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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10

제21편. 스모키 마운틴의 사계 제2부: 나는 스모키의 봄이 제일 좋았다 (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 2007/05)


May 2007 | 미국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국립공원은 바로 일 년에 9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모키 마운틴은 미 동부지역에 몇 안 되는 국립공원 중에서도 접근이 제일 용이하고 또 날씨가 비교적 따뜻하고 온화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사계절 내내 방문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것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한몫할 것이다. 하이킹, 피크닉, 계곡에서의 물놀이 등 가족이 주말이나 휴가를 보내기에 스모키 마운틴만큼 좋은 곳도 없는 것 같다. 
우리도 2007년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휴가에 맞춰서 가깝게 지내는 가족들과 함께 5월 말 늦봄의 신록 가득한 스모키를 찾았다.




아침에 출발해 스모키에 들어서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으로 비빔밥과 미역국을 준비해갔는데 큰 냄비에 재료들을 넣고 쓱쓱 비벼 나눠 먹으니 간단하고 맛도 좋았다.




다시 찾은 스모키 마운틴의 정상 클링맨스 돔 (Clingmans Dome). 작년에 얇은 재킷만 준비해 왔다가 충격적으로 추웠던 기억이 생생해서 만발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는데 5월 말이고 또 오후라서 그런지 적당히 시원한 날씨에 약간 바람이 부는 정도였다. 다른 가족들에게 대단한 정보나 알려주듯이 호들갑 떨면서 두꺼운 옷을 챙겨가야 한다고 했던 게 너무 민망했다.




그릇된 정보로 님들의 트렁크를 무겁게 했으니 벌 받아 마땅합니다. 벌 받는 컨셉의 가족사진. 어머, 우리 여보는 벌 받는걸 즐기는 취미가 있나 봐.
지금 보니 수형이 메고 있는 색색의 줄무늬 카메라 케이스가 눈에 띈다. 미안하지만, 저건 자두 양말이여. 예전에 플로리다 갔다가 새로 산 똑딱이에 모래가 들어가 고장 나버린 뼈아픈 경험 이후로 꼭 저렇게 케이스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데, 작아진 자두 양말만큼 퍼펙트한 카메라 가방은 못 봤지. 안성맞춤이라고나 할까. 지금 방금 저런 궁상들이라고 생각한 사람 손 들어 보슈.




클링맨스 돔에서 내려오는 길.
산에 가면 맑고 깨끗한 공기 마시며 몸도 마음도 튼튼해 질 거라는 생각은 완벽한 오산. 계속 증가하는 공기 오염이 스모키같은 청정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오존이다. 오존은 공기 중 오염물질이 태양광선을 받아 일어나는 광화학 반응의 결과로 생성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오염도가 심해져서 능선 부위나 정상 부근의 오존 오염도는 심지어 주변의 녹스빌이나 애틀랜타 같은 대도시보다도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올라 깊은숨 들이마시는 게 되려 독이 되는 상황.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마저 공기 오염 안전지대의 결계가 해제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우리가 이틀 밤을 지낸 캐빈. 미국에 5년을 살면서 캐빈에서 자보는 건 처음이다. 운이 좋게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곳을 찾았는데 스모키에서 조금 멀고 운전해서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시설이 정말 좋았다. 3층짜리 캐빈이라 세 가족이 제비뽑기를 해서 방을 결정했는데 우리는 3층에 당첨됐다. 자쿠지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전망은 제일 좋았다. 여름철에 왔으면 산모기들이 많았을 텐데 5월 말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서 벌레가 없어 좋았다.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캐빈들을 보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좀 불안하긴 하다.




당구대에서부터 숟갈, 수세미까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캐빈이었다. 맨날 싸구려 모텔만 전전하다 이런 곳에 오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도 든다. 매번 우리끼리만 여행을 다니다 모처럼 다른 가족들과 함께했는데 서로 배려하고 조심한 덕분에 내내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산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산을 마주하는 기분 좋은 아침은 정말 오랜만이다. 난 이렇게 산 공기 가득한 아침을 맞을 때면 옛날 아주 어렸을 때 친척 집에 놀러 갔던 생각이 난다. 충남 만대의 작은 바닷가 마을. 잠자리가 바뀌어서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는데 문을 열고 밖에 나오니 고요하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솔솔 불 지피는 냄새가 났다. 마른 소나무 가지가 타는 냄새가 더할 수 없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아이도 아이 아빠도 잠든 시간, 혼자 맞는 산속의 이른 아침이 오랜만에 나를 그때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 같았다.




케이즈 코브 (Cades Cove)에 다시 왔다. 사람들을 피해 아침에 도착했더니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안 걸렸다. 분지 지역에 자리 잡은 넓은 초원. 아직 여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들판의 모습이 너무 이뻤다. 산과 숲, 그리고 일렬로 조로록 담을 세우고 있는 나무들이 만들어낸 녹색 무지개가 맘에 쏙 든다.




2006 Photo | 작년 가을에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니 왜 작년에는 이 케이브 코즈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역시 한 지역을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사계절을 지내봐야 한다더니.




양 갈래 머리 자두는 엄마 아빠가 제일 귀여워하는 자두! 늘 머리숱이 없어서 갓난쟁이일 때도 '잘 생겼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다. 만 두 살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처음으로 머리를 묶어줬는데 분수처럼 퍼져내리는 그 얇고 가는 머리카락이 어찌나 귀엽고 뿌듯하던지. 그때부터 내내 머리를 묶어줘서 그런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인가는 머리 묶자면 질색팔색을 하고 머리띠만 척 얹고는 도망을 간다. 
생각해보니 나 어릴 적에도 엄마가 머리를 위로 치켜 묶어주는 게 너무 싫었던 거 같다. 얼마나 단단하게 묶어주셨는지 덩달아 눈이 마녀처럼 쭉 찢어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않는 거다. 그때 우리 엄마도 넌 이마를 드러내야 이쁘고 복 받는다며 나를 달래주셨었는데 나도 딸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물레방아로 이어지는 수로.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사람들의 염원도 함께 담겨있다. 바닥에 가득한 동전들.




우리가 추천해서 스모키 마운틴에 오게 된 건데 혹시 다른 가족들이 별로 재미없어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마치 우리가 스모키 마운틴의 호스트가 된 기분이 들면서 한 번쯤 곰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는데 케이즈 코브에서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던 곰이 게틀린버그로 가는 길옆의 산기슭에 출몰했다. 앞쪽으로 도로변에 차들이 (이유없이) 여러 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딱 감이 왔다. 다들 차 세워! 역시 흑곰이 출현했다. 아직 새끼인듯한 이놈은 크게 인간을 개의치 않고 제 하고 싶은 데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늦게 도착했는데도 5분가량 흑곰이 어슬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해야 할 일을 마친 것 같아 마음이 좀 편해졌다.




게틀린버그 (Gatlinburg)는 스모키 마운틴의 북쪽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테네시의 작은 마을이다. 철저하게 스모키 손님들로 먹고사는 관광도시로 1마일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따라 아기자기한 관광시설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 비하면 스모키 마운틴은 참 한산하고 조용했다. 스모키를 보러 온 사람들이 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게틀린버그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더 가면 피죤폴지 (Pigeon Forge)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여긴 더 규모가 큰 관광도시로 숙박이 저렴하고 놀이시설들도 더 많다.
이놈의 고지식한 사고방식. 사람들은 산 보러 가서 왜 산에 안 가고 관광지 놀이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까 했더랬다는. 




수형의 일탈




유령의 집




게틀린버그 시내가 너무 복잡해서 우회도로를 타고 다시 스모키로 갔다. 한눈에 보이는 게틀린버그 전경.




게틀린버그 시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스모키 계곡에서 점심으로 먹었다. 자두는 맨발로 계곡에 들어가 조약돌을 주우며 놀고 있다.




이 피크닉 장소는 스모키 북쪽에서 뉴파운드갭 로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데 바로 옆에 이런 얕은 계곡이 있어서 점심 먹고 놀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난 울긋불긋한 스모키도 좋지만 이런 파릇파릇한 스모키가 더 좋다. 내가 봄을 좋아해서 그런가. 5월의 신록을 보니 마음이 마구마구 설렌다.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