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2년이 지났다. 여행이라고는 고모가 계신 뉴욕에 다녀온 것뿐. 첫 일 년은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임신 중에 집을 떠난다는 것이 불안해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년 역시 어설픈 초보 엄마 노릇에 학생으로 공부하고 실험하느라 감히 여행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배짱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자두가 보고 싶고, 또 자두를 돌봐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 죄송스런 마음뿐이지만 한편으로 그간 복잡했던 일들이 해결된 끝이라 정신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그래서 준비한 제2의 신혼여행, 앞으로 몇 십년 간은 누리지 못할 둘만의 시간을 위해 떠난다. - 2004년 7월"
Feb 2011 | 집 떠나 자고 오는 여행이 처음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3박 4일의 600마일짜리 일정이라 오늘 준비해서 당장 내일도 출발할 수 있는 가벼운 여행이지만 그땐 호텔 예약부터 시작해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소심한 우리에겐 대단한 도전이었다.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우리가 선택한 여행지는 찰스턴 (Charleston)과 사바나 (Savannah). 찰스턴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 해안에, 사바나는 조지아 동남부 해안에 자리 잡은 도시인데 두 군데 다 미국 딥 사우스 (Deep South: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아우르는 미국 전통적인 남부지방을 이르는 말)의 전형적인 역사 관광 도시로 유명한 곳들이다.
찰스턴은 유서 깊은 저택과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아담한 바닷가 도시였다. 바다는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이 잔뜩 찌푸려 있었지만, 워낙 오랜만에 보는 바닷가 풍경이라 그런지 그조차도 반갑게 느껴졌다.
찰스턴을 돌아보고 사바나로 향하는 길에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 (Magnolia Plantation)에 들렀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 플랜테이션 (Plantation: 대규모 농장)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은 대대로 이곳을 소유한 한 가문의 영지로 300년간의 미국 남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잘 가꾸어진 정원과 여러 가지 관광 프로그램으로 찰스턴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의 배경은 조지아를 비롯한 미국의 동남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Southern Live Oak Tree인데 스패니쉬 모스 (Spanish Moss)로 뒤덮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는 이 나무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는데 정보를 찾다 보니 이 Southern Live Oak Tree가 조지아의 상징수라는 것을 알았다. Oak Tree는 보통 떡갈나무 종류를 일컫는데 일반 떡갈나무와 달리 이 Southern Live Oak Tree는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는 사철푸른나무라 Live Oak Tre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에는 이곳의 넓은 습지를 돌아보는 네이쳐 보트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사진 속의 구름이 하도 예뻐 포토샵으로 텍스트를 넣어봤더니 내 눈엔 꼭 영화 포스터처럼 보인다. 여행 내내 보이는 여름 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넓은 하늘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어느 유명 관광지에 간 것 못지 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악어와 물새들이 서식하는 습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쌀을 재배하던 논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탄 배 밑으로 악어가 헤엄쳐 다닌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아니, 그러면서 악어를 보겠다고 두리번거리는 건 또 뭐니. 결국 악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물새가 앉아있는 나무판자는 악어들의 일광욕 장소라고.
갑자기 쏟아져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드러나는 파란 하늘.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과 어우러져 참 아름다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여름 하늘이었다.
습지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보트의 엔진을 끄고 관광객들에게 잠시 주위를 돌아볼 시간을 주었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사라지고 갑자기 고요해진 이곳에는 낮게 드리운 뭉게구름과 어딘가 헤엄쳐 다니고 있을 악어들, 그리고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물새들과 더불어 아무 말 없이 잠시의 평화를 즐기는 사람들뿐이었다.
찰스턴에서 사바나까지는 두 시간 거리지만 우리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탔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국도 얘기를 하니 생각난다.
나는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대범해져서 정해진 루트를 마음 내키는 대로 변경하곤 한다. 우리는 작년, 그러니까 2010년까지도 네비게이션 없이 다녔기 때문에 보통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통해 여행의 루트를 완벽하게 파악한 후에 출발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행 중에 길과 지도를 보는 것은 늘 내 담당이라 멀쩡히 달리다가도 갑자기 루트를 바꾸곤 했다. 어떨 때는 경치 좋은 시닉 바이웨이를 타고 싶어서, 어떨 때는 지름길이랍시고, 또 어떨 때는 그냥 같은 길로 돌아오는 게 싫다는 이유로. 그런 바람에 인간 내비게이션을 믿고 달린 수형을 배신하고 곤경에 빠트린 적이 꽤 여러 번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게 몸으로 경험하고 고생해서 얻은 지식과 교훈은 결코 남의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
참고로 사진 속의 다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를 연결하는 탈마지 메모리얼 브릿지 (Talmadge Memorial Bridge). 사바나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다리라고 한다.
참고로 사진 속의 다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를 연결하는 탈마지 메모리얼 브릿지 (Talmadge Memorial Bridge). 사바나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다리라고 한다.
사바나는 조지아에서 애틀랜타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다. 찰스턴과 마찬가지로 미국 남부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고 특히 중심가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공원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찰스턴과 사바나, 그리고 플로리다의 세인트 오거스틴 (St. Augustine)을 함께 묶어 미국 남부 역사도시 3박 4일 코스로 다녀오면 아주 좋을 듯.
사바나에서는 미국 남부 전통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일부러 유명하다는 뷔페식당을 찾아갔다. 레이디 앤 선즈 (Lady and Sons)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원조 엄마표 백반집 정도 될까. 사람이 많아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어갔는데 전형적인 엄마표 남부 음식이라는 것이 프라이드 치킨, 무청 지짐, 콩죽,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그리츠 (쌀죽), 버터밀크 비스킷, 햄, 그리고 삶은 땅콩이라는 걸 알고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친절한 웨이터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먹어 보겠냐고 해서 '예스'했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따로 청구했더라는. 반면에 호텔 프론트에서 추천한 '펠리칸 포인트 (Pelican Point)' 라는 씨푸드 뷔페는 완전 성공적. 가격은 후덜덜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사바나에서는 미국 남부 전통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일부러 유명하다는 뷔페식당을 찾아갔다. 레이디 앤 선즈 (Lady and Sons)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원조 엄마표 백반집 정도 될까. 사람이 많아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어갔는데 전형적인 엄마표 남부 음식이라는 것이 프라이드 치킨, 무청 지짐, 콩죽,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그리츠 (쌀죽), 버터밀크 비스킷, 햄, 그리고 삶은 땅콩이라는 걸 알고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친절한 웨이터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먹어 보겠냐고 해서 '예스'했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따로 청구했더라는. 반면에 호텔 프론트에서 추천한 '펠리칸 포인트 (Pelican Point)' 라는 씨푸드 뷔페는 완전 성공적. 가격은 후덜덜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초기 자동차 여행이라 사진이 별로 없다. 집 떠나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 긴장된 탓일까. 아니면 역사 도시로의 여행이 우리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실 미국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찰스턴과 사바나 두 곳 다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수형과 나 둘 다 사람보다는 자연을 만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오고가는 길에 우리와 함께 했던 8월 초의 하늘과 구름, 운전 도중 무섭게 쏟아지던 소나기, 처음으로 주유등에 불이 켜져 긴장했던 순간, 겨우 찾은 주유소에서 본 세상에서 제일 큰 달, 무엇보다 우리가 두 번째로 떠난, 아니 미국 생활 10년간 유일무이한 둘만의 여행, 마치 제2의 신혼여행 같았던 둘만의 시간으로 마음속엔 언제나 풋풋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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