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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7

제27편. 록키산맥을 따라가는 국립공원 순례기: 옐로스톤 국립공원 A-Z (Yellowstone National Park, 2007/08)


May 2011 | 어릴 적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나와 동생들의 최고 관심사는 선물로 들어온 과자 종합선물세트. 과자부터 사탕, 껌, 캬라멜까지 없는 게 없는 보물 중의 보물상자. 평소에 먹지 못하는 맛있는 군것질거리들 가득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Yellowstone National Park) 은 자연의 종합선물세트다. 산과 숲, 강과 호수, 계곡과 폭포, 초원과 황야 그리고 무엇보다 옐로스톤에서만 볼 수 있는 간헐천과 야생동물들이 담겨있는 완전히 특별한 선물세트이자 울타리 없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해마다 안식년으로 백 년간 문을 닫는다는 루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하는 야생 동물원 옐로스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미국의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옐로스톤에서만 생중계하는 화산활동의 현장 때문이다. 정확히는 열수현상이라고 부르는 이 화산활동은 지표의 물이 지하의 마그마를 만나면서 일어나는데 옐로스톤의 경우 지표에서 5킬로미터 정도의 얕은 깊이에 마그마가 있기 때문에 간헐천, 온천, 머드팟, 증기굴뚝 같은 여러 형태의 열수현상들이 가능하다고 한다.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 잃어버린 차 열쇠를 기적같이 찾아내고 드디어 글래시어 국립공원을 떠났다. 록키산맥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식생이 눈에 띄게 변해 갔다. 급격히 달라지는 주변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US89번 도로. 글래시어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뒤로 사라지고 숲이 나오는가 싶더니 점점 나무가 듬성듬성, 그러다 어느 순간 큰 키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지를 달리고 있었다. 이곳 몬태나도 와이오밍주 못지않게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인지, 달려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는 가끔씩 나타나는 소 떼들 뿐이다. 도대체 보살펴 주는 주인이 있기는 한 건지. 자유롭다 못해 야생으로 돌아간 듯한 몬태나의 소들이다. 땅 주인이 없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런 땅덩어리가 누군가의 소유지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예전에 몬태나에 제한속도 없는 도로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만하다.
하얀 모래 먼지 풀풀 날리는 허름한 타운을 두어 번 지났는데 아마 내가 지금까지 본 제일 작은 타운인 듯, '어, 타운이다!' 하고 말하는 순간 끝나는. 그렇게 남쪽으로 달려 I-15 와 합류해 내려가다 보면 몬태나의 주도인 헬레나 (Helena)가 나온다. 헬레나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그저 설레는 마음뿐이다.




미국 내 다른 국립공원들과 달리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부의 도로는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형태가 아닌 8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동선을 잘 짜야 한다. '8자 한번 그리고 나오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원 입구만 다섯 군데, 또 숙박시설의 위치 등을 고려하면 동선 짜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계절에 따라 혹은 도로 공사 때문에 일부 구간이 폐쇄되는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결국 일부 구간은 포기하거나 반대로 여러 번 지나쳐야 할 수도 있다. 여행도 치열한 머리싸움이라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도 | Yellowstone National Park Map




2010 Photo | 미국의 국립공원은, 그랜드 캐년처럼 평범한 길 끝에 '짠' 하고 충격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공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온몸을 압도하는 강한 기운으로 발 딛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후자의 대표급이다. 리빙스턴 (Livingston)에서 I-90를 빠져나와 US89 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분위기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오, 완전 기대되는데.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여행기 | Grand Canyon National Park




2010 Photo | 2010년에 다시 옐로스톤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땐 하루 일정으로 다녔는데 계절이 한 달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그림의 색이 많이 달랐다. 미 북부 산악지역은 워낙 고도가 높다 보니 겨우내 내린 눈이 잘 녹지 않아 봄/여름이 늦게 시작되고 가을이 빨리 찾아온다. 다른 지역에서는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가 이곳에서는 짧은 시간에 압축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삶이 지루하십니까. 기다리는 일이 있는데 시간이 안 간다구요. 옐로스톤으로 오세요, 6개월을 석 달처럼 만들어 드립니다.




가디너 (Gardiner)를 지나면서 와이오밍주로 다시 들어왔다. 가디너에서 들어가는 옐로스톤 북서쪽 입구. 맘모스 핫 스프링스로 가는 길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끼었다. 비지터 센터로 올라가는 마지막 언덕을 오르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도로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는 일군의 낙타떼.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분명 낙타도 아니고 또 사람이 만든 동상도 아닌 살아있는 동물들이다.




바로 요렇게 생긴 놈들이다. 물론 우리가 비지터 센터에서 본 놈들은 최소 열다섯 마리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놈들이 자주 도로를 막고 배 깔고 누워 시위라도 했는 모양이다. 도로 중앙에 만들어진 작은 잔디밭에는 작은 동상이나 표지판이라도 세워져 있을 법한데 놈들이 떠난 자리를 보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잔디밭인 것이 오로지 놈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는 듯했다. 어쨌든 정말이지 옐로스톤과의 강렬한 첫 대면이었다. 진작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비를 피하고 다시 돌아오니 놈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들은 바로 엘크 (Elk). 옐로스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로 툭하면 이렇게 도로에 출현해서 사람의 시선을 즐긴다. 지금 사진 속의 엘크는 도로를 건너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한참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게 아무래도 포토타임을 가지는 것 같다. 이렇게 옐로스톤 내부에서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동물들의 출현으로 늘 브레이크 밟을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한다. 실제 로드킬 (Road Kill)이 옐로스톤을 비롯한 국립공원 야생동물들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원인이라고 한다. 국립공원에서는 규정 속도를 준수합시다!
- 이상 크리스마스 아침에 에버글래이즈 국립공원에서 과속으로 경고 먹은 이 왈.




맘모스 핫스프링스 (Mammoth Hot Springs). 이 지역은 다른 곳과는 달리 지하의 뜨거운 물이 주변의 석회암을 녹여서 지표로 운반하기 때문에 이곳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석회암 침전물을 만든다고 한다. 군데군데 멋진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버려진 폐광촌 같다고나 할까.
미국 여행을 다니면서 생전 관심 없던 지형과 지질학 공부까지 하게 생겼다. 도대체 눈에 보이는 땅의 형세가 여기와 저기가 분명히 다른데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또 땅의 구성물이 여기는 석회암이라 하고 저기는 사암이라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뭐고 왜 땅의 모양을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지.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 보니까 알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살면서 되도록이면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너무너무 싫어서 피하고 싶은 건 이상하게 꼭 만나게 된다. 그것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흔적을 남기고 간다. 난 학교 다닐 때 지학이 정말 재미없고 싫었는데 이젠 내가 좋아서 찾아보게 되니, 부메랑 효과라는 내 삶의 진리에 또 다른 예가 하나 생긴 셈이다.




지금은 활동을 멈추고 휴면기에 들어선 이 리버티 캡 (Liberty Cap)은 지하에서 강한 압력으로 물과 함께 뿜어져 나온 미네랄들이 침전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팔레트 스프링 (Palette Spring). 미생물의 활동으로 저렇게 독특한 색깔의 침전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열수현상이 일어나는 온천이나 간헐천을 구경할 때는 절대로 지정된 트레일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많이 붙어있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물 온도가 무척 뜨겁고, 또 메마른 땅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를지 모르기 때문. 자두만 데리고 다닐 땐 걱정 없었는데, 천방지축 하룻강아지 호두는 아마 눈 깜짝할 사이에 들어가 물 첨벙거리고 놀지 싶다. 호두를 키우면서부터는 주위의 경고문들이 모두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자두는 워낙 조심성도 많고 내 말을 잘 듣는 편이라 크게 주의하지 않았었는데 호두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다. 얼마 전에도 마트에서 장보다 카트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 안전벨트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린 걸 옆에 지나던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붙잡아 올리고는 얼마나 놀랬는지. 이놈은 우리집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쨌든 이 여행기에는 호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황온천. 냄새에 많은 기억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옐로스톤의 유황 냄새가 결코 반갑지 않다. 열수현상이 일어나는 곳마다 코를 찌를 듯이 공기중에 퍼져있는 이 냄새는 삶은 계란 노른자 같기도 하고 시큼한 방구 냄새 같기도 한 게 여튼 머리 어질거리는 묘한 냄새다.




자두야, 너 이때 피부 진짜 예술이었다. 한때는 저가 전생에 락도브 (Rock Dove: 비둘기과 새)였다면서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소파에서 뛰어내리며 날갯짓하던 아이가, 오늘은 자기가 아무래도 사실은 남자인 거 같다며 충격적인 고백을 서슴지 않는다. 퍼시 잭슨 (Percy Jackson and Olympians: 해리포터같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소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과 그 자녀들이 현시대에서 활동하는 황당무계한 스토리)에 빠져서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빠삭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오는 전투, 싸움의 장면들에 영향을 받아 자긴 치고박고 싸우는 게 좋다며 사실 저가 남자 아니냐고 하는데. 자두야, 엄마는 차라리 니가 요정이라고 믿고 있던 때가 그립구나. 겨울엔 마법을 쓸 수 없다며 봄이 돼서 꽃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여섯 살 자두가 너무 그러워어어.




이 지역 단골 포토 포인트. 한때는 이곳이 나무와 풀이 자라는 보통의 땅이었음을 증명하는 고사목들. 뜨거운 열기에 서서히 말라 죽어간 나무의 고통이 가지 끝에 그대로 남아있다.




맘모스 핫스프링에서 남쪽으로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타고 내려오면 노리스 (Norris)에 못 미쳐 로어링 마운틴 (Roaring Mountain)이 나타난다. 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유황 개스 때문에 나무들이 점차 옆으로 물러나 버린 것 같다. 산 사면 곳곳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연기가 '나 화 많이 났어요'하면서 씩씩대는 모습이다.




1988년 대화재로 불타버린 산에는 어느덧 새로운 생명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는지 아니면 불이 아래에서 시작했는지, 불에 탄 나무들은 하나같이 산의 아래쪽 반만 불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엘크 수놈을 찍으려고 모여든 사람들. 공원 내에서 곰과 늑대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 대해 25야드 (약 22미터) 이내로 접근이 금지되어있다. 겉으로 순해 보이는 녀석들이라도 언제 돌변해서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면 엘크도 말처럼 크고 무섭다. 특히 나처럼 동물 무서워서 식물 공부한 사람은 사진 안 찍고 말지, 절대로 근처에 가지 않는다.




옐로스톤에서 화산활동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곳이 바로 옐로스톤 동쪽의 캐년 (Canyon) 지역이다. 특히 인스퍼레이션 포인트에서 캐년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정말 '헉' 소리 나는 곳이었다. 얼마 전 외국 사이트에서 여행후기를 보다 'jaw dropping'이라는 표현을 봤는데 이 표현 그대로 정말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 수가 없었다. 문학에는 소질이 없는 내 눈에도 빠르게 계곡을 빠져나가는 옐로스톤 강물은 여의주를 물고 막 하늘로 승천하려는 청룡의 모습처럼 보였다. 정말 바로 눈앞에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른대도 하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기억에 남는 곳이다.




계곡의 반대편으로 저 멀리 로어 폴 (Lower Fall)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어퍼 폴 (Upper Fall)이 있는데 어퍼 폴에서 떨어진 거센 물살이 로어 폴로 떨어지며 더욱 세차게 탄력을 받아 이곳까지 이렇게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2010 Photo | 캐년 지역 그랜드뷰 (Grand View)에서 본 로어 폴 (Lower Fall). 그 높이가 94미터나 된다고 하니 물살이 얼마나 거셀지 상상할 수 있다. 사전 정보 부족으로 로어 폴을 못 봤는데, 아니 안 봤는데 2010년에 다시 옐로스톤에 왔을 때 제일 먼저 이곳을 찾았다. 사진의 아래쪽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전망대까지 갔는데 힘만 들고 보이는 모습은 그랜드뷰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괜히 우리 자두 손가락만 자동차 문에 찧는 사고가 났지.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나중에 우리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2010 Photo | 로어 폴의 낙하지점.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는 몸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이 무섭다.




2010 Photo | 가까이서 본 캐년과 계곡. 인스퍼레이션 포인트의 표지판에 이 계곡이 형성되는 과정과 더불어 '당신이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이 계곡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지금 이렇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을 보니 캐년이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어 잠시 엄숙해졌다.




자두가 찍은 어퍼 폴 사진.




캐년의 상류 지역. 생각 없이 보면 물이 꼭 사진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은데 사실 물은 사진의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있다.




캐년 (Canyon) 지역에서 피싱 브리지 (Fishing Bridge)로 가는 길은 넓은 초원이 펼쳐진 해이든 밸리 (Hayden Valley) 지역이다.




옐로스톤 레이크 (Yellowstone Lake)에서 흐르는 물이 어퍼 폴 (Upper Fall)과 로어 폴 (Lower Fall)에 도달하기 전에 이 지역을 지나며 넓은 초원을 형성한다. 해이든 밸리는 바이슨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아름다운 녹빛 초원을 평화롭게 거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10 Photo | 2010년 해이든 밸리.




피싱 브리지 (Fishing Bridge)를 지나 옐로스톤의 동쪽 입구로 빠져나가 우리가 간 곳은 와이오밍의 코디 (Cody)라는 도시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열리는 로데오 (Rodeo) 쇼가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것이다.




공식적인 경기라기보다는 쇼의 성격이 더 강한 프로그램이라 로데오가 시작하기 전에 갖가지 재미있는 경기들을 볼 수 있었다. 부산스럽게 떠들어대는 아나운서의 진행과 경기장을 울려 퍼지는 익숙한 80년대 팝들 때문에 더 즐거운 쇼였다. 10시가 넘어서까지 끝나지 않는 쇼를 끝까지 볼 수 없어서 결국 중간에 나와 코디에 있는 숙소에서 옐로스톤의 첫날밤을 보냈다.




코디 (Cody)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옐로스톤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제 온 동쪽 입구가 아닌 동북쪽 입구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동북쪽 입구에서 연결된 베어투스 하이웨이 (Beartooth Highway)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최고로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베어투스 하이웨이. 일부러 돌아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욕심을 내어 하이웨이 초입까지 갔는데 산악도로를 타기도 전에 자두가 멀미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되돌리는 발걸음. 아쉽지만 사람이 때로는 포기하고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 하, 끝까지 이 마음을 간직했어야 했는데 이날의 아쉬움에서 비롯된 욕심이 결국은 삼 년 후 화를 불렀으니. 나중에 다시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자.

2010년 다시 찾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기 | Scary Night at Yellowstone




그러고 보니 우리는 옐로스톤으로 진입하는 다섯 개의 입구 중 네 개의 입구를 다 거쳤다. 아이다호에서 오는 서쪽 입구를 제외하고 동, 동북, 남, 북쪽 입구를 통과했다. 옐로스톤은 유독 공원에서 인근 도시까지의 거리가 먼 국립공원이라 웬만하면 숙소를 공원 내부에 잡는 것이 아주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우리도 전날 코디에서 자는 바람에 반나절을 허비한 셈이 되었다. 공원 내에 숙소를 잡는 건 성수기인 여름철에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틈새시장을 이용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보통 개인이나 여행사에서 6개월 전부터 숙소 예약을 하는데 워낙 미리들 예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캔슬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2주 전부터 컴퓨터에 앉아 끈질기게 새로고침을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방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절대로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예약을 해야 한다. 고민하는 몇 분 사이 나와 같은 하이에나가 방을 낚아채 가니까.




옐로스톤은 자연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연의 뷔페식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없는 것 없이 온갖 종류의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 그런데 나만 그런가, 뷔페를 먹고 나면 많이 먹기는 했는데 내가 뭘 먹었는지 잘 모르겠는 기분. 차라리 전문점에서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나왔을 때가 뭔가 더 제대로 먹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자, 그러니까 옐로스톤의 서부는 대체로 열수현상을 볼 수 있는 가이저, 핫스프링들이 분포하고, 동부는 산과 숲, 호수와 강, 계곡, 초원 등이 포인트인 지역이다. 이렇게 혼자서 머릿속에 정리를 하고 나니 이제서야 옐로스톤에서 먹은 음식들이 소화되는 기분이다. 나, 미식가 아닌데.
쿠크 시티 (Cooke City)를 거쳐 동북쪽 입구로 들어오는 길가에 자리잡은 라마 밸리 (Lamar Valley)도 바이슨 천국이다. 한참 번식기라 새끼 바이슨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전날 그냥 지나친 노리스 (Norris) 지역에서 트레일을 돌며 갖가지 가이저들을 보았다. 가이저 (Geyser)는 간헐천이라고 하는데 땅속 증기의 압력으로 지하수가 지면 위로 솟아오르는 온천을 말한다. 사진의 스팀보트 간헐천은 세계에서 분출 높이가 가장 높은 간헐천인데 그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2005년 이후로 아직 그 놀라운 분출현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넓은 노지에 다양한 모양, 색깔, 형태의 간헐천과 온천, 머드팟들이 가득했다. 땅속에서 분출되는 뜨거운 기운들을 보니 꼭 사춘기 아이들의 여드름이 생각난다. 옐로스톤은 미대륙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젊은 땅인지도 모르겠다.




노리스를 한참 걸었더니 제법 피곤하다. 허무하게 보낸 하루, 캐년 지역에 있는 캐년 랏지 (Canyon Lodge)에서 옐로스톤에서의 이틀 밤을 보냈다. 밤에 별을 본다고 차를 몰고 나왔다가 일방도로에서 길을 잃어 별도 뭣도 제대로 못 보고 캐빈으로 돌아왔다. 이런 오지에서도 사방이 가로등이라 깜깜한 하늘 보기가 어렵다. 인간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다음 날 아침에 찾은 뜨끈한 목욕탕 같은 개울. 이제 와서 말이지만 동선을 어찌나 제대로 '잘' 짰는지 세상에 8자 도로의 가운데 연결도로를 몇 번을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난 포인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되도록 사진은 안 보려고 했는데 - 실제 봤을 때 감흥이 떨어질까 봐 - 사진을 안 보니 이렇게 뷰포인트가 많은 국립공원에서는 꼭 들러야 하는 지점들을 놓치기 쉬운 것 같다.
옐로스톤이 열수현상으로 유명하고 또 학문적으로도 굉장히 귀중한 곳이지만 사람을 사로잡는 경치를 보여주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 나와 수형의 솔직한 의견이다. 뭔가 알고 보면 참 놀라운 곳이지만 우리가 너무 무지한 탓일까, 나의 눈과 코는 기대한 것만큼 즐겁지 않았다.




물론 야생동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옐로스톤이 가진 장점은 정말 많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올드 페이스풀 가이져 (Old Faithful Geyser). 스팀보트 가이져에 분출 높이 기록은 내주었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꾸준히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장관을 보여준다고 하여 올드 페이스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믿을만한 녀석'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과연 그럴까요. 예상 분출시간 10시 42분 되겠습니다.




위대한 분출을 보기 위해 극장에 모인 사람들을 찍는데 나에게 느끼한 미소를 보내는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오, 역시 우리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섭씨 90도에 가까운 물을 뿜어내는 올드 페이스풀 가이져.




점심 먹으러 피크닉 장소를 찾아 헤매다 옐로스톤 레이크 한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근처에서 코요테가 돌아다닌다. 절이 싫으면 내가 떠나야지, 호수 근처 다른 피크닉 장소에 겨우 자리를 잡고 거하게 밑반찬 점심을 드시는 우리 가족. 앗, 도대체 저 반찬통들은 다 뭐지. 아까도 말했듯이 옐로스톤은 근처에 큰 도시가 없어서 먹을게 영 마땅치 않다. 코디 (Cody)에서 장 봐온 것으로 오늘 내일 연명해야 하는 상황.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 이 사진 때문에 가족 여행 엽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맘이 편해지는 사진이다. 이 사진 찍을 때가 밥 많이 먹어 행복해서 그런가.




옐로스톤 레이크. 이 호수의 물이 흘러 캐년 지역의 폭포를 지나 옐로스톤 강이 되고 더 흘러 내려가 저 멀리 노스다코다에서 미주리 강 (Missouri River)과 만난다. 미주리 강은 미주리에서 미시시피 강과 합류하며 미대륙을 이분하는 큰 물줄기를 형성한다.

미주리 강 | Missouri River




옐로스톤 레이크의 서쪽을 지나는 대륙분수령 (Continental Divide). 그레이트 디바이드 (Great Divide)라고도 하는 이 대륙분수령은 대체로 록키산맥을 따라 형성되는데 이 대륙분수령을 경계로 동쪽에 있는 모든 물줄기는 대서양과 멕시코만으로 흐르고 서쪽에 있는 물줄기는 태평양으로 빠져나간다.




2010 Photo | 무지의 소치로 웨스트 썸 (West Thumb) 지역을 그냥 지나친 2007년 여행을 보충하고자 2010년에 웨스트 썸에 들렀다.




2010 Photo | 웨스트 썸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빛깔의 핫스프링들. 이곳은 아니지만 모닝글로리라는 옐로스톤 핫스프링은 맑고 푸른빛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온천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깊고 푸른 물에 소원을 날리며 던진 동전과 쓰레기들로 온천의 지하 입구가 막히고 예전엔 없던 미생물들이 번식하면서 그 가장자리 색깔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다. 지금 이 사진을 보니 모닝글로리가 생각이 난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 맑은 물에 하물며 쓰레기를 던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동전도 마찬가지다. 여행 다니면서 물이 고인 곳이면 어디나 바닥에 깔린 동전들을 보긴 했지만 세상에, 국립공원 내의 온천에 동전을 던진다는 생각은 난 정말 감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갑자기 'jaw dropping' 상태가 된다.




2010 Photo | 생생체험 옐로스톤 유황온천. 냄새를 리얼하게 전달하는 자두 기자의 현장 보고 사진입니다.




2010 Photo | 동전 던진다는 생각은 못하지만 내 몸을 던져보고 싶다는 충동은 느껴진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 옐로스톤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에 무한 감사 전달한다.




2010 Photo |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호두. 호두한테는 참 미안한 게 많다. 지금 이렇게 실컷 다니고 나면 정작 호두가 커서 여행이 필요할 나이엔 이런 여행, 안갈 것 같기 때문이다. 니들, 이담에 니들이 돈벌어서 여행 댕겨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진 찍고 여행기 남기는 가장 큰 이유다. 증거물 확보 차원이라고나 할까.




2010 Photo | 2007년엔 공사 중으로 미처 못봤던 맘모스 (Mammoth) - 타워 폴스 (Tower Falls) 구간. 채 녹지 않은 하얀 눈과 푸릇푸릇 돋아나는 봄의 초록빛, 그리고 푸른 하늘빛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초여름 경치를 선사해주었다.
이렇게 우리의 2007 옐로스톤 여행은 끝이 난다. 점심 먹고 남쪽 입구를 통해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Grand Teton National Park)로 향했다. 티턴 여행기는 다음 편에서.

2010년 다시 찾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기 | Scary Night at Yellow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