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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7

제30편. 가을, 캠퍼스에서 열리는 붉은 파티 (Fall Memories, 2007/11)


Aug 2010 | 오늘 아침 문을 열었더니 공기가 제법 차다. 여름이 물러가려나 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라 그 끝이 보이는 것이 반갑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한 계절이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게 아깝다. 자두는 개학을 해서 아침이면 "엄마, 알러뷰~"를 크게 외치고 밝은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알러뷰'라는 말은 자두가 우리에게 붙여주는 행운의 부적 같다. 수형이나 내가 집을 나설 때면 꼭 '알러뷰' 를 외치는데 심지어는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알러뷰'를 던진다. 급하게 나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꼭 자두가 던져주는 알러뷰 부적을 받아야 한다. 일종의 의식이다. 어딜 가던지 무탈하게 잘 다녀오라는 어린 자식의 축복. 이보다 더 순수한 축복의 말이 어디 있을까. 아침이면 늦었다고 닦달하지만 말고 나도 사랑을 한가득 담아서 밝게 외쳐줘야겠다. '자두야, 알러뷰~'




2007년 어느 가을날의 캠퍼스. 무려 7년을 오르내리던 우리 과 건물 4층에서 보이는 11월의 가을 풍경이다. 수형과 자두가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7년. 말라가는 감수성에 간간이 물을 준 것은 때 되면 꽃 피우고 색깔 옷 갈아입는 캠퍼스의 숲과 나무들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늘 눈뜨고 고개 돌리면 보이던 풍경들이라 한 번도 제대로 사진에 담아둔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작정하고 몇 장 찍어둔 덕분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나마 아름답게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살던 학교 아파트 앞 도로. 버스에서 내려 저 길 따라 집에 가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즐거웠다. 27년간 입고 있던 학생이라는 옷을 벗어버린 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난 아직도 내가 학생인 것 같다. 아침마다 자두가 올라타는 스쿨버스에 나도 함께 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보다 어릴지도 모르는 자두의 선생님 앞에서도 난 학부형이기 이전에 학생의 마음이 들며 움츠러든다. 가르치는 자의 폭력에 길들여진 시간이 참 길었나 보다. 학교 안에서는 배우는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자두가 학교에서 돌아와 무엇을 배웠는지 신나게 얘기할 때 참 좋다. 자두에게 만큼은 학교가 진정한 배움의 터전이 되는 것 같다.




자두 유치원 앞 붉게 물든 나무. 자두가 다니던 유치원은 한국으로 따지면 캠퍼스 내에 있는 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우리 과 건물 바로 옆이라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자두를 데리고 집에 가곤 했는데, 셔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자두와 룰루랄라 손잡고 뛰어가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누가 우리 좀 안 봐주나, 우리 이쁜 자두 안봐주나 싶어 일부러 자두의 손을 잡은 팔을 힘차게 흔들기도 했다. 그때가 우리 자두 네 살 때.
제일 기분 좋은 날은, 우연히 수형과 같은 버스를 탄 날. 수형은 우리보다 한 정거장 먼저 버스를 탄다. 자두와 버스에 올라탔는데 수형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이면 이건 정말 행복한 우연이다. 지금은 자두가 스쿨버스 타고 다니니까 그 때 그 재미는, 없다. 대신 이제는 호두와 함께 누나를 마중 나간다. 아니면 아주 가끔 수형 버스 시간에 맞춰 자두와 호두를 데리고 아빠를 마중나간다. 나도 옛날에 동생들과 우리 아빠 마중 나간 적이 있었는데. 우리 엄마에게도 그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었을까?




몇 년 전 미국 기상청에서 그 해에는 공식적으로 '가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가을의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 가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가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날은 없었을지 몰라도, 여름이 가고 있음을 느낀 순간들은 분명히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사과/배/귤/포도처럼 딱딱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러고 보니 자두가 자꾸 거슬리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봄이 몇 월 몇 일부터 시작해? 오늘은 여름이야 아니야?"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해줘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학교에서 봄이 시작하는 날은 춘분 (Vernal Equinox)이라고 가르쳐준 모양이다. 어제까지는 겨울이었다가 달력의 날짜가 넘어가는 순간 봄이 시작한다니.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다 딱딱 떨어지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마는, 살아보니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세상이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가보다.




학교에서 풋볼 경기가 열리던 날. 조지아 불독 팀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캠퍼스가 메워진다. 거리엔 온통 빨갛고 검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공의 붉은 염료로 칠해진 캠퍼스에서 오늘만큼은 왠지 가을 단풍이 기죽어 보인다.




집에서부터 걸어 나와 천천히 경기장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우웅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경기장 군중들의 함성소리였다. 경기장 내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한가득 느껴진다.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자두가 너무 아쉬워했다.




사람 구경하러 나왔는데 정말 사람 구경 실컷 하고 갈 수 있겠다. 한국의 붉은 악마를 본 적 없는 나에게 미국 대학 풋볼의 인기는 문화적 충격. 재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생, 그리고 조지아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가 캠퍼스에 몰려든다. 천막, 그릴, 아이스박스, 햄버거, RV. 학교 안이 온통 피크닉 장소가 된다. 픗볼 선수들의 기분은 어떨까. 이렇게 많은 관중들이 에워싸고 자신들의 플레이에 따라 함성과 야유를 보낼 때.




7년 동안 한번도 풋볼 경기에 가본 적이 없다. 한 번쯤 가봐도 좋았을 텐데. 난 가끔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너무 한국적으로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두고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살아지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