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11 | 몇 해 전인가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가을인데 단풍여행 안 가시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뒷산 단풍도 예쁜데 어딜 가느냐고 하시던 엄마의 대답. 그 말씀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는 걸 느꼈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마냥 미루다가는 막상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정작 마음이 안 땡겨서 못 가는, 아니 안가는 날이 오기도 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학교 과사무실 직원 아줌마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피스에 갔다가 방에 걸린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 Have, Where You Are'라는 문구를 보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사는 것'. 게으른 내 인생의 작은 모토다.
어느 날 학교 과사무실 직원 아줌마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피스에 갔다가 방에 걸린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 Have, Where You Are'라는 문구를 보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사는 것'. 게으른 내 인생의 작은 모토다.
하루하루 겨우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갈 수 있는 공짜여행의 기회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다 보니 알 것 같다.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할 자세만 되어있다면 돈을 조금 쓰고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여행하는 법이었다는 걸.
비행기 대신 차를 끌고 다니고,
별 네 개짜리 호텔 대신 싸구려 모텔에서 잠을 자고,
고급 레스토랑 대신에 밥통을 싸들고 다니고,
기념품은 홈메이드 사진엽서로 대신하는.
어떨 땐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윈도 쇼핑 같은 여행같은 기분도 들지만, 한결같이 지켜온 우리의 이 철학 덕분에 지금 이렇게 여행기라고 이름 붙여 쓸 수 있는 분량의 추억들이 쌓인 게 아닐까 싶다. 질보다는 양을 생각했던 우리의 여행들. 근데 이젠 배가 부른가 보다.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맛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걸 보니.
워낙 사람 붐비는 도시를 즐기지 않는 수형에게 뉴욕은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겠지만, 나에겐 우리의 첫 미국 여행지였던 뉴욕이 늘 다시 가고 싶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뱃속의 아가 하나 데리고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뉴욕인데 이제 와서 팔팔한 애들 둘 데리고 다니며 더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없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뉴욕에 가게 된다면, 까치 잡으러 다니고 꽃 채집하러 다니던 것이 전부였던 어리바리 신혼부부가 아무 준비 없이 대충 두리번거리다 돌아온 것보다는 좀 더 나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Dec 2002 | 뱃속의 자두와 함께 힘들었던 첫 학기를 마쳤다. 결혼, 공부, 그리고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 이제 막 시작한 이 세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쉬운 것이 없는데 이젠 나더러 엄마가 되란다. 엄마가 되는 건 어떤 것일까. 난 아직 나 자신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데 엄마가 된다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다 접어야 하는 걸까. 여행 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겠지. 유학 준비하며 만나 도서관으로 학원으로 데이트 다니며 결혼하고 미국에 가면 제대로 못 한 연애도 실컷 하자 했는데, 여행도 물리도록 해보자 했는데.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기쁨보다 허탈하고, 감사보다 아쉬운 맘이 더 컸다면 너무 솔직한 걸까.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아니니까. 언제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스스로 준비하여 가질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없는 부부임을 아시기에 부모 될 기회를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주신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제 나도 살아야겠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미국 여행이 될 거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뉴욕을 향한다.
Jan 2011 | 고모와 함께 한 맨해튼 (Manhattan) 일일투어. 고모가 안 계셨다면 감히 뉴욕에 발 디딜 생각도 못 했을 거다. 고모의 세심한 배려에 늘 감사드린다. 일정 짜느라 고민할 필요 없고, 주차할 때 찾느라 헤맬 필요 없고, 내리라는 데서 내리고, 타랄 때 타고, 보라는 거 보고, 먹으라는 거 먹고. 이렇게 럭셔리한 여행이 또 있을까. 지금까지 늘 모든 여행 계획과 준비를 도맡아 온 나에게 8년 전 맨하튼 일일투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긴장을 풀고 편하게 다녀왔던 여행이었다. 단 한 순간만 빼고.
전철이 끊겨 맨해튼에서 택시를 타고 고모 댁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맨해튼에서 빠져나가는 고가도로에 진입하는데 우리 앞에 무리하게 끼어들던 차 때문에 사고가 날 뻔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택시와 승용차의 신경전.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택시기사 아저씨가 그 승용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액셀을 밟아대시는데 정말 너무 무서웠다. 사고도 사고려니와 엄한 사람 건드렸다가 총 맞을까 봐.
결국, 내가 아저씨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저씨, 저 아기 가졌거든요!"
결국, 내가 아저씨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저씨, 저 아기 가졌거든요!"
Dec 2002 | 지구 상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 열대우림지역이라면, 가장 다양한 인류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뉴욕의 맨해튼인 것 같다. 차가운 미래 도시의 이미지를 주는 시카고와는 달리, 같은 빌딩 숲 속에서도 맨해튼에서는 사람 냄새, 삶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시카고가 건물과 건축이 중심인 도시라면 맨해튼은 사람이 중심인 도시라고 할까.
에센스같이 조용한 학교타운에 사는 우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도시 속에서 마치 서울쥐를 만나러 온 시골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균형을 이루어 공존하는 도시, 섬 자체가 하나의 나라와도 같은 도시, 오랜 시간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아니 한 번쯤 내 삶을 던져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가 바로 뉴욕 맨해튼이었다.
에센스같이 조용한 학교타운에 사는 우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도시 속에서 마치 서울쥐를 만나러 온 시골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균형을 이루어 공존하는 도시, 섬 자체가 하나의 나라와도 같은 도시, 오랜 시간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아니 한 번쯤 내 삶을 던져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가 바로 뉴욕 맨해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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