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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7

제31편. 순도 100% 암흑 속에서 김치 냉장고 떠올리는 아줌마 (Mammoth Cave National Park, 2007/11)


Jun 2011 | 땡스기빙데이 (Thanksgiving Day). 황금같은 4박 5일의 연휴가 왜 하필 11월 말에 잡혀있는지. 도무지 갈 데가 없다. 동쪽은 이미 갔다 왔고, 서쪽은 너무 멀고, 남쪽은 그닥 끌리지 않고, 북쪽은 너무 춥고.




그렇다고 내내 집에 있을 테냐. 북쪽으로 올라가서 시카고 (Chicago) 어때. 집에서 시카고까지 800마일 (약 1,300킬로미터). 4박 5일 일정에 이보다 더 좋은 코스는 없을 것 같은데. 다만 한가지 맘에 걸리는 것은,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악명높은 겨울 날씨. 루머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 운행 중이던 경비행기 프로펠라가 얼어붙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는데 말이지. 아, 몰라몰라 일단 출발하자구.




가는 길에 켄터키 주의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 (Mammoth Cave National Park)에 들렀다. 자그마치 전체 길이 390마일 (630킬로미터) 에 이르는 말 그대로 세계에서 제일 긴 동굴이다.




공원 입장료가 없는 대신 가이드가 이끄는 동굴 투어비를 낸다. 겨울철이라 개방하는 동굴 지역이 몇 개 안 돼서 별 선택의 여지 없이 뉴엔트런스 (New Entrance) 투어를 신청했다.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낙엽 깔린 숲 한가운데 내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느낌이 영 이상하다.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 지도 | Mammoth Cave National Park Map




이건 완전히 피난 가는 분위기. 적의 포탄을 피해 방공호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지는 수용소에 갇히는 전쟁 포로가 된 느낌이랄까. 철문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아주 잠깐 주저했다.




좁은 철계단을 따라 끝없이 지하로 내려가는데 완전히 지하벙커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보다도, 낯익은 이 느낌의 정체는 바로 초등학교 때 가봤던 제3 땅굴. 축축한 지하실의 서늘한 곰팡내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들어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백여 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간 끝에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지하공간. 함께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지하강당에 모여 파크레인져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있다.




늘 비슷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이곳은 천연 김치 냉장고!
어쩜, 이런 아줌마스런 발상이라니.




다시 동굴 투어에 나선 사람들. 안타깝게도 뉴엔트런스 (New Entrance) 대부분의 지역은 바위와 무너진 돌들로 가득한 공사장 같은 분위기라 전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맘모스 동굴은 동굴의 형태 중에서도 제일 흔한 석회동굴에 속한다. 석회동굴이 형성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석회암 지대에서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칼슘 (Calcium carbonate: CaCO3) 성분이 이산화탄소 (CO2)를 포함하는 빗물과 지표수 (H2CO3)를 만나 아래의 화학반응을 거쳐 탄산수소칼슘 (Calcium bicarbonate: Ca(HCO3)2)으로 바뀌는데,

CaCO3 + CO2 + H2O → Ca(HCO3)2

이 탄산수소칼슘은 물에 잘 녹는 성분이라 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그 자리에 빈공간을 형성하게 되고, 이 공간이 커지면서 동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빗물에 바위가 녹아 구멍이 생긴 것이 동굴.
이렇게 형성된 동굴을 1차 동굴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뉴엔트런스 (New Entrance) 지역에서 보았던 동굴이 바로 이 1차 동굴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대했던 종유석과 석순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동굴은 석회동굴의 2차 형태로 1차 동굴이 형성된 후에 탄산칼슘이 침전되며 만들어지는 형태다. 이곳처럼 1차 동굴의 형태가 오랜 시간 계속 유지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지표수의 유입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




동굴 투어의 하이라이트, 완전소등. 파크 레인져가 어두운 곳을 특별히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동굴 내의 모든 인공조명의 스위치를 내렸다. 자두가 무서워할까 봐 꼬옥 안아주었다.
완벽한 어둠. 빛이 백 퍼센트 차단된 공간은 처음이다. 아니다, 실험실에서 엑스레이 필름 현상할 때 밥 먹듯이 암실에 들락날락했으면서 그걸 잊고 있었네.




뉴엔트런스 지역은 마지막에 얼어붙은 나이아가라 (Frozen Niagara)로 이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던 화려한 동굴이었다. 구간도 짧고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볼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 억지로 달랠 수 있었다. 사진은 드레이퍼리 (Drapery)라고 부르는 형태로 커튼처럼 드리우는 것이 정말 얼어버린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보였다.




플로우스톤 (Flowstone)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마치 계곡의 작은 폭포가 층을 이루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동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종유석과 석순.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은 뉴멕시코주의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 보호지역이다.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여행기 | Calsbad Caverns National Park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기둥을 이루는 석주. 동굴 투어는 바깥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긴 하지만 겨울이라 개방하는 동굴이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시카고로 가는 발길이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