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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10

제59편. 미대륙횡단 III 제11부: 애꾸가 된 자동차 (Devils Tower, Mt. Rushmore, Custer, Badlands National Park, 2010/07)

Day 17 | 기분좋은 악마의 기운
2010년 7월 7일
Billings, MT - Spearfish, SD
350 miles / 560 km


공포의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출발하는 사람들. 
어제밤 분명히 베어투스 하이웨이를 넘긴 넘었는데. 사진을 검색해보니 그 웅장한 풍광 옆을 눈감고 달렸다는 생각에 미추어 버릴 것 같다.
하지만 한편 베어투스 하에웨이에 대한 설명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위험천만한 산악도로, 천길 낭떠러지' 라는 문구를 보면, 눈을 감고 달렸던 귀를 막고 달렸던 간에 한여름에 휘몰아치는 눈발 맞으면서도 사고 없이 넘어올 수 있던 것에 대한 감사로 몇번씩 마음을 쓸어내려도 모자랄 판이라는 걸 안다.




내가 최악의 드라이브 코스로 뽑았던 와이오밍 동부 지역을 또 다시 달리고 있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유쾌한 길이었다는 사실. 사람과의 만남도 타이밍과 인연이 좌우하듯이 어떤 장소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2007년에 왔을 때는 날씨도 덥고, 해가 유독 뜨거운 오후의 드라이브였는데다 몸도 피곤했을 때 이 지역을 지나가서 그런지 이곳이 너무 힘들고 싫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구릉과 같은 하늘이 왜 이렇게 달라 보이는지.




서부의 총잡이들이나 살 것 같았던 황량한  와이오밍 셰리던 (Sheridan) 이 이번에 다시 보니 월마트까지 있는 꽤나 큰 도시였다. 치명적이던 애숙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데빌스 타워 (Devils Tower) 로 가는 길. 저 멀 악마의 탑이 보인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마의 탑. 악마라는 말을 듣고 순진한 자두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상징' 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 건지. 자두에게 '신' 의 존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게 한 다섯 살쯤부터였는데, 나 자신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신의 존재를 말로 설명해주려니 스스로도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 투성이라 참 곤란한 적이 많았다. 어느날 진지하게 하느님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바이러스 같은 건 왜 만들었냐고 하는데 당황 당황. 이거 진화론까지 얘기 해줘야 하는거야?
게다가 동화책을 읽어주다보면 신이 어찌나 많은지, 하늘에는 옥황상제, 바다에는 용왕님, 산에는 산신령. 우리나라에도 신적인 존재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유대인의 신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모태신앙을 가진 나도 아직까지 가끔씩 '사실' 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의 존재를 자두는 완벽한 신뢰를 가지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진정 순수한 신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자두가 '나도 하느님이 살고 있는 곳에 가고 싶다' 고 할 때는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는다는. 
하루는 자두가 이유없이 심하게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 무렵, 아이를 달래며 우리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악마와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게 잘 먹혀 들어가 을음을 그치고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처음으로 뽀로로를 보게 된 자두. 빠져 나오기 어려운 뽀로로의 세계에 한참 몰입하던 자두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내 귀에 대고 수줍은 듯이 묻는거다. 저게 악마야? 맛있는 과자를 친구와 나누어 먹을 것인지 고민하는 크롱의 양쪽 귀에 작은 악마와 천사가 각각 크롱을 설득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맞다 맞어. 거봐, 엄마 말이 딱 맞지?
이야기가 다른데로 흘러가지만 어쨌던 그러던 자두가 학교에 가면서부터 엄마 말을 불신하기 시작하는데, 닭을 먹으면 얼굴이 까맣게 된다고 친구가 얘기 해줬다면서 절대로 닭을 먹지 않겠다는 둥, 새로운 음식을 해주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은거냐 엄마 스스로 한거냐는 둥 (질문의 의도가 도대체 뭔데?). 벌써부터 친구의 말이 절대적인 파워를 가지게 되면 나는 앞으로 우야면 좋노.  




데빌스 타워 국립 기념물에 도착했다. Monument 라는 말을 번역하기가 참 어려운데, 국립 공원과 비교 하자면 국립 공원은 넓은 지역에 걸쳐 보전/보호가 필요한 경우에 지정하는 반면에 보호 가치가 있는 지역이 넓지 않거나 단일물일 경우에 국립 기념물로 정한다. 




수피가 붉은 소나무는 참 오랜만에 본다. 자그마한 공원 초입부터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 악마의 탑에서 기분좋은 기운이 느껴진다니 어찌된 일인가.




멀리서 보던거 와는 달리 탑이 굉장히 높아서 깜짝 놀랐다. 여행 다니다 보면 이렇게 주변 지형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뜬금없이 불쑥 나타나는 지형물들이 있는데 참 신기하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 거인들이 놀다가 박아 놓거나 집어 던지고 갔다고 밖에는 설명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애틀랜타의 스톤 마운틴도 그렇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지에 이렇게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이 지형물들은 정말 자연사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공원 입구의 프레리 독. 사람처럼 서서는 씩 웃는 표정으로 쳐다보는게 혹시 저놈이 변신한 악마 아냐.




드디어 사우스 다코다. 처음 밟아보는 주, 발도장 하나 늘었다.






Day 18 | 사우스 다코다 돌아보기
2010년 7월 8일
Spearfish, SD - Rushmore NP - Custer NP - Badlands NP - Rochester, MN
700 miles / 1130 km


멀찌기서 코딱지 만큼 보이는 바위 조각상들. "에게~" 소리가 절로 나온다. 멀리서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렸는데, 멀뚱이 서있던 한 동양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말을 붙인다. "How are you? By the way, do you know one of your front light is out?" 기껏해야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는데 우리에게 그렇게 무심히 말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확인해보니 정말 운전석쪽 전조등이 켜지질 않았다. 쨔식, 크게 될 놈일세.
그나저나 우리 차 시빅이가 지칠대로 지친 모양이다. 우리가 너무 부려먹긴 했지.




마운트 러쉬모어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 라는 이곳의 이름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겨우 외웠다. 이름이 낯설기도 하고 보통은 큰 바위 얼굴 (Face Rock) 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바위 조각상으로 들어가는 입구. 주별 상징기 아래로 걸어가는 동안 자두는 눈을 부릅뜨고 인디애나주를 찾았다. 지역사랑이 뜨거운 우리 딸. 조지아주를 떠나 인디애나주로 처음 왔을 때는 그렇게 조지아를 그리워 하면서 인디애나에 대한 적개심 충만이더니 어느새 인디애나를 제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다.

2012 Updated | 인디애나를 떠나 위스컨신으로 이사왔을 때 한참을 인디애나 생각에 눈물짓던 자두가 지금은 조지아, 인디애나, 위스컨신 중에 어디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니 대번에 위스컨신이란다. 어느 곳을 가던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하고 충성을 바치는 그녀를 변절자라 부르지는 마오.




아니 내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규모가 크긴 했으나 왠지 짓다 말은 듯한 느낌, 주변 마무리가 공사가 덜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좀 의외였다.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테오도르 루즈벨트 (Theodore Roosevelt),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




러쉬모어에서 나와 들른 이곳은 커스터 주립공원 (Custer State Park). 지형학적으로 이 지역은 미국의 대평원에 속하는데 이 커스터 주립공원이 위치한 블랙힐스 (Black Hills) 는 대평원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일종의 지형학적 이단아이다.




바늘귀를 올라가는 여성 암벽 등반가.




곳곳에 거대한 바위를 뚫어놓은 인공 터널이 있다.




커스터 주립공원은 인디안과의 전쟁 당시 활약한 백인 장교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블랙힐스에는 커스터 주립공원에 버금가는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이 잇는데 크레이지 호스는 커스터를 위시한 백인 군대와 용맹하게 싸웠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조각상이 될 크레이지 호스 얼굴 조각은 1947년에 처음 시작된지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두 대장을 기리는 공원이 위치한 이 블랙힐스는 도드라지는 지형적 특성처럼 팽팽하게 맞섰던 두 적들의 치열했던 전쟁과 전투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는 듯 하다.




수형이 꼭 좀 찍어보고 싶어하는 피사체가 바로 이 짚더미들.




늘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나타나는 풍경이라 달리는 차안에서의 드샷이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초점이 조금 맞았다.




이곳은 사우스 다코다의 배드랜즈 국립공원.




우리 여정의 마지막 여행지다.




쓸모없는 땅이라 치욕스러운 배드랜드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




여행의 끝물. 모두가 지쳐 나가 떨어지기 일보직전. 이미 몸과 마음은 집으로 자석같이 끌리고 있는 중. 산해진미와 금수강산이 대수냐. 그래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모조리 앞쪽 일정으로 잡는 것이 상책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배드랜즈. 이번 대륙일주 기간 중 체감 40도에 육박하는 한증막에서부터 눈발 날리는 고산 지역까지 두루 섭렵하다보니 냉방병 걸릴 지경이다. 싸가지고 간 음식들도 이미 바닥 나버리고 3분카레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처지. 이렇게 긴 여행은 수형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이라 RV 차량 가지고 한 달 이상씩 캠핑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해보인다.




여행기를 쓰는 지금도 배드랜즈 국립공원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벌써 전체 여행기 마무리 코멘트에 들어갈 정도니.




학회 준비에 피곤한 몸 이끌고 긴 여정 운전한 수형이나, 좁은 뒷자리 두 카시트에 낑겨 앉아 온갖 잡무와 실무를 도맡아 한 나 자신, 그리고 8개월의 어린 나이에 부모 손에 이끌려 하루종일 카시트에 유모차에 아기띠에 감옥 생활 따로 없는 나날을 보낸 호두까지 모두 고생들 했소. 자두는 글쎄, 생각보다 여행을 즐겼고 자신에게 부여된 큰 임무 없이 하고 싶은거 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그다지 고생한 것 같지는 않군. 호두가 태어나기 전에는 장거리 여행 차 안에서 버텨야 하는 자두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은 호두에게 마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서부터 자동차 여행을 다녀 버릇해서 그런지 내가 이거저거 준비해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만화책 한 권으로 장시간 이동을 버텨내는게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하고 참 고맙다.




사진으로 보기엔 참 청명한 날씨인데 실제로는 눈도 뜨기 어려운 뜨거운 여름 날씨다. 아무래도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 (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 와 비슷한 지형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감흥도 깊지는 않다.




멀리서 달려오는 모터 사이클 부대를 보고 서둘러 카메라를 들었다. 예전에 아리조나를 처음으로 지날 때, 점심으로 타코벨을 먹으러 갔다가 몰 주차장에 세워진 엄청난 모터 사이클 부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국립공원에 가면 여행하는 모터 사이클 족을 심심치 않게 보는데 하이웨이를 탈 수 없어 국도로 다닐 텐데 그렇게 여행하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오늘 갈 길이 무려 500 마일인데 벌써 2시를 훌쩍 넘은 시간. 호텔 예약 시스템인 프라이스라인이 언젠가부터 당일 오전까지 예약을 받아주기 때문에 다음 날 스케쥴이 확실치 않은 장거리 여행할 때 참 유리해졌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리하게 스케쥴을 잡은 나는 정말로 무모한 인간.




성심 성의껏 차 유리창을 닦는 수형. 더러운 창을 통해 찍은 사진이 나중에 봤을 때 사람을 얼마나 절망에 빠뜨리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기회만 되면 수형이 열심히 창을 닦아 주었다.




아까의 꼬마 학생이 알려준대로 전조등이 나갔는데, 문제는 당장 라이트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 해지기 전에 숙소까지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배드랜즈 국립공원을 출발한 시간이 이미 오후 세시가 넘었고, 숙소가 있는 미네소타의 로체스터까지는 500 마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예상 이동시간 8시간.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미네소타에 들어서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시간도 9시 반이 넘어버렸다. 일몰이 무섭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로체스터까지는 3시간 반이나 남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I-90 도로에는 차들이 많지 않아 한쪽 등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달렸다. 어떨 땐 앞차의 조명에 의지하려고 바쁘게 쫓아가기도 했는데 부리나케들 달아나는 것이 아마도 애꾸눈의 시빅이 쫓아오는게 무서웠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향등을 켜고 달렸으면 되는 걸 왜 바보같이 어둡게 달렸는지. 참, 우리는 미국에서 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처 몰랐지만 한국에서 오신 지 얼마 안되는 이웃분이 장거리 여행 다녀온 후 미국 고속도로에는 왜 가로등이 없냐고 의아해하던 기억이 난다. 워낙 도로가 길고 도시 간 간격도 넓어서 거길 다 불빛으로 채우자면 몇십 년 걸릴 듯. 로체스터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미네소타를 달려오긴 했는데 어둔 밤이고, 전조등 때문에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달려와서 그런지 미네소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Day 19 | 집으로 가는 길
2010년 7월 9일
Rochester, MN - West Lafayette, IN
500 miles / 800 km


사우스 다코다나 미네소타와는 달리 위스컨신주에 들어서자 숲들이 제법 보이는게 주변 풍경이 조지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위스컨신 매디슨에 가까와 오면서 차들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낯설고 적응 안된다 싶었더니 세상에 우리가 그동안 달린 곳들을 생각해봐라. 참 어지간히 외로운 길만 골라서 달렸을 뿐 아니라 밤 운전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사람없는 세상을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무서운 일인가를 실컷 배운 것 같다. 물론 은근 짜릿하고 스릴있고 즐겁다고 느낌도 있었다면 그건 든든한 수형과 내가 지켜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정비 잘 된 우리 시빅이 덕분이겠지.




우리 차 시빅이와 똑같은 모델의 차가 앞에 달리고 있었다. 내 뒷태를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었다.

2013 Updated | 우리 시빅도 참 무던한 것이 10년을 타면서도 세차장에서 세차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 지금까지 딱 두 번 물청소한게 전부. 여름이면 소나기가 닦아주고 겨울이면 눈이 닦아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은색 차를 사라고 권했는지 따로 청소하지 않아도 크게 더러움을 타지 않아서 더 무심하게 지냈는지도. 이상하게 집 청소는 열심히 해도 차에는 손이 안가서 솔직히 참 더럽게도 썼다. 그래도 정말 한결같이 큰 사고 없이 우리를 데리고 다녀준 걸 보면 정말 두고 두고 고마운 친구 같은 차였다. 2003년형 모델이 나오기 직전에 시운전용으로 쓰던 2002년 시빅이를 15,200 불에 사서는 10년 간 11만 마일 조금 못되게 탔는데 주차장 접촉사고 받친 거 한 번, 받은 거 한 번 빼고는 그 험한 장거리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번도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 적 없는 정말 가족같은 차였다. 더럽게는 썼어도 관리는 잘 해줘서 나중에 다른 사람 손에 넘길 때 까지도 짱짱했었는데, 정말 생각 같아서는 한국에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나 결국 중국인 포닥에게 팔고 떠나 보내며 자두랑 나는 둘 다 손 꼭 붙잡고 울었다는.




그렇게 여행을 다니며 표지판과 웰컴 사인을 찍어대면서 정작 내가 살았던 곳에 대한 표지판은 없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하며 떠나는 순간까지 미뤄두는 버릇 때문에 미국 40개주 온갖 도시의 이름이 담긴 표지판 사진 속에 내가 살았던 Athens 와 West Lafayette 가 적힌 사진은 없다.
18박 19일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떠나 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서는데 다리의 감각이 낯설다. 여행 기간 동안 신을 벗고 돌아다닌 적이 없었군. 36년의 습관이 고작 20일만에 낯설게 변하다니 난 아직 적응 빠른 젊은이.
집에서 풍기는 냄새도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떠난 20일 동안 사람의 체취가 다 빠져버렸나보다. 자두와 호두는 집에 오자마자 지들 책, 장난감과의 해후에 젖어있다. 다들 정말 고생했다, 짐은 일단 나중에 풀자. 컴퓨터 켜고 인터넷 연결. 굶었던 세상 소식부터 들여다본다. 내일부터는 일상 복귀 모드, 언제쯤 다 정리가 될까. 길었던 여행의 여운에 젖어있기엔 눈앞의 빨래가 너무 많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