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12 | 지도에 그려진 선들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가 미국에서 자동차로 달린 길들이다. 포토샵에서 조심스레 백지도 위에 검은 선을 그어가면서 이 바퀴 자국에 새겨진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생각했다. 10년에 걸친 이야기를 한 번에 써내려가자니 마음이 바쁘고 또 벅차다. 머릿속에는 단편적인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과연 이 긴 여정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컴퓨터에 저장된 이만 장이 넘는 사진들과 여행 중에 틈틈이 적어둔 메모들, 일정이 적힌 파일, 그리고 그동안 연습 삼아 써보았던 몇 편의 여행기가 나의 든든한 서브작가들이 되어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모자란 기억력을 보충해 줄 이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당시의 느낌이 되살아나 이제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 든다. 짧게는 두 시간짜리에서부터 길게는 20일까지, 미국 50개 주 중에서 40개 주를 달렸던 시간. 하지만 여행마다 그 여행을 기억하는 내가 서 있는 시간은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난 굳이 화자를 고정해두지 않고 어떤 글은 현재의 내가, 또 어떤 글은 여행 중인 과거의 나로, 그때마다 여행의 기분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시점의 나에게 이야기를 맡기려 한다.
여행은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난 우리 삶의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부분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복되는 일과와 모든 것이 늘 똑같은 그저 그런 날과 달리 평소의 내가 아닌 조금은 다른 나로 살게 되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난 이 여행기가 우리 인생의 특별했던 순간만을 모아놓은 별책부록이 되는 것보다, 이왕이면 우리 가족의 일상이 함께 묻어나는 인생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다음에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여행기를 들춰봤을 때 우리가 지나온 삶을 제대로 되짚어볼 수 있는 기억창고로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
쳇, 그렇게 모든 걸 다 기록할 거면 차라리 매일매일 일기를 쓰라지. 부족한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하지만 다시 한번 지도 속의 우리 발자취를 보고 큰 숨 들이마신다. 선을 따라 눈이 다시 한번 달려본다. 내 인생 또 하나의 빅 프로젝트. 이제부터 시작이다.
PS. 지도를 제외한 여행기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수형과 내가 직접 찍고 보정, 편집하였다.