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 몰래 훔쳐본 신성한 의식 2008년 11월 27일 El Paso, TX - Guadalupe Mts NP - Calsbad Caverns NP - Van Horn, TX 250 miles / 400 km |
다시 찾은 엘파소를 뒤로 하고 오늘은 텍사스의 과달루페 마운틴 국립공원 (Guadalupe Mountains National Park) 과 뉴멕시코의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Calsbad Caverns National Park) 으로 향한다.
눈앞에 펼쳐진 땅은 모두 치와와 사막. 어제 본 화이트 샌드, 오늘의 목적지인 과달루페 마운틴 국립공원과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그리고 내일의 텍사스 빅벤드 국립공원이 모두 이 치와와 사막지역에 속한다.
과달루페 마운틴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외계 우주선이 산봉우리에 안착이라도 하려는가. 구름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벌거벗은 바위산 위에 원반형으로 피어오르는 구름. 세도나에서 느끼지 못했던 볼텍스를 이곳에서 보게 되는 것일까.
멀리 보이던 구름 아래의 산맥이 바로 과달루페 마운틴 국립공원 지역이었다. 산맥을 휘돌아 감싸는 구름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산맥은 산세가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었지만 벌거벗은 모습이라 그런지 광산지역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맥의 맨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엘 캐피탄이라는 바위. 군대의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 '대장'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과달루페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과달루페 마운틴 국립공원은 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따로 없어 하이킹으로만 돌아볼 수 있다.
한국의 국립공원들을 생각하면 이런 벌거숭이 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다. 자동차로 돌아볼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단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을 먼저 들르기로 했다.
오늘은 신비한 날. 사막에서 무지개를 보는 행운을 잡았다.
치와와 사막은 다른 사막들에 비해 고도가 높고 또 강수량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귀한 순간을 목격한 기분 좋은 경험이다.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입구. 이런 사막 한가운데 무슨 동굴이 있다는건지.
치와와 사막의 전형적인 풍경. 투어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주변의 자동차 코스를 돌며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사자나 치타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울창한 한국의 산을 보고 자란 우리들에게 이런 사막의 척박한 풍경은 미적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다.
비지터 센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그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동굴탐사가 시작된다. 대부분이 유료투어지만 가이드 없이 돌아볼 수 있는 무료투어도 있다.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지도 | Calsbad Caverns National Park Map
칼스배드 동굴은 석회동굴. 석회동굴에 대한 설명은 켄터키의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 여행기에서 했으므로 통과.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 여행기 | Mammoth Cave National Park
동굴 내부의 형태는 악마나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뾰족뾰족한 모습에서부터
둥글둥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의 타워까지 다양하다.
이곳은 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돌아볼 수 있었다. 어두워서 싫다고 하는 자두를 쥬니어 파크 레인져 뱃지로 살살 달랬다.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들. 떨어질까 무섭다.
플래쉬를 터트려도 어둡게 나오기 때문에 수형이 가진 카메라의 플래쉬까지 이용해가며 사진을 찍어야했다. 남들은 삼발이에 엄청난 조명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며 작품사진들 찍으시던데.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쥬니어 파크 레인져 프로그램.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쥬니어 파크 레인져 프로그램이 있다. 워크북을 비롯한 몇가지 미션을 완수하면 저렇게 선서와 함께 파크 레인져 뱃지를 수여받고 명예 파크 레인져가 된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두.
그런데 떨기는 파크 레인져 아저씨도 마찬가지. 파크 레인져가 된지 얼마 안되서 뱃지를 수여하는게 처음이란다.
그런데 떨기는 파크 레인져 아저씨도 마찬가지. 파크 레인져가 된지 얼마 안되서 뱃지를 수여하는게 처음이란다.
파크 레인져가 이끄는 투어 중. 약 한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이 투어에서는 주로 동굴 탐사의 역사, 이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승인되는 과정 등을 설명해주었다.
거대한 동굴의 내부.
석회동굴의 장식들. 이곳에서 보이는 동굴들은 다 2차 석회동굴이라 무척 화려하다.
인간이 설치해 놓은 조명이 아니라면 단 한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장소.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이런 곳에 자연이 만들어놓은 화려함의 극치를 마주하며 다시 한번 겸손해진다.
동굴 속의 이 물은 이 동굴을 생성한 힘의 근원이자 빛이 없는 지하세계에서도 생물이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은 개척자의 공포와 희열을 생각해보았다.
갈 길이 바쁘니 어서 이곳을 뜹시다.
칼스배드를 떠나 과달루페로 돌아가는 길. 아까 보았던 원반형의 구름이 어느새 산 전체를 뒤덮으며 낮게 깔려 있었다. 움직이는 차안에서도 그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우둑우둑 쏟아지는 비. 두려움을 안고 구름 속을 달렸다.
과달루페를 벗어날 즈음 하늘을 뒤덮은 붉은 기운. 붉은 색인지 핑크 색인지도 알 수 없는 아름답고 강렬한 하늘의 색이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구름에 비추어 스펙터클한 3D 영상을 중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엘 케피탄의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의 모습은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마치 전쟁시 위험을 알리는 봉화의 연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의 시작이 바로 엘 캐피탄 자신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가슴이 뛰고 마음이 급해지고 셔터를 누르는 손은 바쁘고 머리는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천지의 성스러운 예식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두려움과 숙연함이 내 자신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우리 여행의 최고의 순간, 그 어떤 다른 여행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신비한 경험, 잊을 수 없는 일몰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