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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2005

제11편. 사계절 시리즈: 봄 산행, 과거로 돌아간 즐거운 시간 (Hiking Georgia: Amicalola Falls, 2005/05)


May 2005 | 숲과 산.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숲과 산의 차이를 알겠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숲은 곧 산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보니 모든 산에 숲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숲이 다 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숲은 대부분 산악형이지만 미국에는 산악형 숲뿐 아니라 평지형 숲도 분포하기 때문이란다. 평지형 숲이 대부분인 조지아. 둘러보면 나무가 참 많은데도 마음이 단조롭고 허전한 이유는 아마도 주변에 산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땐 주위에 크고 작은 산이 많아 시선을 두면 마음이 꽉 채워지는 안정감이 있었는데 에센스 (Athens, Georgia)에는 높은 건물도 없고 산도 없어 어딜 보아도 휑하니 내던져진 기분이 들곤 한다.




집에서 가깝진 않지만, 조지아에도 산이 있긴 하다. 에센스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쯤 달리면 조지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접경까지 뻗어내려온 애팔래치아 산맥 (Appalachian Mountains)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에서부터 천오백 마일을 내달려온 산맥이 흘러내려 마침내 숲의 바다가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아미카롤라 폭포 주립공원 (Amicalola Falls State Park). 5월의 싱그러운 봄 내음을 맡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멀리 뒤에 보이는 것이 아미카롤라 폭포. 높이 222미터의 아미카롤라 폭포는 미시시피 강의 동쪽, 그러니까 미국 동부에서 제일 높은 폭포라고 한다. 폭포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어 차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번에 아래에서부터 올라가기로 했다.




2003 Photo | 8개월 된 자두와 함께 찾은 아미카롤라 폭포. 아미카롤라엔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가을, 학회 때문에 나 혼자 왔다가 나중에 가족이 다시 함께 온 적이 있는데 그땐 이미 낙엽도 다 떨어진 끝이라 쌀쌀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길가에 봄꽃들이 한창이다. 낯익은 꽃들도 보인다. 오랜만에 야생화를 보니 마음이 설렌다. 산에 다니며 채집하던 때 생각이 나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2003 Photo | 짧은 등산로가 끝나면 폭포의 정상까지 이어지는 600개의 계단이 나타난다.




야심 차게 계단을 도전해보는 꼬마 자두. 일단 신나게 올라가시기 시작하는데.




중간에 승리의 브이 한번 그려 주시고.




2003년 11월 vs. 2005년 5월
175개의 계단을 오르면 폭포의 중턱에서 물살을 감상할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각각 2003년 11월과 2005년 5월에 찍은 사진. 어쩜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한결같을까.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양새가 변함이 없다.




600개의 계단을 모두 걸어 폭포의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자두가 여기까지 와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 무리하지 않고 하산하기로 했다. 폭포 정상에서의 사진은 2003년에 찍은 것으로 대신한다.




하산하는 길은 계단이 아닌 다른 길로 간다. 자두가 조금이라도 더 혼자 걷게 하려고 은영과 수형은 갖은 애를 다 쓴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결국은 목말을 태운 아빠. 그래도 평지라 전혀 힘들지 않아요.
수형의 바가지 머리는 나의 작품. 한국 미용실에서 이발하려면 15~20불 정도 든다. 지출을 줄여보겠다고 매번 나에게 맡겼으나 결과는 언제나 실패작. 참고 견디던 수형이 월급 인상되자마자 선언한다.
'나 이제 미용실 갈래.'




등산로 주변은 만개한 산철쭉들로 봄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오랜만에 봄철 야생화를 보니 옛 친구들을 만난 듯 정말 반갑고 즐거웠다. 산으로 채집 다니던 그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창문도 없는 실험실에 하루종일 갇혀 있으려니 답답하다. 그래도 이렇게 뜻하지 않은 봄 선물을 받게 돼서 행복지수 만땅인 하루였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날 보면서 수형도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정말 오래오래 기억될 봄 산행이 될 것 같다.




집에 오는 길에 애틀랜타 한국 장에 들렀다. 우리가 잘 가는 풍년떡집의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손님이 오면 늘 저렇게 따뜻한 가래떡을 한 줄씩 싸주시곤 한다. 나도 한입 먹고 싶었는데 자두가 너무 맛나게 먹어서 그냥 옆에서 입맛만 다셨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