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010 | 며칠 전 둘째 호두의 돌잔치를 치렀다. 오랜만에 예쁘게 정장 차려입고 머리 곱게 올리고 집을 나서는데 꼭 결혼식 마치고 신혼여행 떠나던 8년 전 어느 날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8년 전 그날은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적어도 오늘의 나는 그날의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다.
얼마 전 신부님 강론 말씀 중에 소위 '아줌마'로 통하는 대한민국 기혼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봤다. 오늘의 나는 틀림없는 '아줌마' 다. 그것도 미국에 사는 한국 아줌마. 말투며 행동거지 하며 어디 내놔도 대한민국 아줌마로 손색이 없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외모와 스타일 빼고.
도대체 언제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아줌마로 트랜스폼하게 된 걸까. 돌아가기엔 너무 먼 강을 건너버린 기분이다.
작년에 조지아를 떠나 인디애나로 이사를 왔다. 수형의 운동모임 멤버들을 불러 저녁을 같이 하는데 함께 온 와이프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어머, 언니 살림의 고수신가봐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익은 문장이다. 이건 바로 그들처럼 새댁이었던 시절, 동네 언니들에게 내가 하던 말이 아닌가. 내가 하던 말을 남의 입으로 들으니 낯설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조지아에서 지내는 7년 동안 나는 어느 모임에서건 늘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공부하는 젊은 애 엄마라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아줌마도 아가씨도 아닌 정체성 모호한 여자로 살다가 인디애나로 오자마자 살림의 고수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한번 본 그 새댁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문제는 이제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연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갈 곳 잃은 정체성에 쐐기를 박아준 '살림의 고수'라는 그 두 단어 이후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아줌마가 되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익은 문장이다. 이건 바로 그들처럼 새댁이었던 시절, 동네 언니들에게 내가 하던 말이 아닌가. 내가 하던 말을 남의 입으로 들으니 낯설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조지아에서 지내는 7년 동안 나는 어느 모임에서건 늘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공부하는 젊은 애 엄마라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아줌마도 아가씨도 아닌 정체성 모호한 여자로 살다가 인디애나로 오자마자 살림의 고수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한번 본 그 새댁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문제는 이제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연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갈 곳 잃은 정체성에 쐐기를 박아준 '살림의 고수'라는 그 두 단어 이후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아줌마가 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옛 생각을 불러일으키던 잔칫날의 설렘 덕분에, 하마터면 기억에서 사라질뻔한 우리의 첫 여행을 돌아보게 되었다.
8년 전 그날. 미국으로 오기 전 우리나라에서의 마지막 여행. 수십 개의 실핀을 꽂은 올림머리 그대로 나는 수형과 함께 설악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 붉은 악마의 기운은 이 정결한 산속까지 뻗쳐 있었다. 사람을 보러 온 것은 아니지만, 막상 사람이 너무 없으니 어색하고 재미도 덜했다. 덕분에 늘 사람들로 몸살 앓는 설악산이 오늘만큼은 한숨 돌렸을 테지만.
모처럼 맞는 산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우리도 일찍 하산해서 붉은 악마의 응원에 동참했다.
미국에 온지 4년 만에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으니 종횡무진 미국여행 이제 겨우 5년 차.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긴 했어도 이젠 가본 곳이 안 가본 곳보다 더 많아졌다. 참 신기하다. 하늘과 땅, 바위와 물, 그리고 식물과 동물. 같은 재료로 그렸는데도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이 그려낸 그림은 반도의 그림과는 너무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자연경관은 대체로 무척 자극적이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보자마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개성 강한 화가가 그린 필생의 대작을 보는 것 같이 날카로운 인상이 머리에 박힌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고 겉도는 기분. 아주 잘 그리긴 했으나 보는 이의 마음은 흔들지 못하는 그림. 보는 순간 내지르는 탄성은 오래가지 않는 짧은 여운만을 남긴다.
미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과연 내가 이곳의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이는 단순히 내가 이 땅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도전하는 자에게만 길을 내어주는 대륙의 거대한 자연 앞에서 진심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은 용기 있는 모험가들뿐일 것이다. 작은 반도의 땅에서 온 키 156센티미터*의 여자 앞에 펼쳐진 미대륙의 자연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벅찬 당신일 뿐이다. 내가 뭐라고, 이건 감히 나 같은 것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다.
2013 Updated | 결혼하고 키 큰 여자의 교정의 변. 원글은 155cm 였으나 귀국 후 재어보니 1cm 늘어난 156cm 라 기쁘게 수정하는 바이다.
2013 Updated | 결혼하고 키 큰 여자의 교정의 변. 원글은 155cm 였으나 귀국 후 재어보니 1cm 늘어난 156cm 라 기쁘게 수정하는 바이다.
반면에 한국의 산은 수려하면서도 친근하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가까워지고 싶은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일부고, 자연은 확장된 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곤 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을 헤맬 땐 겁도 나지만 그런 곳에서조차 자연과의 교감을 놓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친근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전공 덕분에 학부 때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산을 다녀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경험을 뒤로하고 '한국의 산' 하면 언제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중학교 때 처음 가보았던 속리산이다. 여름 수련회 두 번째 날 아침, 밤에 내린 비로 물기 가득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산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신령한 분위기. 섬세하고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감성으로 받아들였던 그 아침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된 짙은 소나무 향내는 산에 대한 일종의 기준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난 새로운 산에 갈 때마다 그 옛 기억을 불러일으켜 비교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5년에 걸친 시간 동안 우리는 광대한 미대륙을 돌며 우리 땅이 가지지 않은, 우리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경관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많이 보고 느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자리 잡고 있어 떠나는 발걸음에 또 다른 원동력이 되어왔던 것 같다. 제2의 속리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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