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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7

제33편. 플로리다여 안녕: 미국의 넘버원 청정비치 (Caladesi State Park, and Tampa Bay, 2007/12)


Oct 2010 | 8년 전 미국으로 올 때 사람들한테 조지아 (Georgia)로 간다고 하면 하나같이 조지아가 어디냐고 물었다. 플로리다 주 (Florida) 바로 위에 있다고 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7년을 관광 불모지 조지아에 살았지만 그래도 플로리다에 가깝게 붙어있는 덕분에 해마다 겨울이면 이곳에서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작년에 인디애나 주 (Indiana)로 이사오고 나서야 7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때 눈을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제자리를 찾은 듯이 보였다. 어찌보면 그간 우리는 남반구 사람들처럼 (비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지내왔구나 싶었다.




추위에 약한 우리 부부에게 플로리다는 사치스럽기까지 한 겨울 여행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플로리다는 만족할만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물론 플로리다 반도 남쪽에 에버글래이즈 국립공원 (Everglades National Park) 이 있기는 해도, 플로리다는 해변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휴양지의 성격이 강한 곳이라 우리처럼 한 여행지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은 심신을 늘어지게 만드는 기운이 가득한 플로리다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더구나 밤새 운전은 할 수 있어도 물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유자인 수형과, 수영복이 없어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 그리고 밀려드는 파도를 귀신 보듯 무서워하는 자두까지. 하나같이 바다를 즐기는 데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 모인 가족이라 결국 이 여행을 끝으로 플로리다에 발을 끊고 말았다. 그래도 생각난다, 플로리다. 그곳에서 멀리 떠나온 지금. 못 가봐서 아쉬운 곳도, 다시 가서 보고 싶은 곳도, 남들처럼 즐기고 싶은 곳도 모두모두. 플로리다여 안녕.




시작한 지 4년째, 아직도 미완성인 우리의 여행 포토북 중 한 페이지다. 내가 좋아하는 페이지기도 하고. 여기는 칼라데시 주립공원 (Caladesi State Park). 닥터비치 (Dr. Beach) 가 2008년에 미국에서 제일 깨끗한 청정비치로 선정한 곳이다.




닥터비치는 누구냐. 닥터비치는 플로리다 국제대학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교수로 지금까지 20년 동안 매년 미국의 모든 해변에 대해 수온, 수질, 바닷가 모래의 질 등 50가지 항목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매해 최고의 해변을 선정해왔다. 칼라데시는 2007년에는 두 번째로 깨끗한 비치로, 2008년에는 넘버원 비치에 선정된 미국 최고의 청정비치이다.




칼라데시는 플로리다 서부 클리어워터 (Clearwater)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미국 제1의 청정비치답게 페리 (Ferry)를 타고서만 접근할 수 있다. 파크 내부에서는 숙박이 불가능하고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4시간. 심지어 입장객 수를 체크하여 한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릴 때는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깨끗한 해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 관광객들 역시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아름다운 비치를 즐기다 간다.




보통 허니문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지만, 이곳이 클리어워터 지역과는 얕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어 해변을 따라 걸어서 2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비치로 이어지는 트레일. 저 다리의 끝에 어떤 경치가 나타날지 마음이 설레었다.




많이 알려진 곳도 아니고 또 사람 수를 제한하는 곳이라 그런지 해변이 참 한적했다. 플로리다의 바다는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친근함과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캘리포니아의 바다가 '자연'의 일부로 느껴진다면, 플로리다의 바다는 '사람'의 연장 (extension)으로 생각된다.
갑자기 느긋하고 편안해진 마음에 심한 동요를 일으킨 여인이 나타났다. 강렬한 붉은색이 바다의 부드러운 푸른 색과 묘하게 어우러져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 해변의 여인이었다.




칼라데시는 조개줍기로도 유명한 곳인 것 같다. 비지터 센터에 칼라데시에서 볼 수 있는 조개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그 종류가 꽤 많았다. 해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하나씩 들고 다니며 조개 껍데기를 줍고 있었다. 밀물 때라 백사장이 넓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




조개 줍는 자두와 아빠. 내가 참 좋아하는 부녀의 사진이다. 어린 딸과 놀아주는 수형의 마음은 저 바다의 색과 똑같다.




이만큼이나 주웠어요. 근데 자두야, 얼핏 보니 다 바지락 껍데기같다야.




12월의 바닷바람이 따뜻하진 않았지만, 칼라데시의 고요한 바다는 얼어붙은 자두의 마음을 소리 없이 녹여주었다. 그동안 여러 번 플로리다에 갔지만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자두. 늘 빨리 돌아가자고 성화를 부리던 어린 아이가 웬일인지 군말 없이 모래성을 쌓으며 놀기 시작했다. 아빠와 함께 주은 조개껍데기들은 인어공주가 사는 성을 꾸미는 멋진 장식품이 되었다.




수형은 새로 산 DSLR 카메라로 열심히 새를 찍어댔다. 사진 정리하다 이 사진이 큰 화면으로 나오는 순간 정면으로 나를 쳐다보는 새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뭘 봐? 새 처음 봐?




그렇게 소원하던 인어공주가 된 기분 어때요, 자두 어린이? 예전에 자두가 인어공주가 되고 싶다고 해서 헌 옷과 골판지로 꼬리 옷을 만들다가 미싱이 망가진 적이 있다. 몇 년 후에 친구가 고쳐주긴 했지만 그 때 이후로 미싱을 안 돌린다는.




사실 올랜도에서 칼라데시까지 오는 길에 수형과 싸웠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둘 다 부아가 나서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말을 안 했다. 그간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종종 내가 심통 부리는 일이 있었지만 일단 시동 걸고 출발하면 서로가 서로를 잘 따라주면서 다녔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다투게 돼서 나도 당황했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겨우 어색하게 말을 트고 화해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점심 준비를 안 했네. 생각 안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될 데로 되라는 심정으로 있다가 깜박한 것이다. 덕분에 공원 안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버거를 먹는 벌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우린 여행 중에 다툰 적은 없다. 내가 그 점에서 수형에게 고마워하듯 수형도 나에게 고마워 하리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새로 산 DSLR 이 이번 여행에서 담아낸 최고의 작품이 이 사진인 것 같다. 내 사진은 꼴랑 2~3장 찍어주고 내내 새만 찍어대더니 수형이 드디어 그 결실을 보았다. 창공을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모습이 꿈을 이루기 위해 비상하던 갈매기 조나단 같기도 하다. 수형판 갈매기 조나단이 날아오르는 여기는 클리어워터 비치 (Clearwater Beach).




클리어워터 비치의 백사장은 참 넓기도 하다.




클리어워터 비치는 2006년 플로리다를 일주할 때 노을을 보러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길도 막히고 또 퍼블릭 비치를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다 겨우 이곳에 내려, 지는 해의 끝자락을 보고 나온 기억이 난다. 앗, 지금 다시 찾아보니 여긴 클리어워터 비치가 아니라 샌드키 파크 (Sand Key Park)라는 곳이다. 맞다, 클리어워터 비치는 샌드키 파크에서 북쪽으로 다리를 건너야 나오는 곳이었지. 클리어워터 비치를 보려고 갔다가 주차할 곳이 없어 결국 다시 돌아 샌드키로 왔던 게 이제 생각나는군. 플로리다 일주를 할 때도 끝내는 클리어워터 비치를 못 봤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간혹 이렇게 우리와는 연이 닿지 않는 곳이 나타난다.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 곳인 게다. 허락하지 않는 곳을 억지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냥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플로리다에 4년째 오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비치는 처음이다. 사실 결코 사람이 많이 북적거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만큼 우리가 플로리다에서 제대로 안 놀았다는 뜻이겠지. 아닌 게 아니라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12월 말인데도 이렇게 다들 옷을 벗고 해수욕을 하는 걸 보면 참 미국이 크긴 큰 나라구나 싶다. 플로리다 바로 위에 붙어있는 조지아 주만 해도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다 긴 팔을 입고 다니는데 말이다. 여튼 오랜만에 사람많은 해변에 오니 사람도 구경거리가 된다.




도시에 인접한 해변이라 그런지 물빛이 맑지 않았다. 여기에 오니 칼라데시의 물이 얼마나 맑은 줄 알겠다.




칼라데시에서부터 조금씩 바다에 맛을 들인 자두가 드디어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파도에 밀려왔다 쓸려가는 모래의 느낌이 좋았나 보다. 대담하게 앞으로 더 나가지는 않았어도 돌아가자는 말없이 한참을 저러고 서 있다. 예전 같으면 근처에도 못 가고 있었을 텐데.
저렇게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을, 바다 좀 조금 늦게 보면 어떻다고 괜히 그동안 염려하고 아이를 닦달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훌륭한 부모라면 아이가 낯선 것 앞에서 가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인정하고 아이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때 왔을 때 기회를 주는 부모가 진짜로 멋진 부모가 아닐까. 성질이 급해서 워낙에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자두와 나. 앞으론 사진 찍을 땐 꼭 무릎 바로 위에서 끊어달라고 해야겠다. 내 키를, 보는 사람 상상에 맡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우리의 로망 스톤크랩 (Stone Crab). 우리가 지금까지 여행다니면서 유명한 맛집이라고 일부러 찾아서 간 곳은, 시카고의 지오다노 피자집과 바로 이 스톤크랩을 먹을 수 있는 크래비 빌스 (Crabby Bills) 정도 밖에 없다. 10월에서부터 이듬해 5월까지만 먹을 수 있는 스톤크랩의 집게발은 쫀쫀한 육질 때문에 대게와는 씹는 질감이 많이 달랐다. 미국 살면서는 제대로 된 해물을 먹을 기회가 없어서 해물러버 아버지 밑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많이 힘들다. 특히 친정집에 전화했을 때, 가족들이 모여 해물탕이나 대게를 삶아 먹고 있다고 하면 더 힘들다. 진짜 맛있는데 니 생각난다고 하시면 난 진짜 약오른다. 하지만 나도 이번엔 소심한 복수를. "아빠, 플로리다에 와서 스톤크랩이라는 걸 먹었는데, 대게보다 훨씬 맛있네요, 아빠 생각 많이 많이 났어요." 이런 걸 딸이라구.




탐파 베이를 건너는 썬샤인 스카이웨이 브릿지 (Sunshine Skyway Bridge). 어느 여행 채널에서 꼽은 세계에서 3번째로 아름다운 다리라 꼭 건너보고 싶었는데 저번에는 이 다리를 멀찍이서 보기만 해서 이번엔 일부러 우회하는 길이지만 일정에 넣었다. 피어 (Pier)에서 찍은 다리 전경에 텍스트를 넣어 엽서처럼 꾸며보았다.




하프의 현처럼 생긴 다리의 중심 기둥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이다.




5마일이 넘는 (약 8.85킬로미터) 긴 다리인 썬샤인 스카이웨이 브릿지. 예전에 포트 드소토 파크 (Fort De Soto Park)에서 옆모습만 봤을 때보다 실제로 경사가 급해서 놀랐다. 밤에는 조명을 받아 다리가 더 멋지게 보인다는데 낮에 건너니 칙칙한 시멘트 길을 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다.




썬샤인 스카이웨이 브릿지와 평행으로 달리는 이 피어는 스카이웨이 피싱 피어 주립공원 (Skyway Fising Pier State Park)으로 세상에서 제일 긴 피싱 피어 (Fishing Pier), 그러니까 낚시를 할 수 있는 잔교라고 한다. 실제로 이 피어는 썬샤인 스카이웨이 브릿지가 세워지기 전에 사용되던 다리였다고 한다. 1980년대에 사고로 다리 일부가 파손되면서 더 이상 다리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고, 썬샤인 스카이웨이 브릿지가 건설된 이후에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낚시를 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플로리다 중서부 탐파 베이 (Tampa Bay) 지역의 지도다. 탐파 베이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5개 있는데 우린 어쩌다 보니 이 중 4개의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우리가 건넌 다리는 화살표 표시. 이들 중 내 기억에 I-275인 것 같은데, 이 다리는 다른 다리와 달리 대부분 구간이 수면과 거의 맞닿아있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슬아슬하면서도 상쾌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다리들을 많이 건너다보니 이젠 다리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최소한 다리에 대한 기본상식은 갖추고 다녀야겠다.




자,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플로리다 여행이 끝났다. 내 주위 것들을 무시하는 버릇은 여전해서 맘만 먹으면 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플로리다였는데 막상 이렇게 멀리 떠나오니 못 가봐서 아쉬운 곳이 제법 된다. 제일 아쉬운 것은 플로리다의 냉천들 (Springs). 에버글래이즈도 한번 더 보면 좋겠고, 동부의 해변들도 제대로 보고 싶고.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지아가 당신을 환영합니다 (GEORGIA WELCOMES YOU)" 인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