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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5

제13편. 사계절 시리즈: 가을산행, 전망 좋은 곳 (Brasstown Bald & Rock City, 2005/10)


Feb 2011 | 시골의 작은 학교 타운과 워싱턴 디씨의 공통점은? "고층빌딩이 없다."
정말이다. 둘러봐도 높은 건물이 없다. 기본적으로 상가건물들은 모두 단층이다. 아파트도 2층, 높아야 3층짜리 건물들이다. 캠퍼스에나 가야 조금 높은 건물들을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도시 전체를 통틀어 10층이 넘는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조지아 에센스 (Athens)도 그랬고, 여기 인디애나의 웨스트 라파예트 (West Lafayette)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에센스와 웨스트 라파예트는 참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시골 대학도시로 도시의 규모나 물가가 비교적 비슷한 편이다. 보수적인 백인 사회지만 학교 타운이라 상대적으로 인종 구성이 다양해 동양인이라고 외계인 보듯 하는 시선은 드물다.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곳들이라 타운 전체가 학교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고 특히 풋볼 게임은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장 큰 연중행사다. 여름엔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덥지만 봄, 가을은 무척 쾌적하고 또 아름답다.




두 도시의 차이점이라면,
1. 우선 완전히 상반된 겨울 날씨. 에센스의 겨울은 한국의 늦가을 정도의 날씨라 12-1월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웨스트 라파예트의 겨울은 춥고, 길고, 음울하다.
2. 웨스트 라파예트에서는 흑인을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에센스에서는, 예를 들어 자두가 다니던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 중 2/3가 흑인이었다.
3. 바비큐의 원조는 미국 남부지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인기는 여기 북부 인디애나에서 더 실감하고 있다.
4. 웨스트 라파예트의 크리스마스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에센스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5. 눈이 오면, 에센스는 도시 전체가 마비되지만 웨스트 라파예트에서는 상관없이 일상생활이 유지된다.
여튼 두 군데 다 산도, 고층빌딩도 없다 보니 전망 좋은 곳을 찾기가 어려운 도시들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본다면 조지아 에센스가 지금 이곳보다는 사정이 좀 낫다. 여기 웨스트 라파예트에서는 제대로 산에 가려면 동쪽이던 남쪽이던 최소 7~8시간은 달려야 하니까.






조지아에서 제일 고도가 높은 곳
브라스타운 볼드

Brasstown Bald
2005년 10월 1일


봄철 아미카롤라 폭포에서의 산행이 너무 좋아서 이번엔 단풍도 볼 겸 가을 산행에 나섰다. 무작정 찾아간 이곳은 조지아 북쪽의 블러드 마운틴 (Blood Mountain).




10월인데도 아직 여름 날씨다. 나뭇잎들은 아직 색 물감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은 녹빛 그대로다.




어린 자두와의 산행이라 능선까지 가는 것은 고사하고 동네 산보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아주 감질나는 등산밖에 할 수 없다. 체력을 기르란 말이다!




대충 맨밥과 밑반찬 몇 가지 해서 도시락을 싸갔다. 등산로 근처 바위에서 밥을 먹다가 개를 끌고 온 등산객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마치지도 못했다.




자두의 컨디션은 여행의 가장 큰 변수. 수형에게 주어진 미션, 그녀를 즐겁게 하라.




두 시간도 넘게 찾아간 산에서 제대로 등산도 못 하고 내려온 게 아쉬웠는데, 마침 지도를 보니 가까운 곳에 브라스타운 볼드 (Brasstown Bald)라는 전망대가 있어서 찾아갔다.




해발고도 약 1,500미터에 위치한 브라스타운 볼드는 조지아에서 제일 고도가 높은 곳이면서 딥 사우스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전망 좋은 날에는 80마일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애틀랜타 다운타운의 고층빌딩들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구름이 많이 껴서 멀리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들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하면서 록키산맥과 시에라 네바다 산맥 같은 고도 4,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를 많이 다녀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들이 2,000미터 정도니까 사실 4,000미터라면 그 두 배가 되는 엄청나게 높은 지역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수형과 나에게는 애팔래치아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이 브라스타운 볼드가 미국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기억된다. 고도 1,500미터 밖에 안되는 이곳이 우리 마음속에 그렇게 높게 자리 잡은 이유는 아마 그때 우리가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브라스타운 볼드 전망대에서 잠시나마 풀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보석 같은 곳이었다.




이곳까지 자두를 업고 올라오다 보니 이제야 산에 오르는 것 같다. 근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블러드 마운틴에서 자두 때문에 산을 제대로 못 올랐다고 한 건, 무너지는 체력을 인정하기 싫었던 우리의 핑계였구나.






바위로 이루어진 정원
락시티

Rock City, GA
2005년 10월 22일


2005년 가을. 자두가 한국에서 돌아온 지도 9개월이 넘었다.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 주말마다 자두를 데리고 밖으로 출동이다. 아직 장거리 여행에 자신이 없어 편도 세 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는 곳들만 당일치기로 다니는데, 조지아는 관광산업이 발달한 주가 아니라서 구경 다닐 수 있는 곳이 한정돼있다.
가을이 늦게 찾아오는 조지아주. 숲이 물들어가던 어느 날 가을이 어울리는 바위도시, 락시티 (Rock City)를 찾았다.




조지아와 테네시 경계에 자리 잡은 룩아웃 마운틴 (Lookout Mountain).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락시티는 록큰롤을 연상시키는 이름과는 달리 천천히 산책하며 볕 좋은 오후를 즐길 수 있는 산 위의 작은 바위 정원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몸을 쥐어짜듯 (Fat Man Squeeze) 나와야 한다는 바위틈의 통로.




날씬함이 약점인 수형에게는 식은 죽 먹기.




흔들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오기 전에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걷기 싫다는 자두를 흔들다리 위에서는 안아 줄 수 없어서 내려놨더니 뾰로통해져서 카메라도 안 쳐다본다. 간이 유모차라도 하나 사서 가지고 다니면 좋았으련만, 한푼 두푼이 아쉬워 얻어쓰고 받아쓰고 아끼며 살던 때라 미처 유모차 살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옛날 사진들을 보면 자두가 입고 있는 옷들이 하나같이 후줄근해서 한참 귀여운 두세 살 여자아이를 너무 무신경하게 키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둘째 호두도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서도.




아기자기했던 바위 정원은 흔들다리를 타고 자살바위 (Lover's Leap)로 이어진다. 번역이 너무 직설적이었나. 'Lover's Leap' 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실연한 사람이 뛰어내리는 낭떠러지라는데 이게 우리로 따지면 자살바위 아닐까.




Lover's Leap을 옆에서 본 모습.




Lover's Leap 안쪽에는 작은 폭포가 떨어진다.
참 우리만큼 다니면서 우리만큼 애를 안고 다니는 집도 별로 없을 거다. 그 비싸다는 유명한 유모차들도 아마 우리 집에 왔다면 무용지물이었을 테니. 여행은 다녀도 동네 산책은 잘 안 다니는 편이라 정말 유모차를 쓸 일이 없는 집이다.




Lover's Leap에서 내려다본 모습.




미국 동부의 전형적인 숲의 모습.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라 이렇게 숲이 평지에 넓게 펼쳐진 경치를 보기가 쉽지 않다.




여기가 바로 7개 주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전망대. 조지아, 테네시,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켄터키, 그리고 버지니아를 볼 수 있다고 선전하는데 증명은 안 됐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한번은 지도를 보다가 문득 테네시 주에 접경해있는 주들이 유독 많다는 걸 발견했다. 세어보니,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켄터키, 미주리, 그리고 알칸사까지 무려 여덟 개 주가 인접하고 있었다. 과연 조지아와 테네시 접경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서 일곱 개 주를 한 번에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전망대에서.
저렇게 늘 안고 다니던 걸 호두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안아줄 일이 없으니 머릿속으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서운한 건 어쩔 수 없겠지. 안쓰러울 뿐이다. 




락시티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동굴 투어. 인공 동굴 같은데, 이 어둠의 터널 속에 아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화려한 동화의 세계가 가득했다.




오랜만에 보는 물레방아.
이상으로 전망 좋은 곳을 찾아 떠난 우리들의 2005년 가을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