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 오지의 사막 공원 2008년 11월 28일 Van Horn, TX - Big Bend NP - Fort Stockton, TX 350 miles / 560 km |
얼이 빠진 듯 바라 보았던 일몰을 뒤로 하고 숙소가 있는 반혼으로 가던 어젯밤은 또다른 두려움이었다. 가로등은 커녕 인적도 찾아보기 어려운 텍사스 작은 국도를 어둠 속에 통과하려니 작은 랜턴에 의지해 칼스배드 동굴을 탐험하는 모험가의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기분이랄까. 그렇게 도착한 반혼은 2년전에도 지친 우리를 맞아 주었던 고마운 휴식처였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텍사스 빅벤드 국립공원 (Big Bend National Park) 으로 가는 길.
빅벤드 국립공원이 하도 오지에 있어서 들러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완벽주의 정신을 발휘하여 도전해본다.
여행 중에 갈까 말까 했다가 가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여행 중에 갈까 말까 했다가 가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과속으로 경찰에 걸렸다. 도시 진입하면서 제한속도가 낮아지는 딱 고 지점에서 기다리고 계셨음. 나는 그 와중에도 경찰을 찍는 담대함을 보였음. 안들키려고 진짜 무지 애썼음. 텍사스 폴리스는 모자도 멋지구리한 카우보이 모자를 썼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도 포항에 있었다며 완전 반가워 함. 덕분에 경고만 주고 보내줌. 잘 생긴 마르티네즈 경찰관 아저씨 땡스 얼랏.
정말 멀다, 멀어. 멕시코 접경에 위치한 텍사스의 유일한 국립공원. 이쯤되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보호지역이 될 듯.
이곳도 치와와 사막의 일부라 황량하기 그지없다. 모처럼 보는 파란 하늘이다. 미국 남부 전역에 비가 내리는 날인데 신기하게도 딱 요 빅벤드 지역만 맑은 날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유난히 운수 좋은 날이 있어야 사는게 재밌지. 하지만 수형에게는 내가 계획을 잘짜서 그런거라고 날씨 지도를 들이대며 공치사하기 바쁘다.
텍사스 118번 도로를 타고 카스톨론/산타 엘레나 정션 (Castolon/Santa Elena Junction) 에서 우측으로 들어가 로스 멕스웰 시닉 드라이브 (Ross Maxwell Scenic Drive) 를 타고 간다. 소톨 비스타 전망대 (Sotol Vista Overlook) 에서 바라본 풍경.
빅벤드 국립공원 지도 | Big Bend National Park Map
사진의 왼쪽 중간에 보면 성벽같이 보이는 장성 사이로 V 자 모양의 틈이 보이는데 바로 리오 그랑데 강 (Rio Grande River) 이 흐르는 산타 엘레나 캐년 (Santa Elena Canyon) 이다. 그 협곡을 중심으로 왼쪽 지역이 바로 멕시코. 조금 있다가 조기 갈 예정.
빅벤드 국립공원은 멕시코 경계에 맞닿아 있어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심한 곳이라고 한다.
빅벤드 국립공원은 멕시코 경계에 맞닿아 있어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심한 곳이라고 한다.
자두가 찍어준 수형과 은영. 사진사를 바라보는 흐뭇한 아빠 미소가 사진 감상의 포인트. 엄마는 그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쁘게 나올까 애쓰는 중.
긴 여행의 막바지에 지칠대로 지친 자두지만 여전히 까불까불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도나의 벨락같이 보이는 지형.
시닉 드라이브의 목적지는 바로 산타 엘라나 캐년.
산타 엘레나 캐년은 약 450 미터 높이의 메사 사이에 형성된 협곡이다. 감히 넘어와서는 안되는 경계를 표현하듯이 우뚝 솟아있는 저 벽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회암 장벽이다. 협곡을 중심으로 왼쪽 지역이 멕시코, 오른쪽이 미국이다.
직각으로 깎아놓은 듯한 검은 절벽의 형상을 보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이 아니라 사람이 지어놓은 성벽 같다는 느낌도 든다. 역사 소설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성벽의 위용이 인상 깊지만 찾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버려진 성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직 자연을 볼 줄 아는 눈이 부족해 사람이 많이 몰리는 유명한 곳이 아니면 내 눈에 좋은 곳이라도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다. 부끄럽다.
배우고 공부한다는 것은, 사물의, 모든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배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등교하고 주입식으로 학습한 26년의 시간 끝에 이제야 겨우 안다는 것의 즐거움이 뭔가를 알 것 같다.
드디어 모습을 나타낸 산타 엘라나 캐년의 입구. 우리는 저 어두운 계곡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사진 속에 흐르는 강이 바로 리오 그랑데 강 (Rio Grande River). 리오 그랑데 강은 옛날 고등학교 때도 배운 강인거 같은데 막상 보니 개천같은 느낌이다. 우기가 아니라 물이 말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봄철에 리오 그랑데 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공원 내 일부 시닉 드라이브가 유실되어 통제되고 있는걸 보면 그 기세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원래는 시닉 드라이브를 따라 공원으로 들어오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좁은 협곡을 따라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강물이 줄어든 덕분에 상당히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가파른 산등성이에도 뿌리를 박고 자라는 선인장들.
마침내 진지하게 포즈를 잡아준 자두.
계곡의 안쪽까지 들어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자두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트레일을 따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길의 끝지점. 이 너머로 가려면 물길을 거슬러 가던지 카누같은 배를 타고 가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수형의 사진.
다시 시닉 드라이브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늘도 갈 길이 멀어서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처럼 보는 맑은 하늘과 구름에 마음이 상쾌해진다.
카스톨론/산타 엘레나 정션에서 우회전해서 비지터 센터 쪽으로 가다가 치소스산맥 베이슨 정션 (Chisos Mountains Basin Junction) 에서 우회전해서 치소스 분지 (Chisos Basin) 지역으로 갔다.
치소스 분지 지역에 내려 잠깐 트레일을 걸었다.
윈도우 (Window) 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전망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가 산맥의 틈으로 비춰올 때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산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는 사막 여행의 참맛은 바로 태양이 그려내는 빛의 향연이었다.
사막. 평균 이하의 강수량 때문에 식물이 우점하지 못하는 지역. 식물이 살지 못한다는 것은, 생긴 그대로의 굴곡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대로 노출된다는 뜻이다. 땅이 있는 그대로의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곳, 몸매의 굴곡만이 드러나는 곳이기에 옷을 입은 모습, 색을 입은 모습에 익숙한 나의 눈에 사막이 아름다와 보일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꽃과 나무가 좋아 식물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꽃과 나무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막에서 무슨 매력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한가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번 사막 여행을 통해 유독 집착했던 것, 그러나 제대로 얻어낼 수 없었던 것. 바로 일몰의 순간들, 노을이다. 옷에 가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맨몸이기에 태양이 가장 아름답게 색을 입힐 수 있는 곳, 가장 다양한 빛깔로 가장 화려하게 치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왜 사진작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막으로 가는지, 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 깊은 곳을 울렸던 때가 과달루페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일몰의 순간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막. 평균 이하의 강수량 때문에 식물이 우점하지 못하는 지역. 식물이 살지 못한다는 것은, 생긴 그대로의 굴곡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대로 노출된다는 뜻이다. 땅이 있는 그대로의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곳, 몸매의 굴곡만이 드러나는 곳이기에 옷을 입은 모습, 색을 입은 모습에 익숙한 나의 눈에 사막이 아름다와 보일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꽃과 나무가 좋아 식물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꽃과 나무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막에서 무슨 매력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한가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번 사막 여행을 통해 유독 집착했던 것, 그러나 제대로 얻어낼 수 없었던 것. 바로 일몰의 순간들, 노을이다. 옷에 가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맨몸이기에 태양이 가장 아름답게 색을 입힐 수 있는 곳, 가장 다양한 빛깔로 가장 화려하게 치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왜 사진작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막으로 가는지, 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 깊은 곳을 울렸던 때가 과달루페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일몰의 순간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하여 사막 여행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려면 일출이나 일몰의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데, 일출은 일정상, 일몰은 여행의 안전 때문에 우리 가족여행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옵션이다. 결국 태양이 예술가로 활동하지 않는 낮시간에 빈 캠버스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셈이지만, 여행의 안전을 위해서는 안타까와도 감동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또 한번 겸손을 배운다. 사막의 볼거리, 매력을 운운할 자격이 없는 나는, 정말 운좋게 목격할 수 있었던 과달루페에서의 노을을 마음에 담고, 사막이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할 것이며,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감사히 기억할 것이다.
이곳에도 곰과 마운틴 라이언이 서식하고 있나보다.
지는 해를 등지고 공원을 떠나는 길. 숙소인 포트 스톡튼 (Fort Stockton) 까지 가는 길도 오가는 차 한대 보기 어려운 외진 지역이라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두려움에 스릴 만점인 시간이었다. 깜깜한 밤에 차가 한 대도 없는 국도를 달리는 건 생각보다 공포스러운 일. 맞는 길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나 의심되고, 주변 환경이 보이지 않으니 무서운 상상이 활발하게 나래를 편다. 사람도 겁나고, 들짐승도 겁나고, 날씨도 겁나고.
Day 9 | 기분좋은 도시 구경 2008년 11월 29일 Fort Stockton, TX - Baton Rouge, LA 800 miles / 1300 km |
아침 해를 바라보며 I-10을 타고 달리는 길. 지루하기로 악명높은 I-10 이지만 I-20 텍사스 구간이나 I-25 와이오밍 동부에 비하면 유쾌상쾌하기 그지 없는 길이었다.
예정없이 점심 먹으러 들른 텍사스 샌 안토니오 (San Antonio).
도심을 가르는 물길인 운하를 따라 걸어본다.
투어 보트가 운행될 정도로 운하가 제법 크고 길다.
땡스기빙 거리 페스티발이 열리는 다운타운 중심가. 거리엔 온통 반팔 입은 사람들 천지인데 보기에도 엄청난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래서 남부도시는 친근하다니까. 같은 남부에서 온 아줌마가.
텍사스의 성지, 알라모 (Alamo).
왁자지껄 스트리트 페어.
주차장에서 본 샌 안토니오 다운타운 전망. 생각지도 않게 들른 샌 안토니오에서의 휴식이 오늘의 800 마일 여정에 큰 힘이 되었다.
Day 10 | 집으로 가는 길 2008년 11월 30일 Baton Rouge, LA - Athens, GA 600 miles / 970 km |
뉴올리언스를 들러갈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향한다.
볼거리가 있으면 되도록 여행 초반에 보는 것이 낫다는게 내 지론. 일단 여행의 터닝 포인트를 돌아 방향을 집으로 향하게 되면 그때부턴 만사가 귀찮아져 통과를 연발하게 되기 때문.
앨라배마에 세워진 현대자동차 공장.
차가 막히는 걸 보니 집에 가까워지나 싶다. 워낙 인적없는 길들만 골라서 다녀서 그런지 늘어선 차량의 행렬이 어색하고도 반갑다.
조지아 스테이트 라인.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웰컴 사인들을 봤지만, 조지아의 웰컴 사인만큼 복잡한게 없다. 그런데 그 복잡한 웰컴 표지판을 7년 살면서 한장도 못 찍었다는.
자, 이렇게 해서 우리의 두번째 미대륙 남부 일주가 끝났다. 이 여행은 수형, 자두, 내가 순수하게 셋이 떠난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제 다음 여행부터는 우리집 새로운 식구의 이름이 등장할 것임요.
자, 이렇게 해서 우리의 두번째 미대륙 남부 일주가 끝났다. 이 여행은 수형, 자두, 내가 순수하게 셋이 떠난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제 다음 여행부터는 우리집 새로운 식구의 이름이 등장할 것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