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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5

제12편. 사계절 시리즈: 여름 바다, 사람에 대한 기억 (Panama City and Tybee Island, 2005)


Feb 2011 | 타향에서의 유학생활이 다 그렇듯이 우리도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공부밖에 할 줄 모르던 수형과 내가 생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의 나라에 살러 왔다.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따는 것이 이곳에 온 일차적인 목적이었지만, 일단 와보니 그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엄마가 없는 곳에서 나 스스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삶의 문제들이었다. 더구나 갓 결혼을 하고 또 오자마자 아기까지 가지게 된 우리에게 유학생활은 단순히 남의 나라에서 공부한다는 것 이상의 가정을 꾸리고 책임져야 한다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 큰 인생과제를 힘겹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발을 딛은 첫 순간부터 우리를 이끌고 가르쳐주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선뜻 빌려주신 분, 공항에서 에센스까지 데려와 주신 분, 도착한 첫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주신 분, 아파트를 구해 주신 분, 운전면허를 딸 수 있게 도와주신 분, 마트에 데려다 주신 분, 은행계좌 여는 것을 도와주신 분, 차 사는 것을 도와 주신 분들까지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타향에서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곳에선 다들 이렇게 도와가며 사는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들 말씀하셨지만 그 도움이 받는 사람 입장에선 더없이 절실하고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기에 청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허니문 베이비는 아니지만 자두는 결혼하자마자 한 달만에 우리에게 찾아온 -미국식 표현으로- 서프라이즈 베이비였다.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유학생 의료보험이 있었지만,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된 임신이라 보험처리가 불가능하여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저소득층자를 위한 미드와이프 (Midwife) 시스템을 통해 산전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미드와이프는 번역하면 산파인데 대부분이 석사과정까지 밟으신 프로페셔널한 산부인과 간호사 같은 분들이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서 조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막상 미드와이프 분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고 임산부를 여왕같이 대접해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서비스에 정말 깊이 감동받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트레스와 영양 불균형 때문인 듯, 임신 33주에 임신중독증으로 진단받고 갑작스럽게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게 되었다. 워낙 급하게 진행된 병증으로 혈압이 200이 넘게 올라가는 위급상황이라 예정일보다도 6주나 빠르게 출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시기로 한 부모님이 미처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조금 늦게 오시게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산후조리는커녕 출산준비물도 하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기를 낳게 되어 정신없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사정을 알게 된 성당 분들께서 산후조리 기간 내내 미역국을 끓여다 주셨다. 홍합 미역국, 멸치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그리고 사골 미역국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종류의 미역국 먹은 것 같았다. 특히 아기를 낳고 회복실에 누워 제일 먼저 먹었던 홍합 미역국은 잊을 수가 없다. 컵에 담아 빨대로 겨우 마셨던 그 미역국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7년 뒤, 에센스를 떠나 이곳 웨스트 라파예트에 왔다. 이곳에서도 역시 호두를 낳고 산후조리 할 때 성당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주부 7년 차라 미리미리 청소와 출산준비도 마치고, 산후조리 기간 먹을 미역국이며 반찬들도 냉동실에 쟁여놓고 큰 두려움 없이 남편과의 산후조리를 감행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친정엄마의 빈자리. 정성스레 준비하신 갖가지 나물과 반찬을 들고 우리 집 현관을 조심스레 두드리시던 성모회 언니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채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에겐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천사인 줄 알았던 아파트 두 친구. 때마다 점심 먹으라고 음식 담긴 쟁반을 들이밀고, 삼칠일 지난 후로는 너무너무 호두가 보고 싶었다며 엄마인 나보다 더 이뻐해 주던 그 친구들 덕분에 두 아이 뒤치다꺼리에 진작에 지쳐버렸을지 모르는 그 시간이 어쩜 미국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고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남에게 해 준 기억은 별로 없는데 받은 기억만 넘친다. 유학생활에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께 갚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내리 갚는 거란다. 도움받고 정착하고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가 되어 은혜 갚을 여유가 되면 대부분 도움 주신 분들은 그곳을 떠난 후이기 때문에. 전수받은 노하우와 그들이 나에게 준 시간과 마음을 다음 사람에게 갚는다는 것은 언제까지고 이어지기 바라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더 많이 갚으면서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2005 여름 바다 여행 첫 번째 이야기
파나마 시티 비치

Panama City Beach, FL

2005년 7월 1일 - 7월 4일


이렇게 길게 옛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번 여행기에 나오게 될 두 가족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가 아니면 고마웠던 분들에 대한 추억을 남겨둘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랜만에 미국 처음 왔을 때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사진은 진서네 가족이다. 진서네 언니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제빵사다. 수학 전공인 언니가 브래드 머신 하나 없으면서 어쩜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와 빵들을 만들어내는지, 지금은 나도 조금씩 빵을 만들어 먹긴 하지만 그래도 언니가 해준 것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 그렇게 언니네 집에 갈 때마다 하나둘씩 얻어먹는 재미가 참 좋았는데. 언니랑 헤어진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진서네랑 같이 간 이곳은 플로리다의 파나마 시티 비치 (Panamy City Beach).




7월의 플로리다는 볕이 너무 강해서 낮에는 해변에 나갈 수가 없었다. 콘도에 있는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자두와 아빠.




파나마 시티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 세인트 앤드류 주립공원 (St. Andrew State Park)의 쉘 아일랜드 (Shell Island)였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이 쉘 아일랜드는 해안가 모래언덕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널따란 해변에 하얀 모래가 어찌나 눈이 부신지,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거의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사진으로나 제대로 봤다는.




바닷가에만 오면 기분이 급 안 좋아지는 자두양. 샌들 속으로 들어가는 모래도 싫고, 무섭게 밀려드는 파도도 싫고. 바다를 처음 보는 자두양에게 바다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대한 존재였던 것 같다.




해지는 해변. 다음날이 독립기념일이라 바닷가에는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우리가 너무 소심해서 우리끼리는 바닷가에 콘도를 빌려 놀러 간다는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을 텐데 언니네 덕분에 좋은 곳에 와서 좋은 구경 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바닷가에 이렇게 놀러 간 적은 없다는. 그립소.






2005 여름 바다 여행 두 번째 이야기
타이비 아일랜드

Tybee Island, GA

2005년 9월 4일 - 9월 5일


이번엔 준호네 가족이다. 우리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언니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백일 된 준호를 데리고 여기저기 장 보는 거며 병원가는 거, 언니가 참 많이 데리고 다녀주었다. 그땐 정말 언니가 미국 생활에 도통한 달인처럼 보였다는. 늘 여유 있고 시원시원, 어떤 일도 거침없이 해내는 언니 앞에서 나는 그저 갓 태어난 새끼 병아리. 지금은 나도 나보다 어린 병아리들 데리고 다니는 꼬꼬닭으로 성장했지만, 언니 앞에서는 아마 여전히 철부지 아기 사슴이겠지. 미국에 오자마자 만나서 그런지 언니네와 함께 지낸 것은 3년이 채 안 되는데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는 조지아 사바나의 타이비 아일랜드. 9월 초지만 사바나는 한여름 날씨였다. 모래밭을 질색하던 자두가 준호 오빠와 함께 하는 바다는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사바나에 사는 준호는 바다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꼬마 소년이다.




타이비 아일랜드의 명물인 등대. 해 저무는 해변에서 원반던지기를 즐기는 양쪽 집 아저씨들.




남이 만들어놓은 모래성 앞에서 즐거워하는 뻔뻔한 모녀.




미국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어서 아마도 이 두 가족은 평생토록 기억될 것 같다. 지금은 다들 떨어져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또다시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