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011 | 애틀랜타 (Atlanta)는 미 동남부에서 제일 큰 도시 중의 하나지만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볼거리가 많지 않아 가까이에서 7년을 살았으면서도 한국 장 보러 갔던 기억밖에 없다. 다운타운 스카이라인 사진 한 장이 없으니 해도 너무했지 싶다. 그래도 지내온 시간은 무시할 수 없어 몇 가지 사진과 기억을 모아보니 한편 분량의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별거 없는 7년간의 애틀랜타 여행을 시작한다.
"드디어 6년하고도 11개월 동안 살았던 조지아 에센스 (Athens, GA)를 떠난다. 난 우리 차 시빅이를 몰고, 수형은 무빙 트럭을 몰고. 그렇게 우리는 인디애나의 새 보금자리를 향해 미련없이 달린다. 애틀랜타를 지난다.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뒤를 보는 건 트럭을 운전하는 수형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지 떠나는 곳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다. 수형은 잘 따라오고 있다. 근데 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걸까. - 2009년 5월 30일. "
애틀랜타는 우리가 살았던 에센스 (Athens)에서 서쪽으로 70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한인 마트까지는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국 장을 보러 다니곤 했다. 한인 마트라면 지금은 한아름 마트가 독점하고 있지만, 우리가 처음 미국에 온 2002년만 해도 한인 상권이 애틀랜타 뷰포드 하이웨이 (Buford Highway)에 집중되어 있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창고'라고 불리는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이 창고라는 마트는 어찌나 큰 지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는 데만 두세 시간이 족히 걸리고 또 식품에서부터 한국 드라마 비디오까지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없는 그야말로 만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한국에도 대형마트들이 많이 있어 별로 놀랍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창고에 장 보러 가는 건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운 월중행사였다.
2002년 8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아직 차가 없을 때였다. 출국자 모임에서 만난 J 씨와 창고에 한국 장을 보러 애틀랜타에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 J 씨도 애틀랜타 초행이라 내가 옆에서 길을 봐주고 있었는데 I-85에서 빠져 나가는 길에서 I-285 이스트와 웨스트가 헷갈려 차선을 바꾸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차가 미끄러져 갔다. 교통 사고는 처음이고 더구나 난 자두를 임신한 지 얼마 안돼서 무척 놀랐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사고도 잘 처리되었다. J 씨의 차가 별로 망가지지 않아서 큰 사고가 아닌 줄 알았는데 나중에 경찰 리포트하고 출발하다 보니 앞쪽으로 갓길에 차들이 세대나 더 서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2004년 봄. 수형이 학위과정에 들어가고, 나는 나대로 실험실 생활이 꼬여가던 참이라 고민 끝에 엄마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자두를 돌봐주러 오신 엄마를 모시고 애틀랜타 다운타운을 가던 길에 들른 성 토마스 성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자두 사진.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애들 신발 안 신기고 다니는 건 여전하군.
애틀랜타에는 코카콜라, 홈디포, 유피에스, 델타 항공, 에이티엔티 (AT & T)와 같은 대기업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 코카콜라 본사는 애틀랜타의 몇 안 되는 유명 관광지 중 하나다. 왜 돈을 내고 남의 회사 구경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조지아 주민 된 도리로 들러본 코카콜라 본사.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지금까지도 애틀랜타에 얽힌 추억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있다. 2006년 여름, 우리가 처음으로 대륙횡단을 감행했을 때였다. 8박 10일동안 5,600마일을 돌고 온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텍사스 아마릴로 (Amarillo)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앨라배마에 들어서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온종일 천 마일이 넘게 달린 끝이라 지치기도 하고 밤길 운전도 겁이 나 웬만하면 호텔에 들러 자고 가고 싶었지만, 앞으로 대여섯 시간 밖에 안 남았으니 잠은 집에서 자는 것이 좋겠다고 나직이 속삭이던 무서운 남자, 수형. 내가 뭐 별수 있나, 운전대 잡은 사람 맘이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앨라배마와 조지아의 경계를 넘어 애틀랜타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세시. 꼬박 스무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애틀랜타의 I-85 도로가 집에 도착한 것보다 더 반가웠다. 막 내린 비로 더욱 까맣게 보이던 아스팔트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로등 주황 불빛 반짝이는 한산한 애틀랜타 다운타운을 관통하며 나와 수형이 느꼈던 감회는 정말 남달랐다. 집에 새벽 네 시가 넘어 도착한 우리는 사이좋게 라면을 끓여 먹고 잤다.
언더그라운드 애틀랜타 (Underground Atlanta). 애틀랜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로 소개되고 있지만, 지역 명소는 말 그대로 지역의 명소일 뿐 미국 내 다른 대도시들의 관광 인프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남부의 심장으로 불리기는 해도 애틀랜타는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도시로 1996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탈바꿈하여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한인의 규모도 최근 10년 사이에 놀랍게 증가해 LA와 뉴욕을 잇는 제3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에센스에서 7년 살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애틀랜타 코리아타운의 흥망성쇠를 직접 눈으로 본 터라 처음 미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면 아주 구닥다리 옛날 옛적 이야기를 꺼내는 기분이 들 정도다. 미국이 한국과 크게 다른 점 중에 하나가 유행이 빠르지 않고 변화가 적어 지루하리만큼 안정적이고 단조롭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애틀랜타는 코리아타운을 필두로 근 10년간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도시가 아닌가 한다.
2006년에 선배 소개로 MBC 다큐멘터리 취재를 잠깐 도와준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장소 중의 한 곳이 애틀랜타 동물원 (Zoo Atlanta)이었는데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자두를 데리고 다시 찾았다. 한국에서 서울대공원같이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커다란 동물원을 보다가 작은 숲길 그늘따라 오밀조밀 온갖 동물들이 모여있는 이곳에 오니 걷기 싫어하는 꼬마 자두도 힘들다 소리하지 않고 잘 돌아다녔다.
MBC 취재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취재진이 애틀랜타 슬럼가를 촬영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갔다가 흑인 남자가 카메라를 보고 소리 지르며 쫓아오는 바람에 부리나케 도망친 적이 있다.
이 취재를 위해서 우리는 약 서른 시간 동안 네 번이나 애틀랜타, 그것도 집에서 제일 먼 공항 근처까지 왕복한 기록을 세웠다. 집에서 공항까지 80마일쯤 되니 왕복 네 번이면 640마일 (약 1,000킬로미터)을 달린 셈이다. 집에서 워싱턴 디씨까지도 갈 수 있는 거리다. 엄청나군. 새벽 두 시 다돼서 집에 들어갔다가 세시간 자고 다시 다섯 시에 나온 적도 있고, 한번은 애틀랜타 시내를 관통하는데 정말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수형이 운전하느라 무척 고생한 적도 있다. 나름 색달랐지만 다시는 자처하지 않을 경험이었다.
애틀랜타시의 야심작 조지아 아쿠아리움 (Georgia Aquarium). 2005년 11월에 개장한 말 그대로 세계에서 제일 큰 수족관으로, 보유하는 물고기 수만도 12만 마리가 넘는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63빌딩 수족관보다 못하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애틀랜타의 넘버원 볼거리다.
특히 이곳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사진에서 보이는 전면 유리관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크린이라고 한다. 이곳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 중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단연 고래상어 (Whale Shark). 아시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래상어를 보유하는 수족관이 바로 이 조지아 아쿠아리움이라고 한다. 소리 없는 푸른 극장에서 상영되는 바닷속 드라마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감동을 얻고 돌아갈 것이다.
해저터널을 건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전시관. 이 거대한 수조에는 십만 마리 이상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처음 개장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특히 연간 입장권은 완전히 매진된 상태.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애틀랜타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건가.
자연사 박물관인 펀뱅크 (Fern Bank). 처음에 사람들이 펀뱅크라고 해서 Fun Bank인 줄 알았다는. 한국에서 보던, 눌러도 작동 안되는 버튼만 즐비한 과학박물관*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시설도 좋았고 자두도 무척 좋아했다.
2013 Updated |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고 귀국해서 보니 도시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어찌나 잘 되어있던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에 백 퍼센트 공감 중이다.
2013 Updated |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고 귀국해서 보니 도시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어찌나 잘 되어있던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에 백 퍼센트 공감 중이다.
애틀랜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스톤마운틴 주립공원 (Stone Mountain State Park). 애틀랜타를 들르는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자세한 스톤마운틴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기 스톤마운틴 편에서.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막상 가까운데 살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잘 안 가지게 된다. 그리고 사실 가까운데 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은근 놓친 것이 많다, 애틀랜타에서. 굳이 시간 내서 다시 갈 곳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게 많다. 이 아쉬움이 칠 년간 살았던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은 아니길 바라본다. 가장 아쉬운 것 한 가지를 사진으로 올리며 애틀랜타 편을 마친다 (오늘 갤런당 $3.45 에 넣고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