다.




가끔 이렇게 뜻하지 않게 지금과는 다른 예전의 나에 대해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내가 지금 네버엔딩스토리의 환상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오면서 나는 완전히 제2의 삶을 사는 것 같다. 30년을 살던 곳에서 떠나 매일같이 보고 지내던 가족과 헤어져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된 것도 모자라 하루아침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또 바로 한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예전에는 답이 안나오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아무리 낭만적, 감성적인 생각들에 푹 빠져서 살았어도 때되면 식사를 차려주는 엄마가 있었고, 온갖 생활에 필요한 관리를 맡아 해주시는 아빠가 계셨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도 그렇게 살았다면 아마 바로 홈리스 (노숙자)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었던 이상과 감성을, 미국에 오면서부터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해 버렸다. 일부러 버렸다기보다는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일 테지만. 
근데 사실 그렇게 사는 게 싫지 않았다. 아니, 더 좋았다. 죽도록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들을 집어치우고, 매일매일 객관식 풀듯이 풀어버리면 되는 문제들을 안고 사는 게 참 재밌고 신났다. 독립된 성인이 된 기분도 들고 삶에 더 전투적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제2의 세상에서 제2의 나로 살아온 지 9년이 다 되어간다. 과거의 나가 더 좋았다든지 현재의 나가 더 나빴다든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히 과거와 현재의 나 사이에는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분명히 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사람 같다. 그냥 심플하게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라고 하면 되는 건가?




여행기를 쓰면서 예전 자두 사진을 볼 때면 사진 속의 어린 자두가 지금의 자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로 서서히 자라고 성장했을 텐데 단지 일 년 전의 자두 모습만 보아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 같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성장하면서 달라지듯이 서른이 넘은 나도 아직 아이처럼 자라고 성장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까. 나를 잃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린 자두가 자라는 것처럼 나 역시 아직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장곡선 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까. 그 과정에서 뭔가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다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참 오랜만에 답 안 나오는 화두를 안게 되었다.




뉴파운드 갭에서 바라본 애팔래치아 산맥




뉴파운드 갭에서 벌새 (Humming Bird)를 보았다. 벌새는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닌데 뉴파운드 갭 주차장 옆 숲 속에서 꽤 여러 마리가 꽃을 옮겨가며 꿀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은 저물고 벌새는 너무 빨라서 사진 속에 벌새를 담는 것은 실패했지만 참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 방대한 미대륙에서 한번 갔던 여행지를 또다시 갈 확률은 매우 낮다. 여행의 끝에는 늘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쉽다며 다음에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고 마무리 커멘트를 날리지만, 맘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날씨가 안 좋아서, 스케쥴이 꼬여서, 생각지 않은 태클이 들어와서 뜻했던 대로 보고 듣고 느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기회는 없다는 걸. 우리의 여행 패턴 상 아주 예외적으로 세 번씩이나 들렀던 스모키지만 왠지 이번은 진짜 마지막일 것 같다.




스모키 마운틴의 노을




피존 폴지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다시 스모키 마운틴으로 가서 정말 짧은 산행을 했다. 생각 같아선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로를 타고 능선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미국에서 등산한다는 건 설사 애들이 없다고 해도 사실 아직까지 너무 겁난다. 
예전에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로어링 포크 (Roaring Fork) 도로를 우리의 마지막 스모키 행선지로 정했지만 아쉽게도 폐쇄되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긴 무척 아쉽다. 여덟 시간씩 걸려서 와서는 그냥 이렇게 떠나려니까 아쉽다. 마지막이라는 거 아니까 아쉽다. 차마 우리가 살았던 에센스까지는 다시 내려갈 용기가 나질 않는데 그나마 떠나온 남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인 스모키가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니까 아쉽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너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