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 소원 성취의 기쁨은 아무나 누리지 못한다 2006년 7월 11일 San Diego, CA - Oxnard, CA 180 mile / 290 km |
드디어 자두가 이번 여행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다. 샌디에고 씨월드의 범고래 섀무쇼. 쇼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억지 감동 스토리만 아니라면 백 점 주고 싶다.
디즈니월드 못지않게 유명한 씨월드 (SeaWorld). 제대로 보자면 하루종일도 부족하지만 (아시다시피) 바쁜 일정에 쫓기는 우리는 자두가 유모차에서 곯아떨어진 틈을 타 재빨리 씨월드에서 탈출한다. 샌디에고는 더 볼 것도 없이 I-5를 타고 북진하는 우리.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고? 회 먹으러 간다, 회. 4년간 혀끝에도 대보지 못한 날생선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라 그 좋다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들을 모조리 젖혀버리고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엘에이 (Los Angeles)에 가까와지면서 길이 엄청 막힌다. 미국에도 교통체증이 있다니. 시골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고? 회 먹으러 간다, 회. 4년간 혀끝에도 대보지 못한 날생선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라 그 좋다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들을 모조리 젖혀버리고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엘에이 (Los Angeles)에 가까와지면서 길이 엄청 막힌다. 미국에도 교통체증이 있다니. 시골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엘에이를 겨우 통과해 밤이 돼서야 옥스나드 (Oxnard)에 도착했다. 여기에 회 잘하는 한국식당이 있다고 해서 해변은 물론이고 엘에이도 지나쳐 180마일을 달려왔는데 이럴 수가, 문 닫을 시간이란다. 설상가상으로 빈방이 있는 호텔을 찾을 수가 없다. 이건 저녁은 커녕 오늘 하루 묵어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되 버렸다. 한 시간이 넘게 옥스나드에 있는 호텔들을 다 뒤져 겨우 모텔 한 군데를 찾아 들어갔다. 조지아에서부터 꿈꿔온 화려한 저녁은 날아가고 싸구려 모텔에서의 쓸쓸한 컵라면이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Day 5 | 재충전 2006년 7월 12일 Oxnard, CA - Santa Barbara, CA - King City, CA |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이다. 최악의 숙소였던 플라밍고 모텔. 그래도 피곤했는지 잠은 잘 잤다. 간만에 늦장 좀 부리고 결국은 소원하던 회도 먹었다. 전날 저녁 반주도 함께해가면서 서더리탕을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무척 진짜 많이 아쉽긴 하다.
우리가 가진 8박 9일의 시간. 쪼개서 쓰기도 아까운 그 시간 중 1/18을 옥스나드라는 한번 들어도 못본 도시에서 재충전하는데 쓴 (솔직히 말하면, 날린) 셈이다.
캘리포니아 개스값은 무시무시하다. 전날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본 주유소의 개스값 표지판이 '웰컴 투 캘리포니아'로 보일 정도로 다른 주보다 훨씬 비쌌다.
US101번 도로를 타고 가는 길에 산타바바라 (Santa Barbara)에 들러 가기로 했다. 도시에 들어서면서부터 길가에 늘어서 있는 야자나무들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뭔가 확실히 보여줄 것 같은 도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법원이라는 산타바바라 법원 (Santa Barbara Courthouse) 을 찾아간다. 우리같이 경험 없는 초짜 나그네들은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타이틀에 자석같이 끌리는 법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여유가 있는 일정이어서 그런지 마음도 여유롭다.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천천히 법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해가 뜨거운 한낮이어서 그런가 도시가 한산하다. 사진 속의 시계탑이 있는 건물이 법원이다.
너무 예쁘게 잘 꾸며놓아서 법원이라기보다는 바닷가 휴양지 리조트 같다.
법원 건물 내부의 장식과 문양들을 보면서 한국의 사찰을 떠올렸다. 시계탑 전망대에 올라가려고 법원 건물에 들어서니 '재판 중 정숙'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꼭 수업 중인 학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법원 전망대에서 본 산타바바라. 온통 연홍색 기와지붕에 벽은 하얀색으로 칠해진 것이 얼핏 보면 동네 탠져 아울렛 (Tanger Outlet)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새마을 운동 때 초가지붕 걷어내고 올린 농가의 지붕 같기도 하다. 별로 세련된 색깔은 아닌데 그 붉은 지붕이 야자나무들과 어우러지니 묘한 매력을 풍겼다.
어떻게 이렇게 도시 내의 모든 건물들이 다 같은 형식일까 했더니 1920년대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붕괴한 후 철저한 계획하에 스페인 식민지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역시 새마을 도시였어.
산타바바라도 다른 캘리포니아 해안가 도시들처럼 산맥을 등지고 있었다.
조지아에서부터 달려오며 직접 밟아본 거대한 미대륙. 내륙의 그 텅 빈 땅덩어리들을 다 버려두고, 앞으로는 바다를 마주하고 뒤로는 가파른 산맥에 밀려나갈 것 같은 그 좁고 위태로운 대륙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캘리포니아의 도시들을 보고 몹시 놀랐다. 해안도시로 유명한 플로리다의 도시들은 다 평평한 지대에 세워져 있는데 우리가 보았던 캘리포니아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산등성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언덕에 지어진 집들이 많아 얼핏 보면 한국의 달동네나 산동네같이 보인다. 동부에서는 본 적 없는 캘리포니아만의 개성 넘치는 도시 형태인 것 같다.
수형은 산타바바라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다. 화창한 날씨, 차분하면서도 밝은 이곳의 이미지가 나도 마음에 든다.
법원에서 내려와 슬슬 걸어 해변까지 왔다. 야자나무가 해변에 가로수처럼 서 있다.
산타바바라를 떠나 다시 US101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내륙으로 들어오니 밭도 나오고 들도 나왔다. 한번은 도로 한복판에서 작은 나비떼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손톱 크기의 작은 나비들이 보풀처럼 날아다니며 길을 메우는데 나중에 보니 차에 부딪혀 전사한 수가 엄청 많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몬터레이 (Monterey)지만 그곳은 숙박이 비싼 곳이라 근처에 있는 킹시티 (King City)에 숙소를 잡았다. 모처럼 여유 있는 저녁이라 맥주 한 캔씩 사 가지고 수형과 기분 좋게 나눠 마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몬터레이 (Monterey)지만 그곳은 숙박이 비싼 곳이라 근처에 있는 킹시티 (King City)에 숙소를 잡았다. 모처럼 여유 있는 저녁이라 맥주 한 캔씩 사 가지고 수형과 기분 좋게 나눠 마셨다.
Day 6 | 목표보다는 과정
300 mile / 480 km |
몬터레이 베이 (Monterey Bay). 너무 오래 달려와서 그런가. 그토록 원하던 태평양 바다를 보는 마음이 생각보다 덜 극적이다.
비행기 값을 아껴보겠다는 심산으로 차를 몰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엔 오로지 캘리포니아에 가서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뿐이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 여행의 목적지인 몬터레이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도 그만큼 작아져 버렸다. 5일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동안 어느새 우리가 이 자동차 여행을 그 자체로 즐기게 되었나 보다.
여전히 바다는 아름다웠다.
내 부족한 문장력으로 이 풍경을 묘사하느니 차라리 내 부족한 사진 기술에 의지하는 것이 더 낫겠다.
7월 한여름이지만 아침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17 마일 드라이브'에 들어섰다. 몬터레이 베이의 해안가 경치를 감상하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페블 비치 17마일 드라이브 Pebble Beach 17 Mile Drive
http://media.pebblebeach.com/images/stories/pdf/17-mile-drive.pdf
http://media.pebblebeach.com/images/stories/pdf/17-mile-drive.pdf
17마일 드라이브 코스 중의 하나인 새바위 (Bird Rock). 백색의 섬 표면이 독특한 작은 바위 섬인데 새바위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봤을 때도 새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입을 벌리고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수형이 한마디 던진다.
'새똥도 저렇게 발라놓으니 괜찮네.'
헐, 정말 그러네. 새똥이네.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물개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본능적인 게으름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고래 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자두가 점점 여행에 비협조적이 되어간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겠다는 것을 겨우 달래서 보여줬다.
드라이브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외로운 사이프러스 (The Lone Cypress Tree). 250년이 넘게 저 자리에 서 있었다는데 옛날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서 보고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전혀 외로울 틈이 없어 보인다.
이 론 사이브러스 (Lone Cypress) 는 세계에서 제일 멋진 나무 열 그루 (10 Most Magnificent Trees in the World) 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
17마일 드라이브에서 빠져나와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포인트 로보스 주립공원 (Point Lobos State Park)에 갔다. 축축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니 온몸이 떨려왔다.
이곳의 절벽에서 보았던 드넓은 바다의 모습에 반했었다. 그래서 수형을 모시고 이곳까지 친히 납시었는데 하늘을 온통 뒤덮은 안개가 그 바다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 속의 수형이 자두에게 '자두야, 엄마가 이거 보여 줄라고 5일이나 걸려서 오자고 그랬데. 용서해야 되는 거니?' 라고 말하는 것 같다.
11시가 넘었는데도 이놈의 안개가 걷힐 줄을 모른다. 캘리포니아의 아침 안개가 유명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아침에 몬터레이 오는 길에는 안개를 연기로 착각하고 불이 난 줄만 알았다는 무식한 이야기.
해안식물은 바닷가 지방의 거센 바람, 그리고 높은 염분에 견딜 수 있게 적응하고 진화한 식물들인데 일반적으로 키가 작고 잎이 통통하다. 해안 절벽에 넓게 펼쳐진 식물들이 인상적이다.
안개 속의 이 남자는 나를 용서해주었다. 내가 당신이 착해서 결혼해준 거야.
그 어느 지역의 꽃들보다도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해안식물들.
안개 덮인 해안 절벽도 무척 멋지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그 바다는 결국 내 마음속에서 머무를 팔자인가 보다.
아쉬운 마음으로 포인트 로보스를 떠난다.
이곳은 우리 여행의 터닝포인트. 이제 집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Pacific Coast Highway, PCH)를 탄다. 절벽을 끼고 바다와 함께 달리는 아슬아슬한 해안도로, 언젠가 꼭 한번은 타보고 싶었던 꿈의 도로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루트 1 (California State Route 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