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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4

제06편. 딸내미 두고 오는 길 (View from the Sky, 2004/06)


"나를 너무나 괴롭혔던, 첫 번째 지도교수와의 악연이 드디어 끝났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자두를 한국에 보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바보같이 참고 지낸 2년이라는 시간이 억울하고 아깝기만 하다. 오로지 자두를 낳고 길렀다는 것만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던 시간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좋게 기억할 수 없는 내 인생 최악의 2년에 종지부를 찍는다. - 2004년 4월"




"자두를 한국에 두고 돌아오는 길. 외갓집에서 한껏 사랑받으며 더 잘 지낼 거라고 미안한 마음을 위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지도교수 밑에서 새 출발 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 후회로 끝나지 않게 잘 해보고 싶다. - 2004년 6월"




"여우한테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로 들어간 셈이 됐다. 정말로 내 인생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두 명의 교수들이다. 어이없고 막막하다. 내 선택이 이렇게 후회스러운 적이 없다. 내 앞에 놓인 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넘지 말아야 하는 산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여기서 그만두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자신감을 너무 많이 잃었다. - 2007년 3월"




누구에게나 살면서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그런 순간이 네 번쯤 있었던 것 같다. 난 지나간 일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대부분 아름답고 의미 있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조지아에서 보낸 7년의 학교생활은 내 인생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부정적인 것들뿐이었고 결과도 좋지 못했다. 더구나 안타깝게도 그 7년이라는 시간은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내 결혼생활 7년과 함께 맞물려 있어서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모습으로 망각의 언덕 언저리에 머물러있다.




그리하여 내가 쓰는 이 블로그 속의 여행기는 기억의 선별작업 결과에 다름아니다.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은 욕심, 그리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수형과 자두에 대한 기억을 곱고 예쁘게 남기고 싶다는 내 노력의 결과에 다름아니다. 괴로운 시간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자 했던 내 의지에 대한 포상이다.




2004년 6월, 한국에 자두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캐년과 눈 덮힌 산맥이 찍힌 것으로 보아 유타 주의 상공을 날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나름 소중한 사진들이다. 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옛일을 떠올렸더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빨리 끝내고 넘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