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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9

제45편. 세식구 함께 한 마지막 여행: 자동차가 불법인 섬 (Travel Michigan, 2009/07)


Aug 2009 | 언제 우리가 셋이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가 싶다. 공교롭게도 임신 20주에 조지아를 떠나 인디애나로 와서 둘째 호두를 낳았다. 조지아에서의 힘들었던 7년이 기억속에서 조금씩 지워지고, 마치 우리는 처음부터 네식구였던 것처럼 인디애나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외동딸로 6년이 넘게 자라온 자두는 가끔 우리가 셋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나도 가끔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돌아가고 싶다기 보다는 그때 내가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자두를 바라보는 눈,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지금과는 달랐던 것 같기 때문이다. 3년 전. 궁합 잘맞는 한팀이었던 우리 셋. 자두와 수형, 그리고 내가 함께 떠난 마지막 여행이자, 뱃속의 호두까지 처음으로 넷이 함께한 여행, 이제부터 시작이다.




임산부도 소화 가능한 미시간주 3박4일 여행 코스 대령이오. 첫날은 오후에 출발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2박3일 여행. 하루는 매키낙 아일랜드 (Mackinac Island), 다음날은 슬리핑 베어 듄 (Sleeping Bear Dunes National Lakeshore) 과 트래버스 시티 (Traverse City) 를 보고 이튿날 아침 출발해서 집으로 가는 일정.




20110702 | 오후에 출발해서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드 (Grand Rapids) 까지 230 마일을 달렸다. I-65 를 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끝없이 늘어서 있는 대형 트럭들의 행렬.
I-65 는 남단의 앨라배마주 모빌 (Mobile) 과 북쪽의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남북으로 이으며 앨라배마의 버밍햄, 테네시의 네쉬빌, 켄터키의 루이빌, 인디애나의 인디애나 폴리스 같은 굵직굵직한 도시들을 지나는 도로인데 인간적으로 참 볼 것 없는 길이다. 특히 테네시의 네쉬빌에서 일리노이의 시카고까지 이어지는 430 마일은 우리가 직접 달려봤는데 딱히 뭐라고 특징을 잡아 내기도 어려운 아무 의미 없는 도로일 뿐이었다. 그나마 네쉬빌에서 루이빌까지는 간간이 숲도 나오지만 일단 루이빌을 지나고 나면 인디애나 폴리스 권역을 빼고는 굴곡 없이 넓게 펼쳐진 평야에 옥수수밭이나 콩밭 같은 농경지들 밖에 안보인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길이 막히기까지 하면 이건 상당히 위험한 징조다. 불쾌지수 올라가기 전에 도로야, 좀 뚫려다오.




처음으로 밟아보는 미시간주. 미시간에서 제일 큰 도시 중에 하나인 그랜드 래피드에서 첫날밤을 묵었다. 큰 도시의 주변 지역 호텔을 공략하는 것은 숙박비를 줄이는 우리의 노하우.




20110703 | 네시간이 넘게 걸려 미시간의 로어 페닌슐라 (Lower Peninsula) 최북단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시작한 I-75 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조지아에 살면서 남쪽에서만 타보던 I-75.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의 시작과 끝을 보는 것은 언제나 감회가 새롭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종의 애니미즘을 신봉하던 사람이라 종종 사물에 감정 이입을 시키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이제는 도로들에게까지 친근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I-75 를 만나니 타지에서 고향 친구 만난 것 마냥 반갑다.




맥키나우 시티 (Mackinaw City) 는 로어 페닌슐라 최북단, 오대호 중 미시간호 (Lake Michigan) 와 휴런호 (Lake Huron) 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은 관광 도시다. 맥키나우 시티의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맥키낙 아일랜드 (Mackinac Island) 에 들어간다. 어지간히 사람이 많은 날인 듯. 항구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저멀리까지 차를 대고 왔다. 멀리서 보이는 맥키낙 아일랜드. 날이 흐리고 우중충한 것이 7월인데 제법 쌀쌀하기까지 했다.




맥키낙 아일랜드에 입성.

맥키낙 아일랜드 관광지도 | Mackinac Island Map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는 다운타운 거리. 1800 년대 후반이나 1900 년대 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물들이다.




그런데 도로를 가득 메운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와 사람들.




거기에 진짜 말이 몰고 있는 마차들까지.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은 자동차 운행이 금지된 뚜벅이, 바이커들의 천국이다. 환경 보전의 이유로 자동차 운행이 금지된 맥키낙 아일랜드. 운행이 허가된 자동차는 앰뷸런스와 소방차같은 필수 차량들 뿐이다.




그런고로 이곳에서는 마차가 대세.




가지각색의 마차들이 영업중이다. 마차들을 보고 있으니 영국 영화에 나오는 런던 거리에 있는 기분도 든다. 도시 자체는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역사 관광 도시의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차량 통행 금지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맥키낙 아일랜드만의 차별화 된 특색인것 같다.




한 코스 돌고 온 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저렇게 겨우 물만 축이고 다시 움직여야한다. 특히나 7월4일 휴가철이라 더욱 더 바쁘게 움직이는 말들.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말의 시선.




응당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겠지만, 둘째를 임신중이라 자전거 대신 마차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마차를 탄다고 신이 난 자두.




운좋게 두번째 줄 착석이요.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마차다.




커다란 말 엉덩이를 보면서 가는 것이 좀 거시기했는데 갑자기 말이 꼬리를 살짝 들어올리고 X꼬를 여는가 싶더니,




무차별하게 쏟아낸다. 더 신기한건 변이 나올 때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꼬리를 들어 올려 절대 꼬리에 변이 뭍지 않는다는 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하는 가혹한 운명을 가엽게 여겨 너의 무엄함을 용서하노라.




기분좋은 한여름의 산책로.




사랑의 은하수 (Somewhere in Time, 1980) 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그랜드호텔.




아치 락 (Arch Rock) 을 통해 살짝 훔쳐본 휴런호 (Lake Huron).




아치 락에서 모처럼 포즈를 잡은 아줌마.




돌아오는 길. 한가로운 숲속을 가득 메운 고들빼기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마차를 끌어야 하는 말들이 안쓰러워 앉아있는 자리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천상 양반은 못될 팔자인가보다.




마차 투어가 끝나고 다시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길에 사이좋게 걸어가는 자두와 수형의 뒷모습. 이런 생각을 한다. 여행기 사진을 통해 꾸준히 엿보이는 '아빠와 딸' 의 모습. 이 다음에 시간이 흘러 자두가 이 여행기를 보았을 때, '아빠와 나는 참 다정한 부녀였구나' 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라는 사람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담아낸 순간들이었다는 나만의 진실. 사진으로 남지 못한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저 딸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쌓여서 평생 스스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




항구.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날씨가 흐리더니 점점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섬 안에서 숙소를 구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 게다가 너무 비싸다. 반나절 돌아보고 다시 페리를 타고 육지로 건너간다.




수형




돌아가는 보트는 갈 때와는 달리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이다. 어찌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던지 일그러진 수형의 얼굴을 보면서 엄청 웃었다. 선장 아저씨의 경고를 무시하고 보트 가장자리에 탄 여학생이 결국 호숫물을 옴팡 뒤집어 썼다는.




미시간의 두 반도를 잇는 유일한 다리인 매키낙 다리 (Mackinac Bridge). 마이티 맥 (Mighty Mac), 또는 빅맥 (Big Mac) 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매키낙 다리는 무려 8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길이의 현수교 (Suspension Bridge) 다.

교량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는 | 썬로드의 교량 이야기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로어 페닌슐라의 최북단, 그리고 다리의 끝이 이어지는 곳은 어퍼 페닌슐라.




갈매기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자두.




등대와 마이티 맥. 나중에 시간이 되면 미시간호를 주욱 따라 가며 등대 여행을 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티 맥을 직접 건넌다. 돈내고. 서반구에서 앵커리지 사이가 제일 긴 현수교라고 하니 한번 건너봐 줘야지. 앵커리지는 주탑과 함께 현수 케이블을 지지하는 다리 아래의 받침대를 말한다. 건널 때는 이렇게 긴 줄 몰랐는데 다리의 길이가 8킬로미터가 넘는다는게 놀랍다. 다시 말하면 마이티 맥은 서반구에서 현수 케이블의 길이가 제일 긴 다리라고 할 수 있겠다.




미시간 어퍼 페닌슐라 (Upper Penninsula).




다리만 건넜다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가는 길. 지금까지 건너 본 유명한 다리들도 참 많은데, 여행기 한편으로 꾸리기엔 사진이 너무 없다. 드샷 (드라이브 샷: 운전하면서 찍는 사진) 은 너무 어려워.




매키나우 시티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터널 트리 (Tunnel of Trees). 시닉 루트라고 해서 일부러 애둘러 타봤는데 기대한만큼 좋지는 않았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꼭 시도해보는 도로가 있다. 물을 끼고 달리는 도로다. 여행 동선을 짤 때 지도에 바닷가나 호숫가에 바짝 붙어있는 도로가 있으면 혹시나 하고 꼭 포함시키는데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해변은 호텔에 가리고, 호수변은 나무에 가리고. 그러고 보면 낭떠러지 아래로 바로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캘리포니아 1번 도로는 유일무이한 미국 최고의 시닉 드라이브. 오늘 밤은 페토스키 (Petoskey) 에서 숙박. 그나저나 이 지역 호텔비가 보통 센게 아니다.




20110704 | 오늘은 슬리핑 베어 듄스 (Sleeping Bear Dunes National Lakeshore) 로 간다. 가는 길에 잠깐 들른 피셔맨스 아일랜드 스테이트 파크 (Fisherman's Island State Park).




바다같은 호수. 미시간호다.




물수제비 뜨는 수형




호두와 나. 호두는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다.




슬리핑 베어 듄스로 가는 미시간주의 평범한 도로 풍경. 예전에 조지아에 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미국 어디서나 똑같을 것 같은 이런 평범한 도로 풍경이 사실은 미국의 반쪽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 늘 보던 풍경이라고 사진도 제대로 찍어놓지 않았던게 후회가 되서 요즘은 지루한 도로 풍경이라도 일단은 찍어놓고 본다.




슬리핑 베어 듄스에 도착.




다리를 건너고,




숲을 지난다.




언덕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 언덕을 오르는 오르막길은 언제나 즐거운 상상이 가득하다. 그 너머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숨이 멎는거 같다.




이게 호수라니. 미시간호가 바다같이 넓은 곳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이런 풍경은 정말 처음 보는 것 같다.




엄마, 여기 너무 좋아..




바다로 이어지는 모래언덕. 앗, 바다라니, 바다가 아니라 호수로 이어지는 모래 언덕. 이렇게 높은 모래 언덕이 바로 물로 이어지는 지형은 처음 본다.




20주 임산부에게도 꼭 내려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모래 언덕이다.




하지만 엄두가 안난다. 저기 저 아래 개미처럼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라.




게다가 경고문까지. 사구 절벽이라니, 정말 보기 드문 독특한 지형인데 이렇게 사람들이 자꾸 밟고 내려가면 이 특별한 모래 절벽이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음이.




전망대




난 진짜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물색은 정말 처음 보는 것 같다. 물론 그동안 미 서북부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많은 아름다운 호수들도 예쁜 물색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곳은 바다같은 호수라 그런지 아기자기한 호수들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




인공위성이 찍은 푸른별 지구의 아름다운 파란색은 바로 이 호수 때문일거다.




나 어때요.




솜털처럼 날리는 이것은 포플러인가.




진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 몸을 생각해서 억지로 발길을 돌리고 듄 클라임 (Dune Climb) 으로 갔다.




모래 언덕. 저런 경사의 모래가 무너지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릴적 놀이터에서 모래 무덤에 나뭇가지를 꽂아두고는 가지가 쓰러질 때까지 번갈아가면서 손으로 모래를 훑어내던 놀이를 하던 기억이 난다.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들.




경사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나도 여기는 올라갔다는 사실.




자두와 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미시간호.




뛰어 내려가는 수형과 자두. 나는 거의 굴러 내려가야 할 판이다. 호두야 꼭 잡아.




쥬니어 파크 레인져.




슬리핑 베어 듄스를 떠나 숙소가 있는 트래버스 시티 (Traverse City) 로 향했다. 미국에는 호숫가 주변으로 체리 과수원이 많은 것 같다. 체리픽킹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완전한 체리시즌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다.




때맞춰 열린 체리 페스티발.




체리 페스티발에 맞춰 설치된 간이 놀이동산에서는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갖가지 놀이기구들이 가득하다.




슬리핑 베어 듄스에서보다 더 눈을 반짝거리며 들떠있는 자두. 결국엔 수형과 그네를 탔다. 딸의 부탁이라 마지못해 앉아는 있지만 정말 죽을 맛일테지. 진짜 재미없는 남자다.




예전에 영화 '빅' 에서 주인공 꼬마가 소원을 빌었던 놀이동산이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놀이동산이 상설이라 그 영화를 잠깐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미국에 와보니 이렇게 놀이동산들이 이 도시, 저 도시 서커스 공연하듯 한 달 정도 머물다 옮겨다니는걸 보고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관람차를 비롯해서 저렇게 큰 놀이기구들이 도시와 도시를 이동해 다닌다는게 참 놀랍고 신기하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놀이동산. 역시 미국의 놀이동산은 밤에 와야 제 맛.




관람차 위에서 찍어준 나.




관람차 위에서 노을. 놀이기구를 너무 싫어하는 수형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자두와 함께 올라타 찍어준 사진. 그럼 임산부인 내가 올라가리?




페스티발 장소 바로 옆에서 7월4일 불꽃놀이가 열린다. 호수가에 모여 앉아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노을.




불꽃놀이. 이젠 자두가 불꽃놀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다.




20110705 |  집으로 가는 길. 미시간주 웰컴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국도를 타고 달렸다. 다섯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찍어낸 사진.




옥수수밭들이 보이는 것이 집에 가까이 온 것 같다. 이곳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옥수수밭, 콩밭 질린다 하지만, 조지아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이라 주변에서 흔히 보이던 옥수수밭이 난 싫지 않았다. 꼭 한번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결국 옥수수밭이 지겨워지기도 전에 이곳을 떠났네.




우리 셋의 마지막 여행이 이렇게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세살이 되는 호두도 함께 데리고 가을의 미시간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으며 이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