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공백 |
June 2010 | 뻣뻣하게 서 있는 수형에게 좀 웃으라고 닦달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전히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8년간의 잔소리 덕인지 억지로 짓는 미소가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8년이라니, 그동안 우리에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두 사진을 붙여넣고 보니 2002와 2010이라는 두 숫자 사이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모두.
나이아가라 폭포는 크게 미국 폭포 (American Falls)와 캐나다 폭포 (Canadian Falls)로 나뉘어져 있다. 이리 호에서 흘러온 나이아가라 강물이 염소 섬 (Goat Island)를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갈라져 떨어지는데 그중 미국에 가까운 작은 폭포를 미국 폭포, 메인 강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캐나다 폭포라고 부른다. 엽서에 흔히 나오는 U자 모양의 폭포는 캐나다 쪽 폭포로 말발굽 폭포 (Horseshoe Falls)라고 부르며 스케일이 더 크고 쏟아지는 물줄기도 훨씬 더 아름다운데 아쉽게도 캐나다에서만 그 장관을 볼 수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립공원 정보
http://www.niagarafallsstatepark.com/default.aspx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지도
http://nysparks.com/parks/attachments/NiagaraFallsNiagaraFallsStateParkMap.jpg
첫 번째 이야기 | 한겨울의 나이아가라 폭포
|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다. 편도 일곱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도 맨해튼과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뉴욕 여행 패키지 코스로 묶이나 보다. 고모 역시 뉴욕까지 왔으니 나이아가라에 보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우리가 살던 조지아 에센스 (Athens, Georgia)는 겨울이 한국의 늦가을 날씨 정도로 따뜻한 편이라 진눈깨비만 내려도 도시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눈이 귀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 뉴욕주의 12월은 이미 한겨울. 모처럼의 추위가 낯설었다.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장거리 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주위에 산이 있는 풍경을 보니 힘들고 지루한 것도 참을만했다. 버펄로 (Buffalo) 쯤 왔을까. 운전하던 가이드가 도로에서 후진하는 바람에 경찰에 걸렸다. 밴에 탑승한 관광객들의 여권을 걷어 보여주는 것이 아무래도 밀입국자로 의심한 것 같았다. 지은 죄도 없이 마음 졸이는 순간이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캐나다지만, 우린 미처 출입국 관련 서류 (I-20)를 준비하지 못해 아쉽게도 호텔에 머물러야 했다.
창밖으로 강 건너서 보이는 곳이 캐나다.
2013 Updated | 결국 미국생활 10년 동안 캐나다는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마지막 일 년은 캐나다 코앞에 살았으면서도 끝내 밟아보지 못한 캐나다 영토.
2013 Updated | 결국 미국생활 10년 동안 캐나다는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마지막 일 년은 캐나다 코앞에 살았으면서도 끝내 밟아보지 못한 캐나다 영토.
미국 쪽에서 말발굽 폭포 (Horseshoe Falls)가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테라핀 포인트 (Terrapin Point).
사진 왼편이 말발굽 폭포가 낙하하는 지점이다.
염소섬 (Goat Island)의 부지런한 물새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먹이 잡기에 여념이 없다. 멀리서 잿빛 강물이 밀려온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강물이 곧 폭포가 되어 떨어질 것이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온타리오 호 (Lake Ontario). 이리 호 (Lake Erie)를 출발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져 내린 방대한 양의 물이 다시 모여 이룬 미국 오대호 중의 하나다.
총 이동시간 스무 시간. 하지만 폭포에 밤에 도착해 다음날 이른 아침에 출발했기 때문에 폭포를 본 것은 기껏해야 30분 남짓이다. 폭포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옆에서 자두가 이 사진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이 사진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한 자두와 엄마 아빠의 첫 가족여행 사진이라고.
두 번째 이야기 | 초여름의 나이아가라 폭포 Niagara Falls in the Memorial Day |
2009년 조지아주에서 인디애나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550마일 (약 900킬로미터), 열 시간 정도면 어린 호두를 데리고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거리.
겨우내 호두와 씨름하며 손꼽아 기다렸던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휴가.
8개월 꽉 채운 호두까지 태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폭포로 달려갔다.
화창한 5월의 나이아가라 폭포. 정말 같은 곳인가 몇 번을 눈을 비비고 몇 번을 되물어 보았다.
구름에 가리어지지 않은 온전한 태양 빛이 가득할 때 자연이 그리는 그림의 채도는 가장 높아진다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다.
특히 물빛을 보러 간다면 반드시 맑은 날에 갈 것. 녹빛이나 홍빛에 비해 유독 푸른색이 빛의 양에 더 섬세하게 영향을 받는 듯.
물리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순수한 경험에서 나온 가설일 뿐이지만.
메모리얼 데이.
매해 5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로 미국에서 여행 시즌이 시작되는 첫날이라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예상을 웃도는 심한 교통 체증에 무료주차는 고사하고 유료 주차장을 찾기도 쉽지 않은 일.
더구나 유람선을 기다리는 줄은 또 어찌나 길던지 우리 가족 모두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야 했다.
사진은 미국 오대호 중의 하나인 온타리오 호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나이아가라 강.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잇는 연결 고리이자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를 가르는 35마일 (56킬로미터)의 작은 강이다. 강의 길이는 짧지만 거대한 두 호수가 만나는 병목 지점이라 그 물살이나 유압만큼은 어느 큰 강 못지 않을 것이다. 나이아가라 강의 중심,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나이아가라 폭포. 이리 호를 떠난 강물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새로운 보금자리인 온타리오 호로 흘러간다. 사진 속의 다리는 캐나다로 넘어가는 레인보우 브릿지 (Rainbow Bridge). 결국 저 다리도 못 건너보고 캐나다쪽 폭포의 장관도 못 보고 돌아가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이렇게 다시 찾지 않았다면 겨울의 그 차갑고 음울했던 모습만으로 이곳을 기억했을 테니.
사진은 미국 오대호 중의 하나인 온타리오 호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나이아가라 강.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잇는 연결 고리이자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를 가르는 35마일 (56킬로미터)의 작은 강이다. 강의 길이는 짧지만 거대한 두 호수가 만나는 병목 지점이라 그 물살이나 유압만큼은 어느 큰 강 못지 않을 것이다. 나이아가라 강의 중심,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나이아가라 폭포. 이리 호를 떠난 강물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새로운 보금자리인 온타리오 호로 흘러간다. 사진 속의 다리는 캐나다로 넘어가는 레인보우 브릿지 (Rainbow Bridge). 결국 저 다리도 못 건너보고 캐나다쪽 폭포의 장관도 못 보고 돌아가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이렇게 다시 찾지 않았다면 겨울의 그 차갑고 음울했던 모습만으로 이곳을 기억했을 테니.
안개호 (Maid of the Mist)는 캐나다 쪽 폭포의 바로 밑까지 운행되는 유람선으로
우리처럼 캐나다로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이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 폭포의 물살을 가까이서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어 바람의 동굴 (Cave of the Winds)과 더불어
누구나 추천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최고의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한 배의 탑승 인원만도 백 명이 족히 넘는 것 같은데 탑승까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걸 보면
정말 어지간히 사람이 많은 날이었나 싶다.
특히나 인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도 여행 온 걸로 착각할 정도라는.
호두도 승선 준비 완료.
사진에 미처 담지 못한 아래쪽으로는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비닐 우비 뒤집어쓰고
인파에 파묻혀 승선을 기다리는 불쌍한 우리 자두의 존재를 기억해야겠다.
사진 속에 보이는 폭포가 미국 폭포, 그리고 그 오른쪽이 면사포 폭포 (Bridal Veil Falls)다.
떼를 지어 비상하는 물새들의 날갯짓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와 더불어 장관을 이루었다.
그런데 막상 폭포의 아래에서 보니 생각보다 폭포의 높이가 낮아서 놀랐다.
실제로 말발굽 폭포의 높이는 53미터 정도지만 미국 폭포는 기저에 깔려 있는
커다란 바위 무더기 때문에 낙하 높이가 20-3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안개호를 타고 말발굽 폭포 아래에 도착한 순간.
마치 영화를 찍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에서 거친 풍랑을 만나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치기 직전의 느낌이랄까.
물이 쏟아지는 엄청난 소리,
얼굴과 몸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일어나는 물보라,
거기에 자기를 안고 있는 내 몸을 필사적으로 밟고 올라서려는 호두의 몸부림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엄청난 물을 쏟아붓는 폭포 앞에서 완전히 압도된 기분이라니.
그대로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자두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일곱 살짜리 어린 딸과 친구처럼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이
한 번 더 나를 압도했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우비를 벗어버린 호두가 정말 시원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 버석거리는 우비가 얼마나 답답했을꼬.
갓난쟁이가 있으니 당연히 유람선의 아래층에 탔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온 기회라 놓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미국 관광 =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공식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소원 풀었다. 이게 뭐라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미국 쪽 폭포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우비를 버리는 바람에 너무 추워서 많이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왔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춥거나 말거나 폭포물을 홈빡 맞고 내려왔을 테지만
나를 제외한 우리 집 어씨들은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들을 가졌기 때문에
물 한 방울 젖는 것조차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손에 묻히는 게 싫어서 감자탕도 꺼리는 놀라운 사람들인걸.
외로운 조여사는 아직 제 본성을 드러내지 않은 어린 호두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두 폭포의 물살에도 염소섬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랜 세월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언젠가 강물이 크게 범람하여 미국 폭포와 캐나다 폭포가 합쳐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두 폭포의 물살에도 염소섬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랜 세월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언젠가 강물이 크게 범람하여 미국 폭포와 캐나다 폭포가 합쳐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줄을 기다리느라 진을 너무 뺐는지 심신의 피로에 공복감까지 몰려와 더는 폭포를 감상할 여력이 없었다.
염소섬과 테라핀 포인트 구경을 포기하고 근처 카지노 뷔페에 가서 모처럼 맛있게 외식을 했다.
호두에겐 빈 게다리를 하나 주었더니 식사 시간 내내 얌전하게 잘 가지고 놀았다.
외식하고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게 얼마 만인지.
미국에 8년째 살면서 미국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맛이 없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좋은 식당에서 제대로 요리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못해봤다.
완전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국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
동네 중국 뷔페나 저렴한 미국식 뷔페에서도 똑같이 먹어본 파스타, 생선요리, 볶음요리였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난 미국에서 산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던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비록, 미국에 8년을 넘게 살면서 그저 집밥에 어쩌다 싸구려 피자 뷔페가 고작인 소심한 가난뱅이 부부지만, 한 나라의 음식 문화는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갈지라도 이 나라가 가진 자연 유산은 마음껏 즐기다 가고 싶다는 꿈과 목표 하나만큼은 꼭 이루고 말리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난 미국에서 산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던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비록, 미국에 8년을 넘게 살면서 그저 집밥에 어쩌다 싸구려 피자 뷔페가 고작인 소심한 가난뱅이 부부지만, 한 나라의 음식 문화는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갈지라도 이 나라가 가진 자연 유산은 마음껏 즐기다 가고 싶다는 꿈과 목표 하나만큼은 꼭 이루고 말리라.
8년 전과는 그 모습이 워낙 달라서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폭포를 매개로 과거의 기억과 그 당시 기분을 고스란히 불러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반면 어떤 기억들은 아주 많은 분량이 통째로 지워지는 것 같다.
이렇게 지나간 여행들에 대한 밀린 기록을 남기면서 얼마나 많은 기억을 불러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점점 머릿속에만 기억을 담아두는 것이 불안하다.
더 늦기 전에 소중한 순간들을 꺼내서 깨끗이 닦아 안전한 곳에 잘 보관해야겠다.
마음이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