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 2011년 5월 26일 |
오후의 아치스 (Arches) 는 진빠지는 곳.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머지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시원하고 경치좋은 곳으로 가자. 여기는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 (Dead Horse Poing State Park). 캐년랜즈 국립공원 (Canyonlands National Park) 가는 길에 잠깐 샛길로 들어서면 나온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데드 호스 포인트에서 본 캐년랜즈 국립공원 .
데드 호스 포인트. 돌아서 굽이쳐 흐르는 저 강은 콜로라도 고원 지대를 관통하는 콜로라도 리버 (Colorado River). 저 강이 흘러흘러 그랜드 캐년까지 가게 될 것이다.
데드 호스 포인트라는 이름은 주인이 버리고 가버린 뒤에도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최후를 맞이한 말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저 인공호는 일종의 염전 (The Potash Evaporation Ponds) 인데, 강물을 끌어올려 소금 광산의 소금을 녹이고 염전으로 끌어올려 태양열로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파란색 염료를 풀어 물의 색이 수영장처럼 인공미 팍팍 풍긴다.
데드 호스 포인트와 캐년랜즈는 고도가 아치스보다 높은 덕분에 훨씬 쾌적하다. 아무리 훌륭한 경치도 찜통에서 감상하자면 좋아보일리 없다.
캐년 랜즈 국립공원 |
캐년랜즈 국립공원 (Canyonlands National Park) 은 작년에 살짝 훑어보았기 때문에 이번엔 메사 아치 (Mesa Arch) 만 잠깐 들르기로 했다.
메사 아치를 향해 가는 길. 다들 녹초가 된 상태라 그저 말없이 걷는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지역도 일종의 메사.
멀리 보이는 메사 아치.
이제 봤으니 그만 갈까. 모두가 차마 꺼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묻어둔 말.
힘드네.
해가 떠오르는 새벽이 메사 아치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데 그럴 열정과 여력은 없지 싶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마침내 도착한 메사 아치.
이 아치의 틈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나도 멋있지 않아. 빨리 호텔에 가고 싶어.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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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스를 떠나 브라이스 캐년 (Bryce Canyon) 까지 가는 길은 미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그 이름도 유명한 유타 12번 도로.
아치스를 나와 I-70 을 타고 서쪽으로 달리다 유타 24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보면 꼭 어렸을 때 봤던 시멘트 공장 같은 분위기의 풍경이 나타난다.
어지간히 인적이 드문 길을 달린다. 날씨도 좋고 속도도 빵빵.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알게 된 사진 찍기 좋은 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일출과 일몰을 찍으려는게 아니라면, 해가 중천에 떠있는 동안이 일반적으로 제일 선명하게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층층이 수놓은 지층들로 도배를 한 절벽들.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Capitol Reef National Park) 으로 들어가는 길.
유타 24번 도로 자체가 국립공원에 포함되기 때문에 저렇게 표지판에 'Entering' 이라고 써놓은 것 같다.
굽이굽이 절벽 사이를 달리다보면,
뜬금없이 복숭아 나무들이 나온다.
국립공원에서 보기 어려운 인간의 흔적, 과수원.
초기 정착민들이 생존을 위해 꾸려나가던 과수원이라는데 지금은 공원 측에서 관리를 하며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시즌이 아니라 아무 것도 딸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 과수원에서 재배되는 과일은 체리, 복숭아, 살구, 사과, 배. 참 다양하기도 하다.
나, 복숭아 킬런데.
복숭아 하니까 생각나는데, 내가 살던 조지아는 Peach State 라고 불릴만큼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었다. 문제는 마트에 가면 조지아산 복숭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복숭아 철이 되면 동네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복숭아 과수원에서 바구니로 갓 수확한 복숭아를 팔긴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먹는 복숭아는 모두 캘리포니아산.
북쪽으로 이사오고 어느날, 마트 전단지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조지아산 복숭아 세일이요.'
조지아에선 먹을 수 없었던 조지아 복숭아를 드디어 여기서 먹어보다니.
그랜드 써클의 수많은 국립공원 중에서 어찌보면 제일 인기 없는 곳이 이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인거 같다. 꼭 들러주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고 말았다.
공원 안에 있는 피크닉 장소에서 밥만 먹고 떠난 줏대없는 우리들.
귀얇은 우리들의 초라한 밥상.
유타 12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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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들어선 유타 12번 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유타 최고의 시닉 바이웨이. 한국인의 눈에는 가장 이국적인 드라이브 코스.
붉은색 캐년과,
메마른 초지,
그리고 침엽수림이 번갈아 나온다.
딕시 국유림 (Dixie National Forest) 에 진입하면 고도가 2,000 미터 이상으로 올라간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산맥 너머가 아마도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인 듯.
자동차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 족들. 간지나는 가죽 재킷과 엉덩이 부분이 뚫린 가죽 바지. 스타일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패션의 완성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보통 은퇴한 60대 이상의 장년층이라고 한다.
초봄의 여린 아스펜 (Aspen) 이파리들.
보울더 마운틴 (Boulder Mountain) 정상부위의 능선은 고도 3,000 미터에 다다른다.
아직은 잎을 달지 않은 회갈색 산등성이. 신록으로 뒤덮히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울더 마운틴을 내려가는 길.
그리고 다시 나타난 캐년 지역
산을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이 능선위의 도로는 뭐니.
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 지역을 달리는 유타 12번 도로의 하이라이트.
왕복 2차선 도로를 겨우 닦아낸 좁은 능선 부위를 양쪽으로 낭떠러지를 두고 달리는 거란다.
한쪽에만 낭떠러지가 있는 길이야, 해안도로든 산악도로든 여러번 타봤지만, 양쪽이 다 내리막길 절벽 경사인 길이라니, 내 인생에 언제 이런 길을 한번 타볼까.
도로를 달리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Grand Staircase / Escalante National Monument 지역의 풍광.
이런 색과 형태의 캐년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계곡의 틈바구니를 가득메운 녹색 골짜기가 인상적이다.
아 진짜, 우리 시빅이를 타고 여기에 왔었어야 했는데. 마일수로 십만이 넘고, 킬로미터로도 16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우리의 십년지기 시빅이. 예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애니미즘 신봉자. 그래서 우리 차 시빅이가 진짜 꼭 친구같다는.
그런데 안타깝게도 옷이나 가방한테서는 영혼을 못느낀다는. 그래서 후즐근한 옷차림에 가방/지갑없이 면허증과 신용카드는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닌다는. 이 말투는 중독성이라 멈출 수 없다는.
Grand Staircase / Escalante National Monument 는 Grand Staircase 지역과 Esacalante 를 아우르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국립기념물이다.
Grand Staircase 는 유타 서남부와 아리조나 서북부를 아우르는 방대한 퇴적층을 말하는데 콜로라도 고원 (Colorado Plateau) 의 캐년 삼총사인 자이언 캐년 (Zion Canyon), 브라이스 캐년 (Bryce Canyon), 그리고 그랜드 캐년 (Grand Canyon) 을 포함한다.
'Head of the Rock' 전망대에서 본 Grand Staircase / Escalante National Monument 의 배드랜즈.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름답게는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다.
브라이스 캐년에 다다르기 전에 한번 더 딕시 국유림 (Dixie National Forest) 를 지난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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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질 무렵,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도착한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Bryce Canyon).
타이밍은 기막혔는데, 왜 일몰의 풍경을 못담았을까.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브라이스 캐년에서의 기억에 남는 트레일은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