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 돌아서는 뜨거운 발검음
|
그동안 우리가 자두와 셋이서 부작용없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최장 주행거리가 800 마일 (약 1,300킬로미터) 정도였다. 물론 그 이상을 달린 미친 기록도 있지만, 별다른 일정없이 하루종일 달리기만 하는 날이면 800 마일까지는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8개월짜리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많은 부분에서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두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결말을 모르는 채 시작한 전날 800 마일의 여정, 진정한 우리가족이 되는 그 어려운 신고식을 호두는 훌륭하게 치뤄냈다.
참, 신고식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덧붙이는데, 진정한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우리 친정의 신고식은 바로 간장 게장이었다. 친정 아버지 고향이 인천이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해물을 참 많이 먹고 자랐다. 그 중에서도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상에 오르는 것이 게 무침과 간장 게장이었는데,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상 앞에 모여 앉아 젓가락으로 게다리를 후비며 혹시나 남아있는 살점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게다리를 흡입들 하시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왔다.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게다리 먹는 법을 전수하시며 깨끗한 껍데기를 뱉어낼 때 마다 "역시 내 자식이야" 라는 듯한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셨다.
이런 집안 전통을 알 리 없는 수형이 예비 장인 어른 앞에서 게다리를 그냥 우적우적 씹었다가 뱉는 날에는 결혼이고 뭐고 그대로 큰 딸 노처녀 만드실 것 같아서 내가 얼마나 조심을 시키고 신신당부 했는지. 손에 뭐 묻히고 먹는거 질색하는 예비 남편이 그래도 친정 아버지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게다리를 뜯고,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서 먹어주는게 무척이나 고마웠었다. 여자들은 왜 남자가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사랑을 느낄까. ㅋㅋㅋ
참, 신고식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덧붙이는데, 진정한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우리 친정의 신고식은 바로 간장 게장이었다. 친정 아버지 고향이 인천이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해물을 참 많이 먹고 자랐다. 그 중에서도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상에 오르는 것이 게 무침과 간장 게장이었는데,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상 앞에 모여 앉아 젓가락으로 게다리를 후비며 혹시나 남아있는 살점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게다리를 흡입들 하시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왔다.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게다리 먹는 법을 전수하시며 깨끗한 껍데기를 뱉어낼 때 마다 "역시 내 자식이야" 라는 듯한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셨다.
이런 집안 전통을 알 리 없는 수형이 예비 장인 어른 앞에서 게다리를 그냥 우적우적 씹었다가 뱉는 날에는 결혼이고 뭐고 그대로 큰 딸 노처녀 만드실 것 같아서 내가 얼마나 조심을 시키고 신신당부 했는지. 손에 뭐 묻히고 먹는거 질색하는 예비 남편이 그래도 친정 아버지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게다리를 뜯고,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서 먹어주는게 무척이나 고마웠었다. 여자들은 왜 남자가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사랑을 느낄까. ㅋㅋㅋ
덴버를 벗어나자 눈덮힌 록키산맥 (Rocky Mountains) 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미처 차창을 닦지 못하고 출발했는데, 창의 얼룩이 그림같은 풍경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까웠다.
콜로라도 주는 와이오밍 주와 더불어 미국에서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지역에 속한다. 주위의 산들도 얼핏 보기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사실 대부분 3,000미터가 훨씬 넘는 고산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6월 말에도 능선 부위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일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 (Glacier) 이겠지만.
미대륙은 말 그대로 거대한 땅덩어리. 억겁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다양한 지형과 생태계가 존재하는 곳이다. 더구나 시속 65 마일 (약 100 킬로미터) 이상의 빠른 속도로 달려 대륙의 어디든 갈 수 있는 고속도로망, 곳곳에 잘 발달되어있는 도시와 편의시설, 그리고 상대적으로 철저하게 보존/보전되어있는 자연 보호 지역들을 감안한다면 미국은 자동차로 떠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집들. 우리가 보기엔 집까지 기어서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저 정도 경사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일도 아닌가보다. 조지아, 인디애나, 평지만 전전한 우리가 보기엔 나름 신선한 충격.
오늘은 록키산맥을 넘어 유타 (Utah) 의 캐년으로 향하는 날이다. 여행을 시작한지 3일도 채 안됐는데 벌써 옥수수밭과 너른 초원을 지나고, 풀도 살지 않는 뜨거운 황무지를 거쳐 미국에서 제일 고도가 높다는 록키산맥 지역까지 도달했다.
운전하는 수형이나, 뒤에 앉은 나 우리 둘 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달라지는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학회 장소까지 가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작한 자동차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덤으로 멋진 선물까지 얹어받으니 장사로 치자면 엄청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렇다치고 자두가 받은 선물은? 캘빈 앤 하비스 (Calvin and Hobbies: 코믹북)
차 유리창이 너무 더러워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지 않길래 몇 장 찍다가 그만 두었다. 아이들이 자고 있어서 개스가 떨어질 때까지 그냥 달리기로 했다. 골아떨어진 듯 보이다가도 차 시동만 끄면 기가 막히게 알고 눈을 뜨는 아이들 때문에 중간에 차를 세우고 창을 닦을 수가 없었다. 록키의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즐겁게 여행하는 것, 되도록 아이들이 잘 때는 달려줘야 한다.
덕분에 아침의 드라이브, 카메라를 내려놓고 록키를 마음에 담으며 달렸다. 예전에 록키마운틴 국립공원에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하늘과 더 가까이 맞닿은 곳이어서 그런지 미국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보지 못한 짙푸른 하늘색을 이곳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록키마운틴 국립공원 여행기 | Rocky Mountain National Park
주유를 하면서 드디어 창을 닦았다. 문제는 이미 록키산맥을 넘어버렸다는 사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 찍는 것은 언제나 내 담당이다. 특히나 이번 여행에서는 수형이 정말 피곤하고 졸릴 때만 잠시 운전대를 넘겨줬기 때문에 내가 운전할 때면 수형은 거의 자느라 사진은 커녕 내가 운전하면서 호두까지 돌봐야하는 형편. 어쨌든, 이번엔 좀 제대로 사진을 찍어보려고 아예 조수석 의자의 머리 받침대를 빼버렸다. 덕분에 시야도 좀 넓어지고 소위 드샷이라고 하는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찍는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는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고, 앞 좌석에는 아이스박스가 실려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 찍는 것은 언제나 내 담당이다. 특히나 이번 여행에서는 수형이 정말 피곤하고 졸릴 때만 잠시 운전대를 넘겨줬기 때문에 내가 운전할 때면 수형은 거의 자느라 사진은 커녕 내가 운전하면서 호두까지 돌봐야하는 형편. 어쨌든, 이번엔 좀 제대로 사진을 찍어보려고 아예 조수석 의자의 머리 받침대를 빼버렸다. 덕분에 시야도 좀 넓어지고 소위 드샷이라고 하는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찍는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는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고, 앞 좌석에는 아이스박스가 실려있다.
컨티넨탈 디바이드 (Continental Divide: 대륙분수령) 를 넘고 나니 주위의 산들이 차차 낮아지고 록키를 메우던 침엽수 대신 붉게 벗겨진 흙 위에 키작은 나무들이 점점이 박힌 산들이 나타났다. 워싱턴 주에 가면 높은 산과 숲들을 많이 볼거라 록키산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산맥을 관통하고 나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꼭 우리의 전공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다보니 노력하지 않아도 지형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시간, 스무시간씩 달리다보면 아침에 봤던 풍경이 저녁에는 판이하게 달라져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환경의 변화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서 '왜?'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관련 자료를 뒤적거리는 행동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책이나 지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형과 지역을 만날 때면, 꼭 티비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기하고 재미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찾아보니 조선 정조시대의 문인 유한전의 글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찾아보니 조선 정조시대의 문인 유한전의 글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인터스테이트 70 (Interstate Road, 미국의 주를 잇는 주요 고속도로) 의 콜로라도 덴버에서 유타 주로 이어지는 구간은 트레일러 운전사들이 뽑은 제일 경치가 좋은 길이라고 한다. 트레일러 운전하시는 분들이야 늘 미국 전역을 운전하고 다니시니 어디가 좋고 나쁜지 잘 꿰고 있을터, 그래서 그전부터 이 콜로라도 I-70 을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
사실 일부 구간은 예전에 록키마운틴 국립공원에 갔다가 덴버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하루종일 록키마운틴을 관통해 넘어간 끝이라 구불구불 산길에 지쳐서 이 길이 그리 좋은 줄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오랜만에 산이 있는 풍경을 만나니 마음보다 눈이 더 반가워 신난다. 평원에 살다보면 둘러봐도 눈이 머물 곳이 없어 늘 허전하고 단조로왔는데 이렇게 하늘을 메우는 높은 산들을 보니 마음도 눈도 꽉 찬 느낌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히 나 때문에) 심기가 조금 불편해진 수형이 얼음 물을 마신 탓인지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해서 내가 대신 운전을 하고 있었다. 휴게소 (Rest Area) 가 나올 때마다 물어봐도 괜찮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본인도 불안해졌는지 다음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조금은 긴장한 상태에서 수형의 눈치를 봐가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마침내 휴게소까지 2마일 (Rest Area 2 miles) 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차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라? 갑자기 공사중 표지판이 나오더니 휴게소까지 1마일 남았다는 표지판 (Rest Area 1 mile) 위에 붉은 색으로 떡하니 Close 라고 붙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순간적으로 표지판 밑으로 눈이 향한 나는 정말 큭 하고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
'다음 휴게소까지 71마일 (Next Rest Area 71 miles)'
'다음 휴게소까지 71마일 (Next Rest Area 71 miles)'
정말 X 씹은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수형을 보고 혼신을 다해 자동차 핸들 부여잡고 웃음을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우리는 그 순간 그대로 집으로 가야 한다, 웃으면 안돼 안돼 안돼!!! 방송사고 안내려고 웃음 참는 아나운서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콜로라도를 벗어나 유타로 들어선다. 현재 스코어 6점. 인디애나 - 일리노이 - 아이오와 - 네브라스카 - 콜로라도, 그리고 이제 유타다.
콜로라도를 벗어나 유타로 들어선다. 현재 스코어 6점. 인디애나 - 일리노이 - 아이오와 - 네브라스카 - 콜로라도, 그리고 이제 유타다.
여기는 유타 128번 도로로 들어가는 길. 돌아가는 길이지만 경치 좋기로 소문난 길이라 바쁜 일정에도 이 길을 택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의 눈을 끌게 된 한가지가 바로 이 주별 하이웨이 표지판 (State Highway Marker) 이다. 사진 속의 128 이라고 쓰인 표지판인데 유타의 경우는 벌집 모양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이 유타의 독특한 표지판을 보고 나서 다른 주를 다닐 때 유심히 보니 정말 주마다 다른 표지판 형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동전 쿼러 (Quater) 가 주별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주별 표지판이다. 출처는 http://www.routemarkers.com/states/
강을 끼고 달리는 유타 128번 도로에서는 붉은색 메사 (Mesa) 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수형이 한마디 한다. "아리조나 세도나 (Sedona) 랑 비슷해 보이는데 세도나는 왜 유명한거야?" "거긴 볼텍스 (Voltex: 자연 에너지) 가 세다잖어~!!!"
수형이 한마디 한다. "아리조나 세도나 (Sedona) 랑 비슷해 보이는데 세도나는 왜 유명한거야?" "거긴 볼텍스 (Voltex: 자연 에너지) 가 세다잖어~!!!"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맑고 푸르렀다.
극한의 날씨는 언제나 푸른 하늘을 동반하는지, 살을 에는 추위가 매서운 날에도 하늘이 얄밉도록 푸르더니 오늘같이 뜨거운 날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우리 옆을 흐르는 이 강이 바로 콜로라도 강. 유타와 아리조나를 흐르며 수많은 캐년과 역사를 함께 한 장본인이다.
아치스 국립공원
|
드디어 아치스 국립공원 (Arches National Park) 이다. 몇 년 전부터 꼭 가보고 싶어서 기회만 노리고 노리고 또 노리던 곳. 이번에도 굳이 이곳을 일정에 넣느라 전체적으로 루트도 복잡해지고 또 여정도 길어졌다. 그랬던 곳이었는데.
비지터 센터에서 기념 뺏지를 샀다. 그동안 한번도 기념품을 산 적이 없는데 이번에 드디어 결심했다. 뺏지를 모으기로. 진작부터 남편이 뺏지 얘기를 했었는데 늘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주저하다 이번에야 말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거라는 생각에 사버렸다.
비지터 센터 뒤쪽의 절벽을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니 마침내 확 트인 풍경이 드러났다. 고속도로 상에서는 볼 수 없던 절경이 마치 쟁반을 담아 손에 올리고 그대로 들어올린 것처럼 나타났다. 별천지 같았다.
발랜스드 락 (Balanced Rock) 이다. 멀리서 보면 그다지 커보이지 않지만 그 위에 올라가있는 사람을 보니 바위가 얼마나 큰 줄 알겠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자두가 옆에서 이 사진을 보더니 바위가 참 신기하게 올라가 있다며 어떻게 발랜스를 맞추냐고 묻는다. "자두야, 너 이 바위 이름이 발랜스드 락이라는거 어떻게 알았어? 그나저나, 이거 다 우리가 봤던 바위들인데 기억도 안나지?"
정말 하늘은 기가 막히게 맑고 푸르렀다. 짙푸른 하늘과 붉은 바위들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사진 찍기에는 좋았으나,
문제는, 너무 더워, 너무 뜨거워, 너무 힘들어!!!!!!!
사진만 보면 기막히게 쾌청한 날씨, 뷰티플 스카이일지 모르지만 실제는 불가마에 들어온 것 같이 뜨거운 날이었다. 그리하여 주차장에서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가 제대로 본 유일한 아치인 스카이라인 아치 (Skyline Arch) 되시겠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상징인 델리키트 아치 (Delicate Arch) 는 2마일 밖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나마도 잠깐 걸어서 이 사진을 찍고 왔더니 호두 머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가 스무방도 넘게 물어놨다. 어찌 내가 모자를 챙기지 않았을까.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어른인 나도 5분이상 밖에서 걸을 수 없었다.
2011년 그랜드 써클 여행기 아치스 국립공원 편 | 2011 Grand Circle Arches National Park
데블스가든 (Devils Garden) 지역에서 또 다시 잠깐 나가서 돌아보려고 했으나 결국은 서둘러 차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내 생애를 두고 이렇게 뜨거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2006년 대륙일주 때 아리조나를 통과하면서 꼭 뜨거운 아스팔트에 계란 후라이가 가능한지 시험해 보리라 맘만 먹고 실행을 못했던 게 생각난다. 오늘 여기서 했으면 베이컨도 익혀 먹을 수 있었을텐데.
남편이 지친 자두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공원을 달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바위들을 보고 무슨 모양 같이 생겼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관심을 끌어보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날씨가 너무 더웠다. 자두는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
결국 아치스를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을 접고 너무너무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서야했다. 공원 밖을 나오며 실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름의 아치스가 얼마나 뜨거운 곳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날도 한낮의 온도가 36도 이상 올라간다는 예보를 듣고 출발한 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꼭 아치스를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계획에 넣었다. 그랬다면 적어도 새벽이나 오전 중에 도착하게 계획을 짰어야 했는데, 그저 다 나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그르친 일이 되고 말았다. 진짜 화도 나고 무지 실망하고 서운했는데, 그렇게 내 욕심과 잘못을 인정하고 나니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았다. 내가 또 원래 올라가지 못할 나무 안쳐다보고, 포기가 빠르기로 둘째 가라면 서운한 사람이잖수.
호텔이 있는 살리나 (Salina) 까지는 두어시간 더 달려야 한다. 아치스에서 너무들 지쳐 그냥 살리나로 가려고 했지만 수형이 내가 안쓰러웠는지 캐년랜즈 국립공원 (Canyonlands National Park) 을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렇게 말해준 수형이 참 고마웠다.
캐년랜즈 국립공원
|
캐년랜즈로 들어가는 입구는 크게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Island in the Sky) 지역과 니들스 (The Needles) 지역이 있는데 우리는 아치스에서 가까운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지역으로 들어갔다.
캐년랜즈 국립공원 지도 | Canyonlands National Park Map
아치스에서 캐년랜즈로 가는 길은 한참 언덕을 오른다. 오르막길 끝에 펼쳐진 평원은 연두빛 풀들로 가득한데, 그 길을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주 오래 전, 소백산에 갔을 때 능선 부위에 펼쳐진 초지를 봤던 기억도 났다.
맘을 괴롭히던 욕심을 버려서 그런가, 초록빛 너른 벌판을 달리는 기분이 마냥 즐거웠다.
맘을 괴롭히던 욕심을 버려서 그런가, 초록빛 너른 벌판을 달리는 기분이 마냥 즐거웠다.
고지대에 펼쳐진 초원을 따라 한참을 달리니 캐년이 나왔다. 중간에 내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도로의 맨 끝에 있는 그랜드 뷰 포인트 (Grand View Point) 까지 달려갔다.
그린 리버 (Green River) 가 콜로라도 리버 (Colorado Rive) 로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그랜드 뷰는 말 그대로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진 캐년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콜로라도 리버는 록키산맥에서 시작해 서남쪽으로 흐르며 유타 동부와 아리조나의 그랜드 캐년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강이다.
그랜드 뷰에서 보이는 캐년의 모습. 한장에 담을 수 없어서 여러장을 이어 붙였다.
앞의 여행기에도 등장한 이 사진은 2004년 6월 한국에 갔다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여행기를 쓰면서 새삼 다시 보게 된 이 사진 속의 지형이 하도 독특해서 어딘지 꼭 찾아내고 싶은 투지에 불타게 되었다.
앞 뒤로 찍은 사진들과 그간의 발품판 경험을 토대로 유타주 동부 지역 상공이라고 확신한 나는 구글 어스 (Google Earth) 를 펴놓고 유타주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찾아내었다는. 사진은 구글 어스를 캡쳐한 사진이다. 흰 화살표가 가리키는 부분이 바로 내가 비행기에서 사진으로 찍은 지역. 위의 사진과 비교해 보시길.
그런데 이 지역은 바로 캐년랜즈 국립공원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그린 리버가 흐르는 캐년 지역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이 사진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없이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의 정확한 위치를 맞추다니. 남들은 나에게 잉여 쩐다고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매우 큰 쾌감을 주는 작업이었음을.
위의 구글 어스 사진에서 짧은 화살표.
숏다리지만 카리스마 작렬하는 나의 포즈.
누가보면 80일간 세계일주 마친줄 알겠다. 이발 좀 하고 출발할 걸.
우리 네 가족 첫 그림자 사진.
캐년랜즈는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잠깐 들러 경치를 보는 곳이라기 보다는 사륜구동차로 캐년을 직접 달려본다던지, 하이킹을 한다던지, 래프팅, 마운틴 바이크 등등 캐년을 누비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로 유명하다. 지금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와서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대견한 일이지만 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대로 캐년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익룡의 발자국 같이 생긴 캐년의 모습이다.
아치스에서 겨우 40분 거리에 있는 캐년랜즈 국립공원 (Canyonlands National Park). 가까운 곳에 있는 두 국립공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아치스는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게 되는 지형이라면 캐년랜즈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곳이다. 실제로 캐년랜즈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지역은 아치스보다 평균 고도가 높다. 그래서 날씨도 아치스에 비해 시원한 편. 덕분에 이렇게라도 나와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고보면 아치스 국립공원이 자리잡은 모압 지역은 정말 독특한 곳이다. 그곳도 과거 어느 순간에는 캐년랜즈와 같은 랜드 스케이프를 보여주었을텐데 어떤 힘에 의해 그렇게 모조리 깎여 나가고 스톤헨지같은 거대한 바위와 아치들만이 살아남았을까.
유카가 꽃을 피웠다.
2008년에 아리조나 사막을 달리며 선인장 보다 더 많이 본 유카. 그땐 땡스기빙 때라 열매만을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지 몰랐다.
시빅이 기념사진. 이번 여행을 다니며 뜨거운 사막부터 눈 덮힌 산악도로까지, 쇠 담금질 하는 것도 아니고 갖은 고생을 다 시키고 있다. 우리 시빅이는 원래 딜러샵에서 테스트용으로 쓰던 디스플레이 차였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그때부터 시빅이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왔다간다고 도장만 찍고 떠난 셈이 되었지만 이렇게라도 안봤으면 참 후회했을 것 같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살리나 (Salina) 로 가는 길. 이렇게 무지하게 힘들었던 우리의 여행 3일째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