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디씨 벚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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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열리는 워싱턴 디씨 벚꽃축제. 자두 봄방학이기도 했지만 마침 벚꽃축제 시기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 이번 워싱턴 디씨 여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이다.
만개한 벚꽃들이 워싱턴 모뉴먼트 옆 타이달 베이슨 (Tidal Basin) 을 따라 아름답게 피어있다.
전날에는 비가 와서 날이 안좋았는데 일요일은 오전 중에 날이 개어 꽃놀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수형은 흐드러지게 핀 한국의 벚꽃보다 운치가 덜하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꽃길 걷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벚꽃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누가 자꾸 손으로 가린다 했더니 어떤 할아버지께서 짖꿎은 장난을 치고 계셨다. 제대로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하자 저렇게 포즈를 취해주셨다.
그림속의 풍경이 훨씬 화사해보인다. 정작 제퍼슨관을 등에 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아저씨.
부쩍 나를 찾는 호두. 호두에게는 엄마가 제일 예쁜 봄꽃인가보다. 헤헤헤
워싱턴 디씨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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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우체국 건물 (Old Post Office)
2006년 여행때는 내셔널 몰 외의 디씨 시내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이번엔 차를 호텔에 두고 전철을 타고 나와 시내구경부터 했다.
이곳 올드 포스트 오피스의 시계탑 전망대에 오르면 디씨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워싱턴 모뉴먼트 전망대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랜다. 전망대에는 무료로 오를 수 있고 우리가 오전 중에 가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처음 워싱턴에 오게 된건 2006년 뉴욕에 이모부 할아버지 칠순잔치 다녀오는 길에 밤에 잠깐 들러 본 디씨 풍경에 반해서였다. 2006년 땡스기빙데이 휴가때 찾은 워싱턴 디씨는 한 나라의 수도로써의 위엄을 갖춘 도시였다. 웅장한 건물들에 수형이 반해버린 도시. 그래서 이번에 디씨에 다시 가자고 했을 때도 군말않고 따라 나서주셨다.
유니언 스테이션 앞의 콜롬부스 상
이번엔 지하철을 정말 많이 타고 다녔다. 5년전에는 패어팩스 (Fairfax) 지역에 호텔을 잡고 차로 디씨까지 갔는데 이번엔 타이슨스 코너 (Tysons Corner) 에 호텔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번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길 잘한 것 같다. 물론 벚꽃축제가 열리던 둘째날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했지만.
시카고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의 전철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한 플랫홈에서 서로 다른 호선을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로 따지면 한 플랫폼에서 1호선과 4호선이 번갈아 오는 상황이다.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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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벚꽃본다고 걸었더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허기져 힘들었다. 점심도 먹을겸 찾은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 이 킹 스트리트를 따라 아기자기한 샵들과 식당이 가득하다. 미국에선 대도시 주변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타운들이 있는 것 같다.
궂은 날씨지만 원색의 건물 덕분에 걸을 맛이 난다.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몰라 헤매다 결국 한곳을 들어갔는데 왠걸, 굉장히 포멀한 식당. 다시 나오기도 뭣해서 들어갔는데 완전 실수였다. 에피타이져로 깔라마리 튀김을 시키고 메인으로 난 샌드위치, 수형은 투데이 스페셜을 시켰는데 세상에 거짓말 안하고 50분 기다렸다. 붐비는 시간도 아니고 오후 3시가 넘은 시간. 그 시간동안 그 좁은 식당에서 호두를 붙잡고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내가 이를 물고 버틴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결정적으로 음식이 도착했는데 수형이 시킨 오늘의 스페셜은 에피타이져로 먹었던 깔라마리 튀김. 내 굳은 표정에 흠찟 놀란 수형이 생전 안그러던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안시키더라.
18개월 된 호두가 이젠 정말 데리고 다니기 너무 힘들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누르고 싶고, 던지고 싶고. 그렇게 순하고 얌전하던 호두가 이렇게 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어쨌든 이번 여행 테마는 호두의 재발견이다.
수형이 좋아하는 Life is Good 매장 앞에서. 정작 이 브랜드 옷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수형은 이곳이 좋단다.
배고프고 힘든 아이에게 최악의 점심을 준것이 너무 미안해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줬다.
갤러리 한군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저 윈도우 쇼핑만 한다.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가 다르긴 한가보다. 세상에, 디씨에 있는 만 이틀간 한번도 밥을 안하고 다 사먹었다. 준비는 다 해갔는데 도저히 힘들어서 엄두가 안났다. 5년전에는 거의 해먹고 다녀서 정말 최소비용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맛집도 알아둘껄. 원래는 오는 길에 수산시장에 들러 찜게도 사오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날씨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용케 한인마트에 들러 며칠 뒤 점심모임에서 쓸 겉절이용 배추는 사왔다.
밥 먹었더니 기운이 좀 나는가.
전철역에서 보이는 기념관. 5년전에는 조지타운 (Georgetown) 을 갔었는데 분위기는 올드타운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다. 쇼핑 안좋아하고 팔팔한 애들 데리고 다니는 우리에겐 두군데 다 적합한 여행지는 아닌 듯 싶지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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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오는 길에 매릴랜드 웰컴 사인을 못찍었는데 지도에 보니 웨스트 버지니아를 달리는 중에 하이웨이에서 매릴랜드 접경에 가까운 곳이 있어 일부러 나와 사진을 찍고 갔다. 칭찬받아 마땅한 집념이여.
전날부터 일기예보 채널에서 동부지역 전체에 엄청난 스톰이 온다고 해서 겁을 많이 먹었다. 최대한 빨리 가려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다행히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는 중에는 괜찮았다.
오하이오를 반쯤 건넜을까.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한 비. 나중에 보니 남쪽지역에는 특히 피해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통털어 1,200건의 스톰이 보고된 역사상 가장 액티브한 하루 중에 하나였다나. 빗속을 달리느라 수형이 고생 많이 했다. 물론 나도 옆에서 눈한번 깜빡하지 않고 함께 했지만.
자두는 어려서부터 천둥, 번개, 홍수, 토네이도, 허리케인 같은 이상기후에 관심이 많았다. 늘 그날의 날씨를 체크하고 특히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면 안절부절 무척 불안해한다. 조지아의 여름은 오후에 천둥 번개가 치는 소나기가 자주 내렸는데, 어른들이 예전에 말 안듣는 아이들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겁주던 것처럼 난 자두에게 말 안들으면 천둥님이 잡아간다 얘기를 많이 했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자두가 날씨에 민감한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덜하지만 천둥이 칠 때마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로 숨는 자두를 보고 많이 후회했다. 두려움과 겁, 결국 모두 부모가 가르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무시는 아들. 거짓말 안보태고 집까지 가는 10시간 동안 한번도 안쉬고 달렸다. 수형이 주유하는 5분 빼고. 화장실도 한번 안가고 집까지 달려온 기록적인 날. 그 부모에 그 애들이라고 어떻게 됐든 그 시간을 버텨준 애들이 놀랍다. 열시간 동안 젖은 기저귀를 하고 있으면서 갈아달라고도 하지 않는 호두도 참 무디고, 군말없이 자다가 책보다가 없는 듯 있어준 자두도 대단하고.
차안에서 칭얼대는 호두와 놀아주다 그만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차 밖으로 나가진 않았으려니 하고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더니 집에 와서 호두 기저귀를 갈아준다고 옷을 벗기는데 윗도리에서 반지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