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011 | 2007년 땡스기빙 시카고 (Chicago) 여행. 하지만 일 년하고도 반 뒤 조지아를 떠나 시카고 권역에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 전까지는 타향에서조차 떠돌아다녀야 하는 우리의 역마살. 하지만 덕분에 천태만상 세상 구경 돈 안 들이고 하고 있으니 고마운 운명이라 해야 하나. 어쨌거나 우리의 이런 시카고 여행을 시작해보자.
2009 Photo |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에서의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밤이 돼서야 시카고에 도착했다. 블랙 프라이데이 교통체증을 고려해서 다운타운 (Downtown: 시내 중심가 에 호텔을 잡았는데 주차비가 만만치 않다. 호텔 주차장 벨릿 파킹 하루 비용이 40불 + 팁. 웬만한 호텔 하룻밤 값이다. 불편하지만 호텔 주변 사설 주차장을 이용하기로 하고 일단 호텔 앞에 차를 댔는데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헉. 이런, 몸이 휘청거리는 게 토네이도가 온 줄 알았다. 과연 대단한 시카고 골바람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밸릿 파킹 부탁해요.
이런, 괜찮다는데 굳이 짐을 방문 앞까지 가져다준 벨보이. 수중에 팁 줄 현금이 없어서 그렇다니까. 인상 잔뜩 찌푸리고 돌아선다.
이런, 괜찮다는데 굳이 짐을 방문 앞까지 가져다준 벨보이. 수중에 팁 줄 현금이 없어서 그렇다니까. 인상 잔뜩 찌푸리고 돌아선다.
시카고에서의 첫날. 오늘은 땡스기빙데이다. 대도시에서 열리는 땡스기빙 퍼레이드가 보고 싶었는데 이런, 아침부터 눈발이 날린다. 11월 말에 눈이라니 조지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을 본 적이 없는 자두는 눈 내리는 풍경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퍼레이드를 보러 일단 길을 나섰는데, 이런, 도시가 어찌나 한산한지 아무도 살지 않는 곳같이 휑하다. 게다가 눈까지 내려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한데. 아무리 땡스기빙데이라 상점들이 문을 닫았어도 그렇지 이렇게 도시를 통째로 비워 놓고 다녀도 되나. '당신들이 여기 주인 맞소?'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퍼레이드 장소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런, 버스 카드를 파는 곳이 문을 닫았다. 땡스기빙은 한국의 추석과 같은 대명절이라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마트, 샵, 식당 등 문을 여는 곳이 거의 없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일 년 중 유일한 날이다.
사진 속의 건물은 워터 타워 (Water Tower). 1871년 시카고 대화재 당시 타지 않고 건재한 유일한 건물로 시카고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에 하나다.
사진 속의 건물은 워터 타워 (Water Tower). 1871년 시카고 대화재 당시 타지 않고 건재한 유일한 건물로 시카고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에 하나다.
시카고 버스 카드 정보 | Unlimited Ride Cards Information
시카고 버스 및 지하철 노선 지도 | CTA System Map
그래, 그럼 패스는 됐고. 현금 내고 버스를 타려는데 이런, 현금이 없다. 도시 여행을 오면서 현금도 안 가져오는 미련탱이들. 설상가상으로 데빗카드 (Debit Card: 한국의 체크카드) 도 안 가져왔군. 급한 대로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라도 받으려고 시도했으나, 이런, 비밀번호를 모르겠다. 생전 신용카드로 현금 인출할 일이 없으니 비밀번호를 알 리가 없지.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있나. 차 안에 동전 가방이 있긴 한데, 밸릿 파킹이라 쉽게 차에 갈 수도 없는 웃기는 상황.
조지아에서 겪어 보지 못한 추운 날씨에 모자까지 푹 눌러 쓴 수형이 자두를 안고 걷기 시작한다.
조지아에서 겪어 보지 못한 추운 날씨에 모자까지 푹 눌러 쓴 수형이 자두를 안고 걷기 시작한다.
매그니슨트 마일 (Magnificent Mile)이라고 불리는 미시간 애비뉴 (Michigan Avenue). 온갖 유명 상점들이 즐비한 쇼핑 거리지만 오늘만큼은 그 이름이 무색하다.
겨우 퍼레이드 장소까지 갔나 싶었는데 이런, 끝났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칭 밴드 뒤로 손이나 흔들어 주었다.
퍼레이드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 퍼레이드는 거의 끝났지만 여전히 거리는 북적거린다. 차가운 날씨에 모자는 기본이요, 담요까지 두르고들 있다. 어린 아기가 있으면 춥고 귀찮아서 안 나올텐데 이른 아침에 유모차까지 끌고 나온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퍼레이드가 끝나는 지점. 바람 빠져 쭈그러든 벌룬들이 우리가 본 퍼레이드의 전부였다.
노스 미시간 애비뉴 다리 (N. Michigan Avenue Bridge). 아마도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걸어 다니는 다리가 아닐까. 우리만 해도 스무 번은 족히 건너봤으니.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거리 풍경. 전쟁 중 패배한 적들이 버리고 도망간 적국의 수도를 점령한 기분이랄까. 주인 없는 텅 빈 도시에는 간간이 관광객들만이 눈에 띈다.
2009 Photo | 원래는 이렇게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도시인데 말이다. 땡스기빙데이의 워싱턴 디씨, 크리스마스의 마이애미에 이어 땡스기빙데이의 시카고까지. 주인 없는 빈집에 몰래 들어온 죄책감마저 든다.
볼거리 없는 다운타운 구경을 내일로 미루고 호텔 체크아웃을 한 뒤, 차를 몰고 뮤지엄 캠퍼스 (Museum Campus) 로 향했다.
땡스기빙 워싱턴 디씨 여행기 | Washington DC
7박 8일 플로리다 일주 여행기 | Trouble Travel Florida
뮤지엄 캠퍼스는 다운타운의 남쪽에 위치한 박물관 단지로 셰드 아쿠아리움 (John G Shedd Aquarium), 아들러 천문대 (Adler Planetarium), 필드 뮤지엄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이 모여있다.
특히 아쿠아리움에서 보는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일품이라고. 날씨가 흐려서 생각보다 사진이 잘 안 나왔지만 시카고에서 제일 높은 빌딩인 시어스 타워 (Sears Tower) 와 존행콕센터 (John Hancock Center) 를 동시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쇼를 기다리는 중. 솔직히 아쿠아리움은 조지아 아쿠아리움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볼거리도 덜했다.
자연사 박물관인 필드 뮤지엄.
필드 뮤지엄 내부의 거대 공룡 장식
필드 뮤지엄에서 이쁘게 나온 자두 사진.
자두의 관심사 변천 과정 2006년~2008년: 신데렐라, 인어공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2008년~2009년: 요정 2009년~2010년: 요정, 새, 매직 트리 하우스, 쥬니 비 존스 2010년~2011년: 퍼시 잭슨, 그리스 로마 신화, 캘빈 앤 하비스, 만화 그리기 2011년~2012년: 퍼시 잭슨, 그리스 로마 신화, 암석과 미네랄, 만화 그리기 2012년~2013년: 퍼시 잭슨, 닌자고, 또봇, 종이접기, 태권도 |
무지해서 고생한 에피소드 하나. 다시 생각해도 정말 짜증난다, 크으.
시카고에서의 두 번째 밤에는 시카고 리버 강변의 하이야트 레전시 호텔에 비딩을 낙찰받게 되었다. 역시나 호텔 내 밸릿 파킹비가 비싸서 밀레니엄 파크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호텔로 가는 길.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가 우선 짐을 호텔에 내려놓고 차를 주차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소심하고 무지한 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체크인하는 15분 정도는 호텔 앞에 주차해도 된다는 걸 몰랐던 거다. 저 멀리 공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우리는 모든 짐을 메고 들고 끌고 0.5마일 (약 800미터)를 걸어서 호텔까지 갔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지쳐 잠이 든 자두까지 안고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 지도를 보고 내내 의아하던 내가 외쳤다. '이런, 호텔이 고가도로 위에 있어!' 지하보도를 걷는 내내 아무리 봐도 호텔이 나올 기미가 안 보여 잘못 길을 들었나 했는데 호텔이 고가도로 위에 있었다니. 너무 힘들어 폭발하기 직전. 하지만 그 순간 우리 둘 다 꾸욱 참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짐과 자두를 들고 고가도로로 오르는 계단을 차분히 올라갔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이 정도 고생이면 15불어치가 훨씬 넘잖아.
사진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호텔 꼭대기 층 복도 창문에서 찍은 사진이다. 빌딩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네이비 피어 (Navy Pier), 그리고 그 너머가 미시간호 (Lake Michigan) 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집 주인이 돌아왔다! 180도 변한 모습의 시카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시카고에서의 두 번째 밤에는 시카고 리버 강변의 하이야트 레전시 호텔에 비딩을 낙찰받게 되었다. 역시나 호텔 내 밸릿 파킹비가 비싸서 밀레니엄 파크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호텔로 가는 길.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가 우선 짐을 호텔에 내려놓고 차를 주차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소심하고 무지한 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체크인하는 15분 정도는 호텔 앞에 주차해도 된다는 걸 몰랐던 거다. 저 멀리 공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우리는 모든 짐을 메고 들고 끌고 0.5마일 (약 800미터)를 걸어서 호텔까지 갔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지쳐 잠이 든 자두까지 안고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 지도를 보고 내내 의아하던 내가 외쳤다. '이런, 호텔이 고가도로 위에 있어!' 지하보도를 걷는 내내 아무리 봐도 호텔이 나올 기미가 안 보여 잘못 길을 들었나 했는데 호텔이 고가도로 위에 있었다니. 너무 힘들어 폭발하기 직전. 하지만 그 순간 우리 둘 다 꾸욱 참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짐과 자두를 들고 고가도로로 오르는 계단을 차분히 올라갔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이 정도 고생이면 15불어치가 훨씬 넘잖아.
사진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호텔 꼭대기 층 복도 창문에서 찍은 사진이다. 빌딩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네이비 피어 (Navy Pier), 그리고 그 너머가 미시간호 (Lake Michigan) 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집 주인이 돌아왔다! 180도 변한 모습의 시카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회색빛 우울한 도시의 명절이 지나고 블랙 프라이데이 아침이 찾아왔다. '블랙'이라고 하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여기서 블랙은 흑자를 의미한다.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날, 기업의 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 날이라고 해서 블랙 프라이데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특별 세일 때 득템 한번 해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돈 쓸 궁리들을 하느라 바쁜 가운데, 우리는 180도 달라진 도시의 다운타운 구경에 나섰다.
호텔을 나서기 전에 어젯밤에 사진을 찍었던 같은 장소에서 네이비피어 (Navy Pier)와 미시간 호수를 보았다. 우뚝 솟은 건물 옆에 호수 쪽으로 쭈욱 뻗어있는 것이 네이비피어. 저멀리 보이는 관람차가 오늘 밤에 우리를, 아니 수형을 공포로 몰아넣을 페리스휠 (Ferris Wheel)이다.
날씨도 맑게 개인 블랙 프라이데이. 어제는 흐린 날씨에 으슬으슬 춥더니 오늘은 파란 하늘이 날카롭게 살을 에는 듯이 아주 아프게 추운 날이다.
시골에 살다가 대도시 구경 나온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언제나 거기에서 제일 '높은 곳'. 거대한 도시를 내 발아래 두어보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지배 욕구일까.
올려봐도 끝이 보이지 않게 높은 빌딩들이 수십 채씩 자리 잡고 있는 부자 도시 시카고. 고층빌딩 전망대도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시카고의 오랜 터줏대감인 시어스 타워 (Sears Tower: 2009년에 Willis Tower라는 이름으로 바뀜) 와 떠오르는 신예 존 행콕 센터 (John Hancock Center). 둘 다 100층이 넘는 엄청나게 높은 빌딩들이다. 애들하고 레고 블럭만 쌓아도 30층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지는데 어떻게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건축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능력이 정말 놀랍기만 하다. 사실 난 아직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신기하다. 그 많은 짐과 사람들을 태우고 그 육중한 금속 덩어리가 땅에서 떠오르는 순간은 지금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겸손할 주제도 못 되는 내가 겸손한 마음이 절로 든다. 이렇게 겸손한 우리가 선택한 곳은 존 행콕 센터.
축제와 명절의 연속인 미국의 End of Year. 미국의 연말은 10월부터 시작한다. 10월이 되면 할로윈 시즌, 11월은 땡스기빙, 12월은 크리스마스. 하나의 명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다음 날로 도시의 체제는 다음 명절 준비에 돌입하고 사람들은 일 년 중 마지막 4/4분기를 축제의 들뜬 분위기 속에 마감한다. 특히 12월은 일 년 중 세상이 제일 화려해지는 시기, 자연의 빛깔이 사라지는 무채색의 세상을 인공적인 조명과 장식들로 위로하는 인간만의 축제가 벌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은 듯이 보이던 도시였는데, 그 지하에는 이렇게 화려한 미니어처 타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니. 쉬지 않고 타운을 운행하는 기차들 덕분에 존 행콕 센터 지하의 화려한 인공마을이 살아있는 듯이 보였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올라온 존 행콕 센터의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시카고 북쪽이다. 아래 보이는 빌딩들도 결코 층수가 낮은 빌딩들은 아닌데 까마득히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시카고의 남쪽 다운타운 지역. 저 멀리 마징가제트처럼 우뚝 솟은 빌딩이 시어스 타워.
인간적으로 창이 너무 더러워서 도저히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차라리 야경을 보는 것이 더 나았을 듯.
시카고의 서쪽 지역은 시카고 주변 주거지역을 보여주고 있다. 눈을 멀리 두지 않아도 금세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지는 걸 보면 시카고 다운타운의 고층빌딩 숲이 도시 전체에서 고립된 작은 섬처럼 느껴진다.
본격적인 다운타운 구경에 나서는데, 도시 한복판에 열린 시장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크리스트킨들마켓 시카고 (Christkindlmarket Chicago)라고 불리는 이 장은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열리는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시장이다. 독일의 전통을 따르는 이 시장에서는 갖가지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품들뿐 아니라 독일 음식도 맛볼 수 있어 시카고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Christkindlmarket Chicago
미대륙이 워낙 넓은 땅이라 지역별 기후가 크게 달라 사람이 사는 모습에 큰 차이를 주고 있지만, 자연환경과는 별도로 미국 역사 초기에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기반을 잡고 정착했느냐에 따라 그 지역별 문화와 사는 모습이 서로 다른 것 같다. 특히 미국의 많은 지역, 도시들이 유럽의 식민지였고 그 후예들이 정착해서 형성한 곳이라 심심치 않게 유럽의 전통과 문화를 볼 수 있고, 특히 유럽이라는 컨텐츠는 많은 소도시들의 관광테마로도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관광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작은 마을들이 타운 전체를 유럽풍으로 재개발해서 지역의 관광 명물로 성공한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수형과 나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개발된 관광도시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크게 관심 있게 보거나 찾아다니지 않지만, 분명히 이런 노력이 지역 경제와 문화 발전에 보탬이 되고 있음은 인정해야 하겠다.
시카고의 명물인 딥 디쉬 피자 (Deep Dish Pizza). 이 중에서도 지오다노라는 피자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와봤다. 여행, 특히 도시 여행을 다니면 맛집부터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입맛도 보수적이고 또 애들 때문에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길 형편이 못 돼서 늘 대충대충 먹고 다니는 편이다. 결정적으로 맛집을 찾아다니면 여행 비용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궁상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피자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주문하고 30~40분은 기다리는 것이 기본.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핏자를 만들길래 우리의 황금 같은 여행 시간을 삼십 분이나 투자하라는 것일까.
말 그대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딥 디쉬 피자다. 쫄깃쫄깃한 치즈의 질감을 즐기며 한참 먹다 보니 이제서야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 보통은 피자소스/치즈/토핑 순서로 피자를 만드는데, 이 피자는 치즈가 아래에 잔뜩 들어가고 위에 피자소스와 토핑이 얹어져 있네.
배부르게 피자를 먹고 네이비 피어 (Navy Pier)로 향하는 길.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이미 피자집에서도 한~참을 걸어왔는데 이런, 갑자기 수형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여보, 당신의 그런 표정 싫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 그건 말이지. 신용카드가 없어졌네?'
결론은 피자집밖에 없다. 계산하고 영수증에 싸인하고 카드까지 함께 두고 오신 모양.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다리 아픈 우리 가족.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일세. 역시 대박사고는 수형의 몫.
네이비 피어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한 밤. 호숫가에 자리 잡은 거대한 관람차, 페리스휠이 몇 안 되는 손님을 태우고 돌아가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주장하는 수형 때문에 페리스휠 탑승이 무산될 뻔했으나 자두의 간곡한 부탁과 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가책을 느낀 수형의 양심 덕분에 우리는 가까스로 이 거대한 바퀴에 오를 수 있었다.
막상 깜깜한 관람차에 올라타니 나도 괜히 겁이 났다. 게다가 이 관람차는 안전장치도 부실한 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수형은 완전 패닉상태. 사진도 거부하고 가족 모두 숨도 쉬지 말아야 할 분위기를 만들었다. 제일 씩씩한 건 우리 자두, 제대로 페리스휠 즐기고 있었다. 페리스휠에서 바라본 시카고 리버와 다운타운의 야경이 겁에 질린 우리를 잠깐이나마 설레게 하여 주었다.
이런, 이날 수형은 정말로 꽤나 무서웠었는지 밤에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이상한 꿈을 꿨다기에 내용을 듣고 보니 이건 누가 봐도 전날의 페리스휠 때문인 거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자신이 사망한 줄 안 의사가 장기 기증을 위해 전기톱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왔단다. 애들 같은 남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고, 여태껏 이날 일로 수형을 놀려먹는 나는 나쁜 마누라.
크리스마스 시장 옆에 세워진 시카고 공식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그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시카고의 야경은 밀레니엄 파크 (Millennium Park)에서. 난 도시나 도시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도시 구경이 하고 싶다. 야경 보면서 밤거리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너무 늦지 않은 밤에 도시의 거리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좋아한다. 낮에는 내가 도시의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밤이 되면 이상하게 나도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싫지 않다.
밀레니엄 파크의 스케이트장. 몇 년 만에 보는 스케이트인가. 그것도 실외 스케이트장. 조지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도 반가워서 한번 타볼까 했지만 젊은 애들이 어찌나 쌩쌩 달리는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요즘 같아선 정말 내 몸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로봇이 된 것 같다. 어찌나 삐그덕거리는지 말을 듣지 않는다.
밀레니엄 파크의 크라운 파운틴 (Crown Fountain)
도시 속의 도시. 잘 찍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참 좋아하는 사진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밀레니엄 파크의 저 클라우드 게이트 (Cloud Gate)는 보면 볼수록 참 묘한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를 비치는 커다란 거울이라는 아이디어도 참신한데, 온전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한번 꼬고 비틀어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본 한밤의 거울에는 휘영청 밝은 달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더 소중한 사진이 되었다.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오늘의 일정은 다운타운의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쇼핑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구경삼아.
어떤 사람들에겐 여행 중 쇼핑은 필수항목이지만, 수형과 나는 암묵적 동의하에 여행 중 쇼핑을 금기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시간이 아까워서.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서 돈보다 더 쪼개써야 하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뭐, 사실 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백화점 창에 붙어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했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은 겨울 다운타운의 큰 볼거리.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인파와 관광객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카고의 다운타운.
낯설기만 한 차가운 공기, 이런 영하 2도라니. 11월 말 겨울 날씨 영하 2도가 뭐 대단한 거라고 사진까지 찍었나 싶겠지만, 조지아에서 살다 온 우리에게는 공 하나 더 붙여 영하 20도쯤으로 느껴지는 추위였다. 아닌게아니라 온도를 보고 정말 놀라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조지아에서 벗어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피식 웃지요.
재밌는 일화 한가지. 10월에 과수원으로 사과를 따러 갔다가 오는 길에 차 뒷좌석에 사과 주스 반 통을 엎어버리는 끔찍한 사건으로 차 안이 온통 초파리로 들끓던 때가 있었다. 차 안에서 얼마나 알을 까댔는지,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던 초파리들이, 시카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전멸해버렸다는. 과연 시카고가 춥긴 추운 곳이구나 하며 수형과 둘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생각이 난다.
재밌는 일화 한가지. 10월에 과수원으로 사과를 따러 갔다가 오는 길에 차 뒷좌석에 사과 주스 반 통을 엎어버리는 끔찍한 사건으로 차 안이 온통 초파리로 들끓던 때가 있었다. 차 안에서 얼마나 알을 까댔는지,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던 초파리들이, 시카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전멸해버렸다는. 과연 시카고가 춥긴 추운 곳이구나 하며 수형과 둘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생각이 난다.
빌딩의 창문을 닦는 스파이더맨. 이런 고층빌딩들의 창문 청소가 이렇게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놀랍다.
드디어 시카고 여행의 백미, 아키텍쳐 보트투어 시간이다. 아키텍쳐 보트 투어는 배를 타고, 다운타운을 관통하는 시카고 리버를 거슬러 올라가며 시카고의 자랑거리인 유명한 건축물들을 관람하는 가이드 투어. 도시 자체가 아키텍쳐 뮤지엄인 시카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 요소다.
네이비 피어에서 출발하는 투어도 있고, 노스 미시간 애비뉴 다리 밑에서 출발하는 투어도 있는데 우리는 네이비 피어에서 출발하여 시카고 리버를 따라 다운타운을 돌아보는 투어를 선택했다. 미시간호까지 나갔다 오는 투어도 있는데 시간도 길고 가격도 비싸다. 어차피 겨울이라 호수의 빛깔에 대한 큰 기대가 없어서 다운타운 투어로 만족.
19세기 말 도시를 전소시킨 시카고 대화재 이후로 철저한 계획도시로 거듭난 시카고. 일반적인 건축 규제 외에도 심미적, 예술적 양식을 고려하여 동일한 건물이 세워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제재한 것이 오늘의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낳았다.
시카고 리버를 축으로 남북이 대칭되도록 설계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미시간 애비뉴를 오가며 가장 여러 번 지나쳤던 리글리 빌딩 (Wrigley Building)
333 웨커 드라이브 아치 빌딩 (333 Wacker Drive Arch)
지금은 윌리스 타워라고 개명한 시어스 타워
'꼭' 타봐야 하는 유람선이라 배에 오르긴 했는데, 이런, 11월 시카고의 강바람이 이렇게 매서운 줄 미처 몰랐소.
자두는 유람 내내 아빠 품에서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 숙이고 움츠리다 결국은 아빠와 1층 실내로 들어가고 말았다.
시어스 타워가 제일 잘 보이는 지점에서 배가 유턴하여 다시 미시간호 쪽으로 이동한다.
머천다이즈 마트 (Merchandise Mart). 지어질 당시 (1930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는 머천다이즈 마트는 자체 우편번호를 소유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하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빌딩에서 창문이 있는 오피스에서 일하는 축복받은 사람은 누굴까.
리글리에서 시작해 리글리로 끝나는 우리의 시카고 건축 유람.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은 거의 안 들었지만, 마지막 하모니카 부는 솜씨만큼은 인정.
다시 미시간 애비뉴로 돌아왔다. 트리뷴 타워 (Tribune Tower)
옥수수 빌딩이라는 별명이 썩 잘 어울리는 마리나 시티 (Marina City)
정부 기관들이 모여있는 톰슨 센터 (James R. Thompson Center).
시카고의 빌딩들은 제각각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시대상,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건축사 박물관과 같다. 내 분야가 아니라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 아트 역시 내 분야가 아니라 처음에는 일개 조형물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는 게 이상했지만, 막상 가서 보니 대단히 흥미로운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그러진 이 거대한 전면 거울 앞에서 사람들은 시카고라는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그 속에 포함된 자기 자신까지도.
오후 늦게가 돼서야 I-65 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밤을 지낼 숙소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웨스트 라파예트 (West Lafayette)라는 도시. 이곳이 우리가 2년간 머물며 우리 둘째 호두를 낳고 기를 곳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내가 3년이 넘는 세월을 시카고에 이렇게 가깝게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앞으로 우리는 또 어디에서 머물게 될 것인가. 이렇게 잠시 스쳐 갔던 도시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수형과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까.
오후 늦게가 돼서야 I-65 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밤을 지낼 숙소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웨스트 라파예트 (West Lafayette)라는 도시. 이곳이 우리가 2년간 머물며 우리 둘째 호두를 낳고 기를 곳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내가 3년이 넘는 세월을 시카고에 이렇게 가깝게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앞으로 우리는 또 어디에서 머물게 될 것인가. 이렇게 잠시 스쳐 갔던 도시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수형과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까.
이상은 한겨울의 시카고 여행기. 겨울의 시카고가 내뿜는 회색빛 도시 풍경도 충분히 멋졌지만, 한여름의 화사한 시카고는 더욱더 매력적일 것이다. 아래의 한여름 시카고 여행기도 꼭 놓치지 마시길.
한여름의 시카고 여행 | Beautiful Summer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