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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10

제54편. 미대륙횡단 III 제6부: 어서방없는 우리들만의 도시여행 (Portland, OR, 2010/06 )

Day 6-8 | 우리들만의 도시 여행
2010년 6월 26일 - 28일
Portland, OR


삼천마일을 달려 도착한 여기는 오레건 포틀랜드 (Portland). 4박5일간의 학회가 시작했다. 아침 마다 수형이 컨벤션 센터로 가면 난 애들을 데리고 수형없는 포틀랜드 도시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의 중심을 누비는 스트리트카 (Street Car).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았던 스트리트카는 박물관이 더 어울리는 아주 고전적인 분위기가 나는 것이었다면 포틀랜드의 스트리트카는 깨끗하고 세련된 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도시에서 건너온 것 같았다. 다운타운 안에서는 대중교통이 무료라 원하는 곳에서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어서 이렇게 애들 데리고 돌아다니기 참 좋았다.




북쪽 지방이라 그런지 6월말의 이곳은 뒤늦게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막 꽃 떨어뜨리고 돋아나는 푸른 신록이 거리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었다.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한산한 포틀랜드 시내




초여름의 화창한 날씨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도시 자체가 참 깨끗해보였다.




그 이유는 겨우내 눈과 함께 쌓였던 먼지와 더러운 때를 씻어내는 작업이 도시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도시 기반시설을 물청소하는 곳은 처음이라 참 인상적이었다.




다운타운 지리를 몰라 점심 먹을 곳을 찾으러 한참을 헤매느라 자두도 나도 너무 힘이 들었다. 겨우 찾은 멕시칸 음식점에서 부리또를 먹었다. 자두는 어지간히 맛이 있었는지 며칠동안 부리또가 다시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자두가 세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두가지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거나 (Best in the whole wide world), 너무너무 싫거나 (Worst ever). 문제는 어제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 오늘은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 여튼 자두가 좋아하면 나도 좋다.




시장기를 해결하고 나니 걸을 힘이 좀 났다. 주변 광장에서 파머스 마켓 (Farmer's Market) 을 열고 있길래 가서 구경해보았다. 파머스 마켓은 일종의 농산물 직거래 장터다. 소규모 농장주들이 모여 장터를 열고 소비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채소며 과일, 꽃과 예술품, 꿀이나 고기 등을 사고 파는 곳인데 보통 여름철이면 일주일에 한번씩 이런 장터가 열려 신선한 로컬 푸드 (Local Food: 대단위로 재배되어 먼거리 운송된 큰 회사 제품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 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우리 동네 파머스 마켓은 규모가 크지 않아 별로 살게 없었는데 이곳은 우리가 살던 데 비하면 큰 도시라 그런지 마켓의 규모도 크고 볼거리, 살거리도 많았다. 가격은 당연히 일반 마트 가격보다 결코 싸지 않다.




파머스 마켓에서 저녁에 먹을 딸기 한봉다리를 사고 나서 더 볼거리가 없나 두리번 거리는데 길 건너편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도시 복판에 사람이 모여있다는 것은 뭔가 볼거리가 있다는 뜻이라며 자두 손을 잡아 끌고 공원으로 향했다. 거리 공연을 하나 싶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모여있는 사람들의 행색이 예사롭지 않았다. 줄을 서서 뭔가를 받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앗, 이건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는 중이 아닌가. 크고 작은 도시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 곳없는 노숙자들도 함께 있기 마련이지만 유독 포틀랜드에서는 노숙자들을 많이 보았다.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카트에 살림살이 한가득 싣고 다니는 사람, 맨몸으로 다니는 사람, 꾀재재한 사람, 멀끔한 사람, 행인에게 구걸하는 사람, 모든 것에 초탈해보이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노숙자와 걸인들을 다운타운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도시가 워낙 깨끗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어서 그런지 거리에 즐비한 노숙자들조차도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수형없이 나 혼자 애들을 데리고 다니니 왠지 겁이 나서 자두에게도 절대 눈을 마주쳐서는 안된다고 일러두고 피해 다녔다.
자두에게 이곳이 무료 급식소라고 설명을 하다 가만히 내 모습을 돌아보니 세수만 겨우한 화장기 없는 얼굴, 질끈 묶은 머리, 옷은 무늬없는 티 쪼가리에 반바지, 등에는 갓난쟁이 들쳐업고 한손에는 일곱 살짜리 여자애를 데리고 다른 손에는 파머스마켓에서 산 딸기가 들은 비닐 봉다리. 이거이거 완전히 노숙자도 너무 불쌍하게 보이는 노숙자 행색이라 말을 맺지도 못하고 자두 손 붙잡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20년간 매주 일요일 3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리는 팟럭 인 파크 (Potluck in the Park) 라는 무료 급식 행사였다. 내 살림살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금전적으로 남을 돕는 일에 점점 더 인색해지는 자신을 돌아보니, 한끼의 따뜻한 밥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날씨에 상관없이 매주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나와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제일 큰 서점인 파웰 북스 (Powell Books) 에 갔다. 자두가 요즘 푹 빠져있는 캘빈 앤 하비스 (Calvin and Hobbies) 만화책을 사주었다. 파웰 북스의 분위기는 딱 서울의 종로 서적.




도덕경 아래에서 행복한 자두. 캘빈 앤 하비스라는 만화책은 예전에 야드 세일 갔다가 건진 책인데 자두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글씨를 읽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하루종일 끼고 킬킬대며 읽는 것이 신기해서 마냥 읽게 두었더니 밤도 샐 판이다. 문제는 책 속의 주인공인 캘빈이 결코 엄마들의 이상형이 아니라는 사실. 캘빈에 빙의된 자두가 캘빈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금서로 지정하게 된 제1호 책들이 되었다는.




황당했던 경험 한 가지. 포틀랜드 다운타운에 도착해서 퍼블릭 파킹에 주차를 하려고 주차 티켓 파는 기계앞에 서서 남편이랑 열심히 읽어보고 있는데, (멀쩡하게 생긴) 한 남자가 우리 뒤에서 기다리다가는 자기가 여러 번 해봤으니 어떤 시스템인지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괜찮으니 먼저하시라고 했더니 신용카드로 티켓을 사면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더니 갑자기 전화를 받으면서 뭔가 낭패라는 듯한 표정으로 10초간 통화, 그러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일행이 이미 다른 주차장에서 티켓을 샀으니 자기가 금방 산 티켓을 사주면 안되겠냐고. 친절한 수형이 대번에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5불을 주었고, 그 남자는 땡큐하면서 잽싸게 길을 건너 뛰어가는데, 뭔가 찜찜한 이 기분. 주차장에 차도 없이 나타난거 하며, 지나치게 친절한 행동들, 근데 더 찜찜한 건 도대체 우리한테서 뭘 얻어낸 건지 모르겠다는 사실. 촌사람들 서울와서 코 베인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마크 스펜서 호텔. 이틀은 학회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묵었고 나머지 이틀은 이곳에서 지냈다. 아파트를 개조한 호텔이라 고급호텔인데도 객실에 부엌시설이 되어 있었다. 부엌시설이 있는 호텔 중에 아침을 주는 곳은 거의 없는데 이 호텔은 아침 뿐 아니라 오후 3시면 아주 맛있는 쿠키도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여행이라면 오후 3시에 호텔에 남아 있을 일이 없지만, 이곳 포틀랜드에서 할 일 없는 우리들은 이 오후의 티타임을 근사하게 즐길 수 있었다. 호두를 위한 크립도 무료로 주고, 여튼 참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호텔이다.
여행 중 호텔은 그저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진 우리에게 크게 기억에 남는 호텔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또 하나가 몇년 전 플로리다에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했던 마이애미 호텔이다. 싼 가격에 낙찰 받아 너무나 호사를 누렸던 그곳, 특히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나온 근사한 아침은 산타의 선물과도 같았던 기억이 난다.




호텔 공기가 건조한지 자꾸 코를 훌쩍대는 호두. 시키는대로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두랑 나랑 몇 번이고 흉내를 내었다.




자두는 만으로 일곱 살. 아직 유치가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다섯 살 때부터 이를 빼고 투스 페어리 (Tooth Fairy) 한테 선물과 돈을 받았다고 자랑하는데 이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아이는 자두 밖에 없다. 그러더니 지금 이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흔들린다. 결정적으로 아랫니는 안쪽으로 영구치가 자라고 있는게 보였다. 너무 놀라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 여행의 제일 중요한 목표는 자두 이빼기. 우선 제일 많이 흔들리는 윗니부터 빼보자고 치실을 사와 잘 묶고 잡아당겼는데 실패했다. 치실이 잇몸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피가 나고 괜히 아이만 아프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결국 여행 중에는 이를 못 빼고 7월 어느날 혼자 놀다가 무릎으로 이를 쳐서 첫니를 뺐다.




하루는 과학 박물관에 갔다. 날씨에 관심많은 자두, 오늘은 날씨를 예보하는 아나운서가 되어 티비에 나왔다.




그 비밀은 바로 요것.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실험할 수 있어 더욱 좋아하는 과학관.




다운타운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 다니기 편했는데 상대적으로 주변 지역은 차도 많고 길도 복잡해서 운전해서 다니기 좀 힘들었다. 우리가 지나쳤던 많은 도시들이 강을 끼고 발달해 있었다. 따라서 다리는 중요한 도시의 일부. 다리는 도시의 다리 역할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유명하다는 여러 다리들을 건너 봤지만 한번도 걸어서 건넌 적은 없었다. 이번엔 아주 작정하고 걸어서 건너보리라.




왠지 낯익어 보이는 강 건너 풍경




다리 옆에 흔히 보기 힘든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에서 보는 포틀랜드 다운타운. 마치 한강에서 본 서울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반가웠다.




여기저기 헤매다 지나친 차이나 타운




우리가 건넜던 그 다리가 알고 보니 2층 짜리였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것은 아래층.




시간도 많은데 또 건너지 뭐. 이번엔 아래층으로 같은 다리를 또 건넜다. 아주 원없이 건너는구먼.




억지 미소라도 왠지 예뻐 보이는 자두 사진.




다리 건너는 중간에 신호등이 있다. 사람만 다니는 도로에 왠 신호등인가 했더니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배가 지나갈 때면 다리 중간 부분이 들어올려진다. 강을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운좋게 배가 지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나있다.




3,000 마일의 대부분을 운전하고 또 하루종일 학회에 참석하고,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코피를 흘린 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