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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10

제57편. 미대륙횡단 III 제9부: 일곱 도시에서의 불꽃놀이 (Olympic National Park, 2010/07)

Day 12 | 타인과의 여행
2010년 7월 2일
Lynnwood, WA - Olympic National Park - Port Angeles, WA
150 miles / 240 km


올림픽 국립공원 (Olympic National Park) 으로 가는 길. 공원의 북쪽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에드몬드 (Edmonds) 에서 킹스턴 (Kingston) 까지 가는 페리를 탔다. 우리 시빅이를 데리고 배를 타는 건 처음이라 모두 신났다.




혼자서 타이타닉 연출해본 조여사. 포토샵으로 기럭지 좀 늘여놓아볼 걸 그랬나.




올림픽 국립공원. 진짜로 난 내가 살면서 여기에 와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내 마음속의 워싱턴주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 게다가 전체 공원의 2퍼센트 밖에 볼 수 없다던 올림픽 국립공원은 미국 내에 존재하는 가장 오지였기 때문이다.

올림픽 국립공원 지도 | Olympic National Park Map


일단 허리케인 리지 (Hurricane Ridge) 부터 시작하려는데 올라가는 길이 영 심상치 않다. 안개라기 보다는 구름 속을 달리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마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포트 앤젤레스 (Port Angeles) 비지터 센터에서 S선배 가족과 재회했다. S선배는 한국에서 석사할 때 같은 실험실에 있었던 선배신데 이번에 수형의 학회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 캐논 비치 (Cannon Beach) 에 함께 갔다가 헤어졌었다.
허리케인 리지 가는 길의 나무들의 높이가 엄청나다. 그냥 볼 때는 모르겠더니 선배와 선배 아들 덕분에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 고대하던 허리케인 리지에 올라갔는데 능선은 커녕 코앞의 사람도 구분이 안 갈 지경이다. 능선까지 올라오기 전에 비지터 센터에 허리케인 리지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CCTV 가 있는데, 안개 때문에 화면이 뿌옇게 보이는 걸 보면서도 혹시나 하고 올라왔다. 결과는 역시나.




내려오는 길에 S선배가 중요한 운전 팁을 하나 알려 주었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기어를 D2로 놓고 엔진 브레이크를 이용하면 훨씬 운전도 쉽고 차도 무리가 덜 간다는 것이다. 수형이 시험해보더니 반색하며 이후에 엄청 써먹었다는.




허리케인 리지에서 내려와 US101 도로를 타고 매디슨 폭포 (Madison Falls) 에 갔다. 짧은 트레일이라 애들에게도 좋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폭포는 아담한 동네 폭포 같았다.




자두는 매디슨 폭포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며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했다. 너라도 예쁘게 봐줘서 고맙구나.




매디슨 폭포를 떠나 엘화 리버 (Elwha River) 를 타고 올라가면 레이크 밀스 (Lake Mills) 가 나온다.




숲 속의 나무 터널을 지나 포트 엔젤레스 (Port Angeles) 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마운트 레이니어와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동안 낚시 좋아하는 S선배 가족은 바닷가에서 게도 잡아 삶아 먹고 또 연어 낚시도 했다고 한다. 우리 준다고 연어 몇 토막을 남겨 오셨길래 큰 것도 잡으셨다 했더니, 옆 사람이 잡은 걸 사온거라는.
노릇하게 구워서 마요네즈를 발라먹은 그 연어가 어찌나 맛있던지 라면과 찰떡 궁합이었다는.






Day 13 | 북미대륙의 열대우림
2010년 7월 3일
Port Angeles, WA - Olympic National Park - Renton, WA
350 miles / 560 km


US101 도로를 타고 올림픽 국립공원의 나머지 부분을 돌아보기로 했다. 레이크 크레센트 (Lake Crescent) 를 따라 가는 길에 호숫가를 거니는 사슴들을 만났다.




레이크 크레센트 선착장의 풀밭. 꽃으로 수를 놓는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초여름 꽃밭이다.




자두가 S선배 아들 S군과 찍고 있는 이 씬은 순정만화 여주인공이 어릴적 동네 오빠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나 나올 법한 꽃밭의 추격씬.




레이크 크레센트의 물빛. 에머랄드 물빛이 이런 것이구나.




올림픽 국립공원은 산악지대와 열대우림, 야생해안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이곳이 최근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영화 트와이라이트 (Twilight) 다. 예전에 실험실 친구가 밤을 새고 읽으면서 이 나이에 이런 유치한 로맨스에 빠질 줄 몰랐다고 하던 소설. 한국에서 유명 드라마 촬영지가 여행코스로 각광받는 것처럼 이곳 폭스 (Forks) 와 올림픽 공원도 영화 트와이라이트 촬영으로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는데.




목재 공장 같은 이곳이 바로 올림픽 공원의 해변. 고사목을 치우지 않고 자연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 일종의 야생 해변이다.




이런 원시 형태의 바닷가를 보고서 난 작은 충격을 받았다. 한번도 이런 해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보았던 많은 바닷가들이 모두 인간의 손으로 깨끗이 다듬어진 것이라는 터. 산도 바다도,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모든 자연 풍경은 최소한의 인간의 손을 거친 것이지 원래 있던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자연을 좋아하네 어쩌네 운운하던 것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이런 해변을 치우지 않고 보존할 생각을 했는지 참 놀랍다. 이런 크기와 부피의 나무들이라면 쉽게 치우기도 어려웠을테지만. (아마도 사람들 때문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나무들 표면을 보고 있으니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청소시간이면 아이들이 조로록 앉아 왁스칠하고 걸레질 하던 생각이 난다. 참 질리게도 했지, 지금도 코 끝에서 맴도는 왁스 냄새가 한편 그립기도 하다.




해변의 고사목들도 아주 오래전에는 이 나무처럼 우뚝 서서 숲을 이루고 있었을테지.




해변에서 US101 을 타고 다시 내륙으로 들어오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지역이 나타나는데 바로 호 열대우림 (Hoh Rain Forest) 지역이다. 아이들은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이곳의 비지터 센터에서 쥬니어 파크 레인저로 임명 받았다.




비지터 센터 근처의 짧은 트레일을 돌다보니 몇발짝 걷지도 않았는데 정글의 분위기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온통 기생식물로 뒤덮힌 이 나무들은 만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나무 유령 같기도 하고, 작은 마을에 신을 모시는 성황당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나무에 낀 이끼가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사람이 길을 닦아놓지 않았다면 감히 들어와 볼 엄두도 못냈을 것 같은 그야말로 정글스러운 숲이다. 올림픽 공원에서 일반인이 볼 수 있는 곳은 2 퍼센트 밖에 안된다는데 그 이유가 납득간다. 납득이 안되는게 아니고 납득이 된다고.




어느덧 해가 넘어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는 US101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들른 루비 비치 (Ruby Beach).




루비 비치의 해안에는 성격좋게 생긴 납작 돌들이 널려있다. 이곳에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이 만들어지고 있다.




역시나 이곳도 육지에서 흘러나온 고사목들을 그대로 보존해두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방치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아직 공원을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해가 지는 걸 보면 오늘도 밤길 운전의 스릴이 예상된다.






Day 14 | 일곱 도시에서의 불꽃놀이
2010년 7월 4일
Renton, WA - Seattle, WA - Spokane, WA
300 miles / 480 km


도대체 어떻게 온 씨애틀인데 도시 사진이 이거 달랑 한장이냐. 씨애들에 사시는 수형의 학과 선배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었다. 우리와 같은 해에 미국으로 온 J 선배는 수형과 같은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때가 수형과 내가 소개팅으로 만나서 막 교제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는데, 데이트 시간을 좀 벌어볼까 싶어 수형과 같은 학원을 신청한 나는, 집의 방향이 비슷해서 꼭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그 선배가 야속했더랬다. 가뜩이나 유학 준비한다고 도서관, 학원을 전전하며 데이트하는 것도 억울한데 둘이 쓰기도 아까운 시간을 셋이 나누어야 한다고 살짝 원망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것도 재밌는 추억거리라 J 선배 가족과 점심을 먹으며 그런 구닥다리 옛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J 선배와의 점심 뒤에는 씨애틀 다운타운으로 가서 S 선배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진의 식당이 씨애틀의 명소 크랩 팟 (Crab Pot) 인데 삶은 해물에 라면스프를 뿌려 먹는 유명한 곳이란다. 손에 묻히고 먹는거 질색하는 수형도 턱받이 두르고 열심히 먹었다는.




S 선배 덕분에 가족 사진도 찍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씨애틀을 떠나고 있다. 다운타운에서 언덕길을 오르며 씨애틀은 차 가지고 오면 절대 안되는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신호 대기 할 때부터 상당한 경사에 중력을 느끼며 불안하던 차에 출발하려는데 바퀴가 마구마구 헛도는게 아닌가. 차가 뒤로 밀리는 건 고사하고 홀까닥 뒤로 뒤집어 질 것 같은 공포감까지 느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달리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옛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씨애틀 돌아보기는 물 건너 갔지만 나는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는 한번도 장거리 여행에 다른 가족과 함께 한 적도 없고, 또 여행지에서 지인을 방문해 본 적도 없다. 사실 미국에서 8년을 살았지만 한국에서 알던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따뜻해지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 떠나온 지 오래되서 한국에서 나의 삶이 다 지워지고 잊혀진 것만 같은데 이렇게 옛 사람들을 만나니 새삼 내가 한국에서도 삼십년을 살았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게 잃어버린 과거와의 끈을 다시 잇게 된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계획했던 여행 일정이 무산되고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도 사람에게서 받은 정으로 더 많은 것을 채워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배웠다. 내 인생 다시 못 올 씨애틀이라고 해도.




7월 4일 독립기념일. 씨애틀을 떠나 동쪽을 향해 콜롬비아 고원의 벌판을 지나는 우리의 7월 4일은 그 땅의 생김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독립기념일인데 불꽃놀이도 못본다며 샐쭉해진 자두를 어떻게 위로하나 고민하던 차에 오른쪽 차창 너머로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코딱지만한 불빛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지는게 분명히 어느 작은 타운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같았다. 자두야, 저거 봐 불꽃놀이다. 자두가 실망스런 표정을 채 거두기도 전에 다시 우리는 어두운 벌판으로 향했다. 십여분 지났을까, 이번엔 왼쪽 차창에서 저 멀리 또 불빛들이 나타났다. 자두야, 이번에는 저쪽이야. 그리고 또 다시 사라진 불꽃들. 그렇게 타운을 지날 때마다 멀리서 또는 조금 가까이서 불꽃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도시를 아주 가깝게 지날 무렵, 꽤나 가까이서 폭죽이 터지고 있는데 이런, 갑자기 뒤에서 번쩍이며 경찰이 따라왔다. 수형이 속도를 잘 맞춰 달렸는데 왜 걸렸지 했더니 차 뒤 헤드라이트 하나가 깨진 것을 안고쳤다며 경고를 줬다. 근데 너무 고마웠던 것이 덕분에 차를 갓길에 세우고 경찰 아저씨를 기다리면서 불꽃놀이를 잘 감상했다는 사실. I-90 를 타고 씨애틀에서 스포케인 (Spokane) 까지 가는 280 마일을 달리는 동안 우리가 본 불꽃놀이는 모두 일곱 번. 아니, 하루에 일곱도시의 불꽃놀이를 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솔직히 봐도 본 것 같지도 않은 불꽃놀이였지만, 우리 말을 듣고 자두도 그제서야 으쓱한 듯 마음을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